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과 함께
3대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이노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다 버전의 오리지날 송이다.





1964년 작곡된 이노래는 니나 시몬느를 위해 정통 재즈로 작곡되었다. 그것이 이듬해 부루스 락으로 리메이크 되었다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어 한 때 디스코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녀의 삶과 의식 속에 녹아져 있는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자유를 향한 갈망,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은 채 특유의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해석되어져 나오는 이 원곡으로 들을 때 가슴이 요동친다.

니나는 분노와 좌절이 있거든 세상을 향해 주저없이 외치라고 했다. 골방에 박혀 좁은 세상에 갖힌 채 절망한 영혼들에게 자신을 찾아 사랑하고
드러내어 존엄을 회복하라고 한다. 인류의 대표자가 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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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졸레는 저렴하나 매우 신선하고 경쾌한 와인입니다. 꽃과 과일향이 풍부하며
감미롭기까지 하죠. 그렇다고 천박한 단맛은 절대 아니죠. 니나가 사랑한 프랑스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이 노래와 어울릴까요?




이 영화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서브프라임 몰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 금융시장 붕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또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인간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즉 돈과 인간성에 대한 생각, 돈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바른 품성과 자존감으로 살아가야할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릿과 런던의 더시티는 현대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상층부다. 중국이 그 하부구조로서 세계의 생산공장이라면 런던과 뉴욕 월스트릿은 상부구조로 굴뚝없는 세계 자본주의의 금융공장이다.

중국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원료를 이용하고 인간의 집단화되고 시스템화된 노동에 의해, 그리고 인간이 개발한 과학 기술에 의해 인간에게 필요한, 또는 필요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차익(이윤, profit) 을 남겨 돈을 버는 산업 자본주의의 전형이라면 뉴욕을 비롯한 전세계 금융허브(뉴욕, 런던,싱가폴, 홍콩, 등등..)를 두고 있는 국가들은 이런 산업자본주의에 더해 그렇게 해서 버는 돈으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즉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노동 착취를 기본으로 하며 금융자본주의는 자본 착취를 기본으로 한다. 착취란 영어로 exploit, sweat, underpay, 등등 과격하게 말해서 남의 등을 쳐먹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가 이윤을 창출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다. 우리가 젊은 날 사회체제에 대해 싸웠던 것은 이러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이었다. 착취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파생한 온갖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이 돈 앞에서는 도덕이고 철학이고 인간미고 뭐고 너무도 쉽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마는 것을 본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아마 누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면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런 상황에서는 아니요 ! 라고 외치며 파괴적 이기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돈이란 바로 나의 삶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의 삶 하나하나에,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당장 기숙사비를 보내야 하고 금전적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고국의 부모형제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인간적인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위해, 집을 비롯한 나의 현재 모든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 중의 하나는 그런 자신의 현재적 삶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돈 때문에, 자신이 현재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를 수습하는 방식이 자신의 일반 동료를 비롯한 이웃, 나아가 전세계 수많은 무고한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안길수도 있음에도 기꺼이 수행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는다. 미국의 수많은 일선 금융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일반 기업이 파산하고 산업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엄청난 수의 집들이 경매에 넘어가고 그결과 전세계 경제가 휘청되어 세계경제 위기로 이어져, 청년 실업, 도산, 파산, 자살 등등 비극이 몰아닥쳤지만 그 주인공을 비롯한 세계 금융산업의 금융엘리트들은 여전히 페라리를 몰고 고급주택에 살며 럭셔리한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다행이었는지 능력이 부족했던 지 이런 형태의 삶 속에 있지 않았다. 그 속에 있었다면 일견 잘 해낼 수 있는 그런 자질을 지닌 것도 같지만 어쩌면 나의 성향상, 기질상, 철학적인 갈등으로 인해 내가 그 바닥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날에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헌신했고 그 이후에는 가정의 소박한 가장으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민을 온 이후는 비록 밥벌이로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의 아픔을 다루는 직업을 가져 나름대로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딸이 한의원 비지니스를 좀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내게 조언을 했다. 아마도 때로 재정문제로 허덕이는 모습을 보며 나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래서 내가 아래의 내용으로 딸에게 내 입장을 말해주었다.

나는 앞으로 가능한 점점 일을 줄이려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더 바빠지고 싶지 않다. 남은 나의 인생을 지금보다 더 바쁘게 일하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돈이 필요하고, 아니 더 필요하고 사실 상당히 필요하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러하고 당장 나의 좀더 여유있는 삶을 위해서 사실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가진 돈이 정말 없다. 나올 곳도 없다. 때론 생각하면 이런 현실이 한심할 때도 있고 무섭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일견 모순되는 생각같고 한가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다소 줄이고 포기하더라도 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소중한 시간, 나의 인간성, 나의 철학, 삶의 모토, 도덕적 자부심, 인간적인 삶 등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가족을 사랑하며 일상의 소중함에 늘 감사하며 세상의 고통에 연민하고 공감하며 진리의 편에 서며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며 사는 그런 삶. 이런 삶에 기본적으로는 그리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을 더 벌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더 잘 갈 수 있고 가족들이랑 더 즐길수도 있겠고, 이웃들을 조금 더 풍족하게 도와줄 수 있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한의원 이외에도 관심있는 분야가 너무 많다. 사실 돈안되는 일이고 그리고 돈이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록 이렇게 시골 촌부로 가진 것도 없고 이름도 없이 살아도 자존감하나만은 잃지 않으려 한다. 아무도 인정 안해줘도(아내와 딸들만 인정해주면 족하다 여기지만) 스스로 진리의 편에 서서 바른 생각으로 살며 그것을 일상 생활 구석구석에서 실천하고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먼곳의 아픔에도 공감하며 거짓을 행하지 않고 (물론 작은 거짓은 피할 수 없어 괴롭지만) 무엇보다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 속에서 살아 있음을 자각하고 나름 예술과 스타일을 추구하고 좋은 아빠와 남편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이런 삶에 돈이 많이 필요할까? 물론 돈이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만큼 씀씀이에 여유가 생기고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삶을 위해서는 돈보다는 여전히 바른 철학과 품성, 의지가 요구되고 절제와 조절이 필요하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 데 필요하다면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것들 다 처분하려고 한다. 사는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소비와 소유를 줄여 홀가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그런 날이 오겠지 하며 산다.

이야기가 잠시 곁으로 빠졌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해준 말은 이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살아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란 필요한 것이며 가치환산의 수단이니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합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돈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스스로 보람있게 여기는 일을 찾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언제나 인류단위로 사고하며 스스로 자존감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바른 철학과 신념, 인간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서처럼 전직 로켓 과학자인 주인공 중의 한사람이 돈에 의해서 자신의 소중한 커리어를 버리고 곁가지로 나아가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짓. 돈에 인생이 팔려서는 안된다.”



캐나다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을 들라면 단연 이것, 캐나다는 Park 의 나라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 Banff National Park 인것만 봐도 일찍부터 공원에 눈을 뜬 나라입니다.

캐나다 전역이 공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자연 보존에 힘을 쓰는 나라이다 보니 수많은 국립공원에외도

주립공원 시공원 동네공원 등 가히 캐나다는 Park씨 천국입니다.

어렸을적부터 완월폭포, 만날재, 가포 본동 등등 자연을 찾아 놀러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삶의 터전을 잡은 이후 대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늘 탈출을 꿈꾸곤 했었는데 캐나다 이민을 와서 비로소 내 오랜 한가지 꿈을 이룬듯 합니다.

오늘 소개할 곳은 우리집에서 10분 남짓한 곳에 있는 주립공원, Glenbow Ranch provincial Park입니다. 보우강변에 위치하며 공원 면적이

여의도의 약 1.7배 가량 되는 자연그대로의 환경공원이죠.

100여년도 전에 유럽에서 이주하여 목장을 하던 사람이 땅을 기증했고 알버타주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이곳을 보존하며 시민 휴식공간으로

내어주었습니다. 아무튼 이 나라 사람들은 돈이든 땅이든 뭐든 공익을 위해 기증을 참 잘하는 데 개인과 사회의 합리적인 상호작용이 살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양자가 서로 주고 받으며 때론 독립적으로 때론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죠.

이 넓디 넓은 공원은 사방이 뚫려 막힘이 없고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며 자전거길도 만들어져 있고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목초지 언덕에 서서 록키산을 배경으로 흐르는 보우강변의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그야말로 힐링타임이 됩니다.




곳곳에 개인 땅도 있지만 평화로운 목초지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공원 입구에 팻말 하나도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멀리 록키산을 배경으로 강과 목초지와 언덕들.. 그리고 야생의 자연그대로의 공원.



포장된 길도 있어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찾지만 흙길도 있어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줍니다. 




흰머리 독수리의 서식지임을 안내해주는 데 운이 좋으면 독수리가 사냥하는 장면도 볼 수 있죠. 



알버타의 하늘, 캘거리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릅니다. 하늘만큼은 세계최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의 얼굴을 지녔어요.




언덕위의 길은 시골길처럼 정겹고 사랑스러워요.




워낙 겨울기운이 강한 캘거리여서 여름에도 금방 가을 기분을 느끼게 되죠. 푸르고 청명한 가을 하늘 같아서 슬플때도 많아요.




역시 야생화도 많아서 산책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Yarrow 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구요



알버타 주화인  wild rose 랍니다. 극우 보수당의 당명이라서 웬지 친근하지가 않아요. 너무 정치적인가요?



옛 목장의 흔적이죠.  길을 벗어나 풀숲으로 들어가면 최고 5000불의 벌금을 매기겠다는 엄포. 이나라의 벌금은 무지막지합니다. 



탁트인 공원길, 인적도 드문 이런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지수가 팍팍오르는 느낌입니다. 



야생 베리가 아닌가 싶어요. 청초한 아줌마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하이킹 길은 이리저리 연결되고 이어져 끝도 없이 걸을 수 있답니다. 오르막 내리막 다 있어서 운동에도 물론 좋구요.




멀리 캘거리 다운타운이 보이네요. 오른 쪽으로 스키점프대가 있는 올림픽 공원이 보이구요. 



반대편으로는 역시 록키산이 멀리 있어요.  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이라는데.. 



글렌보우 공원은 어느 계절에 와도 좋은 곳입니다.


화해와 중재의 국제 분쟁 조정자, Canada - 북핵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열것인가.
캐나다는 아주 오랫동안 국제 분쟁의 조정자로 자임하며 세계 곳곳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 유지군의 주도적 일원으로 참여해왔습니다.

UN 평화유지군, UN peacekeeping Force 는 1956년 2차 중동전쟁, 즉 수에즈 위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수에즈 운하를 두고 대치했던 상황을 평화적으로 타개하고자 캐나다 외무장관이었고 나중에 수상에 올라 캐나다 역대 가장 위대한 수상으로 칭송받는 피어슨(토론토 공항의 이름으로 명명된) 에 의해 주도되고 창설되었죠.
그후 수많은 국제 분쟁의 현장에서 캐나다는 뛰어난 능력과 헌신으로 각종 분쟁을 조정하고 화해로 이끌어 Reconciliation Canada 라는 명예로운 국제적 평판을 얻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끈질기게 요구한 베트남 참전도 끝끝내 거부하여 미국과 소원해지기까지 했지만 캐나다는 화해와 분쟁조정자로 남아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굳혀왔지요.(그러나 음으로 양으로 미국을 도와주는 포지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는 없었지만)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 발칸 반도와 르완다에서의 악명높은 인종청소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것에다 1994년 소말리아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캐나다군에 의한 현지인 린치 사건이 겹쳐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캐나다 명성은 흠이 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보수당 정권에 의해 결정된 아프가니스탄 참전으로 캐나다의 화해와 평화유지라는 국제적 이미지는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사실 Reconciliation Canada 는 본래적인 의미에서 유럽으로부터 이주해온 근대 캐나다 국가와 11000년전부터 살아왔던 이 땅의 원주민과의 화해를 말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 행보는 사실 이와같은 캐나다 내에 존재하는 분쟁과 다툼의 역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위선과 거짓에 불과합니다.

프랑스와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이주하여 건설한 캐나다의 초기 역사는 원주민 학대와 차별, 그들의 문화 언어 말살로 이어진 캐나다의 흑역사입니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부당한 대우와 철저한 외면 속에 비극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캐나다 자유당 정부의 수장 저스틴 트뤼도 수상은 캐나다 정부가 자행해온 원주민 말살 정책과 차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습니다. 국제 분쟁의 화해자를 자임해온 캐나다로서는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사실 이 사과는 놀랍게도 전임 보수당의 하퍼 수상때 이미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신들의 흑역사에 대해 다소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보수당 정권이 사과를 하여 보수 본연의 도덕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한 합니다. 참고로 하퍼수상은 제가사는 캘거리 출신이며 제 이웃 동에 주민이기도 합니다.

http://nationalpost.com/news/politics/canada-and-u-s-touting-vancouver-meeting-on-north-korea-but-key-ally-japan-not-on-board

이제 다시 캐나다가 내외적으로 스스로 가진 가치, 화해와 공존, 평화와 조정의 이미지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습니다. 원주민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함께 그 시도의 하나가 북미간 화해와 핵위기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입니다.

지난 12월 초 캐나다의 외무장관이 제기한 United Nations Command Sending States Meeting 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만간 밴쿠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회의를 갖자는 것입니다.

UNC 는 한국전쟁때 남쪽 정부를 돕기 위해 UN 에서 조직한 일종의 군사 그룹입니다.캐나다를 포함하여 모두 16개국이며 휴전협정의 당사자로서 여전히 존재하는 조직입니다. 이 조직을 움직여 북쪽과의 대화 테이블을 만들고 거기서 북미간 화해와 함께 북핵문제의 해법을 찾아내자는 것이죠.

이게 잘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으나(벌써부터 UNC 비회원국 중 초청대상인 일본이 고개를 갸웃하며 미지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캐나다가 이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것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트뤼도 캐나다 정부는 트럼프 망나니와는 아예 시작도 전부터 각을 세워왔으나 그래도 말이 통하는 틸러슨 국무장관과는 대화와 협력의 끈을 놓치 않았습니다. 캐나다는 중국과도 오랜 신뢰관계가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겠죠. 쿠바와도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깊이로 상호 친분이 좋아 쿠바정부를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루트를 가지고 있죠.

이런 캐나다가 그래도 유일하게 말통하는 사람인 틸러슨 국무장관과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 북핵문제해결에 어쩌면 가장 적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티아 캐나다 외무장관과 틸러슨 국무장관이 사전에 충분히 교감하고 시작한 일이니만치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국회 의사당 건물 앞에서.


흔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인생에 곧잘 비교하곤 합니다. "바둑은 인생과 같다." 마라톤은 인생이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등등.. 등산도 그러하죠. 생각컨데 이 모든 것들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아닐까요.
이야기가 있다는 거죠. 클라이막스와 디프레션, 그리고 반전이 있는 한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




Gap Peak 은 데날리가 사는 캘거리에서 약 40여분 떨어진 곳, 록키산 초입의 산으로 해발 고도는 2500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엘리베이션 게인(표고차) 이 1200m 이상으로 매우 힘든 오름이 요구되는 산입니다.



로히드 마운틴과 윈드 타워등은 고속도로변에서도 보이지만 여기서 보는 경치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산행은 근처 시멘트 플랜트에서 나는 공해스러운 소음으로 유쾌하지 않은 시작을 해야했지만 오름과 함께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은 평소 눈 높이에서 지나치며 숱하게 보아왔던 호수 Lac Des Arcs, 그 주변을 뱀처럼 흐르는 푸른 보우강, 그리고 크고 작은 폰드와 레이크, 아름다운 습지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금새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인생의 오르막이 있죠.



경사면에 떡하니 버티고 선 두개의 락밴드 클리프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서니 눈 앞에 수려한 로히드 마운틴과 윈드 타워, 림월 마운틴을 배경으로 그라토 산이 나타나 이렇게 캘거리에서 지척인 곳에서도 록키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음에 감탄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즐거움 뒤엔 흔히 고난이 따르죠. 물론 고생 끝에 낙이 오지만요. (그게 인생은 새옹지마 ㅎ)
멋진 풍경을 뒤로 한 채 다시 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떼자 우리를 기다린 것은..
공.포.의. 자갈. 스크리. (경사면이 자갈로 되어 한 발 오르고 두발 미끄러지는 구간)
그러나 가까스로 2보 전진 1보 후퇴. '앞으론 이런데 가지 말자구욧 !!"



그러나 오랫만에 진국 같은 굵은 땀방울을 흘렸고
그 땀 방울방울마다 훌륭한 자연의 멋진 감동을 reward 로 받았기에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서의 휴식은 어떤 여행에도 비할바가 없었어요,
재즈 음악과 보사노바 가요를 들으며 다방커피 한잔.. 산정카페가 따로 없었다는..
얼마만에 맛보는 rain and thunder free afternoon 인지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멀리 희미하게 캘거리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이 보이는 정상에서
뒤로는 장쾌한 록키를 엎고 앞으로는 드넓은 대평원을 품어 막힌 가슴 풀어내고
쳐진 어깨 들어 올린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산행 내내 긍정의 대화, 따뜻한 배려, 정이 넘치는 나눔으로 함께한 산우들이 있어
감동이 배가되었고 더욱 행복할 수 있었어요.

캐나다는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 universal health care system 의 나라다. 즉 전 국민은 누구나(이민 영주권자 포함) 국가로부터 의료혜택을 차별없이 받으며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간단한 감기나 복통의 진료에서 부터 암이나 각종 희귀병에 이르기까지 치과 진료를 제외한 모든 병의 검사, 진단,치료는 국가가 책임지고 시행한다.

이에 따라 모든 국민은 패밀리 닥터(가정의) 를 정할 수 있으며 가정의의 진단과 의뢰로 혈액검사, 초음파 xray, MRI 등 진단검사를 무료로 받을수 있고 약과 치료 처방을 받거나 전문의에게 보내진다. 전문의와의 만남을 통해 수술을 포함한 필요한 치료를 받거나 추가 진단 및 검사, 처방을 받게 되는데 물론 모두 무료다.

진단 방사선검사 등은 각 지역마다 있는 정부 의뢰 기관에 예약을 하여 받게 되고 혈액 및 소변, 심장 검사등은 역시 각 지역별로 있는 정부 혈액

검사소에서 받는다. 모두 예약을 하거나 선착순으로 기다려서 받게 된다. 역시 무료다.

예를 들어 위 대장 내시경은 50대 이상에게 흔히 권고 되는 바 패밀리 닥터에게 의뢰하면 우선 대변검사를 하게 되고 헤리코 박터 검사를 병행 하기도 한다. 그 후 내과 전문의와 약속을 하여 상담을 받고 종합병원에 가서 위 대장 내시경을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무료다.

부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나 패밀리 닥터는 2년에 한 번 씩 PAP test를 시행하며 임산부의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와 만나 임신 및 출산 케어를 받고 종합병원에서 출산하게 된다. 역시 무료다.

모든 응급환자는 각 도시별로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간다.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으나 대부분은 본인 부담이다. (30만원 가량청구된다. 이경우 대개 응급실에서 우선적으로 진료 받는다.)캘거리엔 모두 5군데의 종합병원이 있다.

심장수술과 각종 이식 수술 역시 모두 무료이며 누구나 차별없이 받는다. 얼마전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인 2세 환자가 있었는데 그동안 왜 안왔냐니까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이 파란 만장했는데 모든 치료가 무료로 이루어져서 캐나다가 더없이 고마왔다고 말할 때 이 의료시스템의 장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런 보편적 의료 시스템은 1947년 사회민주주의 당이 사스캣취원 주에서 가장 먼저 시행했고 캐나다 자유당 피어슨 수상이 1966년 캐나다 전역으로 확대했다. 의료보험료 징수는 주마다 다른데 내가 사는 알버타 주는 의료보험료도 무료다. 인근 BC 주는 가정당 3개월에 약 6만원 정도 내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지상 천국의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많은 캐나다 시민들은 캐나다 의료보장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

그 첫째 이유이자 심각한 이유이기도한 것은 wait 다. 한국처럼 아플 때 그 즉시 어떤 병원이든 찾아가서 바로 진료받을 수 없다. 가정의를 만날 때도 반드시 예약을 해야하는데 당일 예약은 거의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Walk-in 이라고 해서 예약없이 찾아가서 기다리면 당일에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모든 가정의가 다 walk-in 을 받지는 않기 때문에 때로는 임시로 자기 가정의가 아닌 의사를 만나야 하기도 한다.

전문의는 반드시 가정의의 의뢰로 만날 수 있으며 이 역시 길게는 몇개월씩 기다려야할 때도 있다. 응급실의 경우 의사를 만나기까지 최소한 한 두시간, 길게는 4-5시간도 기다려야 한다. 물론 먼저온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순서대로 의사를 만난다. 따라서 운이 나쁘면 먼저 왔음에도 위급한 정도에 밀려 계속 뒤로 밀리기도 한다. 응급실에는 어떤 병이든 찾아갈 수는 있으나 응급상황이 아닌 병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치를 안해주기도 하며 가정의에게 가도록 조치한다.

얼마나 기다리냐 하면 백내장 수술의 경우 1년 정도는 기다린다. 물론 의미는 있다.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시급한 정도에 따라 분류하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치면 실명의 위험이 있기에 최소한 그런 기간 안에는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날짜에 받을 수 있지 않다는 얘기다. 불편한대로 계속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MRI 촬영 역시 대부분 6개월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허리 디스크로 왔는데 MRI가 필요하다 하면 6개월 후에 촬영한다는 얘기다. 대부분은 그 때가면 증상이 호전되어 있다. 물론 당장 수술이 필요할 만큼의 심각한 상태라면 응급실에서 조치가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그외 검사는 대체로 수일 안에 받을 수 있다.

공황장애 또는 중증 우울증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야 하지만 그 다음날 당장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이런 경우의 환자들은 일분일초가 지옥같은데.. 물론 급한대로 신경안정제같은 것은 바로 처방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죽을 만큼의 병에 걸리지 않으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 보면 저절로 낫기도 하고 그만큼 약을 안먹으니 내성같은 것도 덜생기고 그래서 나같이 돈받고 치료해주는 한의사나 물리치료사 등이 먹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암이나 희귀병의 경우 환자 본인 내지는 가족이 받는 헤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싼 항암치료나 수술, 입원 등 모든 것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유방암의 경우 재건 수술 역시 무료다. 수술후 사후 관리와 모든 처치 및 치료가 무료다.

환자를 돌보는 것 역시 병원에서 책임지기에 한국처럼 보호자가 곁에 있을 필요가 없다. 물론 가족이 하는 것만큼 자상하고 세세하게 돌보진 않지만 보호자가 24시간 붙어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돈주고 간병인을 사는 시스템이 아예없다.


소아병원 역시 부모가 간병하지 않는다. 병원측에서 24시간 치료하고 간병한다. 따라서 부모는 여전히 자신의 일에 종사하며 아이를 치료에 맡길 수 있는 것. 죽음이 임박한 노인들의 경우 역시 널슁 홈에 들어가 24시간 간병을 받는다. 국가가 책임지며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없다. 물론 가족들이 곁에 있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내가 돈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 및 간호 조무사나 행정업무 종사자들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환자나 가족들의 이런저런 요구나 불만은 꼭 필요한 경우외에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여겨 알려주는 것외에 묻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자상하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법이 없다.

캐나다에서 과잉진료란 아예없다. 그러나 과소 진료 내지는 소홀 진료는 있는 것 같다. 환자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 힘들여 친절할 필요가 없고 병원도 폼나게 지어 놓을 필요없으니 각 의원 급은 우리나라 시골 병원 같고 극히 일부지만 어떤 전문의 병원은 아예 창고같은 데서 하고 있고 그래도 환자로 넘쳐나고 패밀리 닥터들은 환자를 많이 받는다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라서 일정 이상 환자가 차면 아예 예약도 받지 않고 새환자도 받아주지 않는다.

의사들 중에는 경쟁이 없으니 공부를 안해서 아예 뭘 모르는 의사들도 많고 매너리즘에 빠져 맨날 약처방이나 하고 검사 의뢰나 하고 의사짓하는 분들 수두룩. 그래서 의료적체나 낮은 수준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지만 결국은 이게 국가 예산의 문제인데다 환자 자신의 세금으로 개선될 수 있으니 한계가 뚜렷해서 환자들도 그러려니 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일부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프라이빗 헬스 케어를 도입하자고 나오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대해 심각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내돈 내고 우선적으로 질나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대다수 서민들은 안그래도 불만인 공적 의료 서비스가 더욱 형편없어질 것이란 점이 명약관화하다고 보기때문이다.

사적 의료시스템 도입은 대개 보수당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보수당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서민 보수주의 국민들은 이 것 만큼에는 결사반대하는 실정이다. 얼마전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했던 한 정치인이 사적 의료 시스템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사적의료제도 반대를 들고 나온 완전히 무명 초짜 여성 정치인에게 어이없어 패배한 케이스를 보더라도..

이웃 미국의 수많은 의료보험없는 사람들이나 낮은 수준의 보험에만 가입한 사람들에게 캐나다는 의료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회사 복지가 잘되어 있는 사람들 눈에 캐나다 의료제도는 무식한 사회주의 갑갑한 의료제도에 불과하다.저렴한 의료보험료에 국민 개보험을 실시하는 한국에서 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캐나다 의료제도를 한결같이 싫어한다. 의료제도와 기술등에서도 불만이 매우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면 한국 가고 한국에 가서 종합검진도 받고 한다. 심지어 암이 걸리면 공짜로 치료해주는 이곳보다는 보험도 안되는 한국에 가서 암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불신이 낳은 결과다. 그래서 돈만 쓰고 역시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한 채 말기로 되돌아오는 수많은 케이스를 보았다.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은 호불호가 명백히 갈린다. 혜택을 입은 사람들에게 캐나다 의료제도는 천국의 제도다. 그러나 느려터진 데다가 친절하지도 않은 의료 서비스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의료적체 등의 제도의 개선 여지는 분명히 있으나 공적 의료시스템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노인되는데

의료비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소득이 좀 없어도 병원 치료 받을 건 다받을 수 있으니까. 어느정도 살만한 가정의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유방암 수술 두 번 받고 재건 수술까지 받고 항암치료에 사후 관리를 모두 받고 지금 10년째 살아 완치 판정을 받았다. 물론 돈이 하나도 안들어가 그 사람은 캐나다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아내가 췌장암에 걸렸는데 초기에 소홀 진료로 발견하지 못하여 한국으로 가서 확진 받고 치료받고 있는 한 친구는 캐나다라면 치를 떨며 욕을 한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나의 예)


아내가 아보카도를 자르다 손가락을 칼에 베었다. 즉시 응급실로 달려갔다. 먼저 분류 간호사를 만나 심각한 정도를 판정 받는다. 출혈이 지속되고 있지만 간단하게 지혈붕대를 감은채 일반 환자로 분류하여 기다리게 한다.

전광판에는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대략의 시간이 나와있다. 토요일 저녁이라 다소 바쁘다. 2시간 20분.(이게 요즘 엄청 좋아진 결과다. 옛날에는 5-6시간 심지어 8-9시간도 기다렸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기다리더 죽은 환자도 있었다 헐 !!!)

그러나 그날 따라 급한 내과 환자들이 많이 들어왔다. 우리 뒤에 온 환자들도 먼저 불려 들어갔다. 아내의 손가락은 조금씩이지만 여전히 피가 나고 있다. 세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호출. 침대가 배정되고 간호 조무사가 와서 보고 가고 인턴 의사가 와서 보고 갔다. 담당 의사가 곧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 한시간이 흘렀다. 급한 외상환자가 들어와 또 순번에서 밀렸다. 다시 30분이 지났다.

마침내 의사가 들어왔다. 신경 테스트를 한다. 모든 신경 양호하고 clean cut 이라 다행이라고 말해준다. 젤을 바르는 마취를 할 것인지 주사로 할 것인지 정하라고 한다. 젤마취를 선택했다. 마취될 때까지 다시 40분 기다린다. 모두 5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시술이 시작되었다. 자기가 시범을 한 번 보인 후 인턴 의사에게 나머지를 맡긴다.

앳된 인턴의사는 내가 옆에서 빤히 보고 있어서 그런지 긴장감이 역역한채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6바늘을 꿰맸다. 그리고 담당 의사가 와서 보더니 잘 꿰맸다고 칭찬한다. 우리가 있으니 칭찬했겠지. 내가 보기엔 가르쳐 준대로 안하더만. 어쨋든 그런대로 잘 시술된 것 같기는 하다.

담당의사는 간단한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10일 후에 가정의를 만나 실을 뽑으라고 한뒤 끝났다며 바이바이. 간호사 들어오더니 파상풍 예방주사 한대 놔주고 모든 치료 끝. 항생제 처방은 없냐니깐 염증도 없는데 무슨 항생제? 하며 집에 가란다. 이건 잘하는 짓이네.

아무튼 돈 든거는 없다. 시간은 6시간. 손가락 자상 꿰매는 데 든 시간이다. 매일 집에서 한 번씩 일회용 밴드 좀 괜찮은 놈 하나 사서 내가 교환해주고 있다.




하수오라는 약재가 있다. 한 때 보약으로 각광을 받았고 열병처럼 유행했다. 모든 신드롬이 그렇듯 지금은 사그러 들었다.
그럴 수 밖에. 대부분 가짜인데다 진짜라 해도 효능도 별로 없는 백하수오이기 때문.

원래 모든 몸에 좋다고 선전하는 약은 거짓이다. 몸에 좋은 것, 이딴거 없다. 몸은 원래가 좋다. 살면서 나빠질 뿐이고
병적으로 나빠진 것은 치료해야하지만 자연적으로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로장생이란 사기 컨셉에 불과한
사막의 신기루이기에 그러하다.

하수오는 흰머리를 검게한다고 하는데 이 약재 생김이 머리 부분이 검기 때문에 그런 효능을 얻었다? 그럴리가.
이 약재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면 한자어보다 쉽다. Black -haired Mr. Ha 인데 그저 머리 부분이 검고 검은 색은 신장의 색이고
그래서 이게 신허에 쓰는 보혈제이며 신장은 머리카락의 건강에 관련있고 머리카락은 혈지여 라고해서 혈액의 부산물이라고
한의학에서 말하는데 뭐 그럴싸하다.

나이 들어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걸 굳이 염색하고 검게 만든들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데 병적으로 흰머리가 많아진 사람이 있고 그게 신허로 인한 것이라면 적하수오가 어느정도는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정도로 쇠약한 그런 환자는 벌써 보기에도 영양이 형편없이 부실해 못먹었거나 방사를 너무 심하게 하였거나
쇠약의 정도가 보통이 아니어야 한다. 요즘같이 영양과잉 시대에 그 정도의 신허환자는 만나기 힘들다.

북한에 가도 평양에서는 볼일이 없을 것 같고 북한의 오지 마을에나 가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요즘처럼
사람들의 신기가 대체로 튼튼한 시대에서는 이 약재를 먹는다고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할 일이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력에도 좋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거 없다. 정력어쩌고 이야기하면 그건 대부분 사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한의학에서 하수오라고 하면 적하수오를 말한다. 백하수오는 사실 한의학에서 별로 쓰이지 않고 별 효능도 없다.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부 하수오로 돈벌려는 사람들 뿐.

적하수오는 보혈제로서 혈허, 신허, 간허로 인한 어지럼증이나 눈이 침침한 증, 경미한 백발증, 혈허로 인한 만성 허리병 등에
효능이 있다. 소위 신허증으로 인한 유정 활정 등.. 그러나 이또한 이런 정도의 신허 환자를 보기란 요즘 시대에 쉽지 않다.

사실 모든 보약이 다그렇다. 보약은 원래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인 그런 약이 아니고 인체의 허증을 치료하는 개념이다.
필요없는데 몸 더 좋아지라고 먹는 약이 보약이 아니다. 그런 한약은 없다. 그런데 세상에 옛날 처럼 치료가 필요할만큼
허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간혹 있다. 그러나 거의 만나기 힘든다.

그럼 적하수오는 쓸데없는 한약재인가? 나는 이약을 만성 콜레스테롤 환자에게 써서 대단한 효과를 본적이 있다.
물론 이 것만 쓴 것은 아니지만. 적하수오는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동맥경화를 완화하고 혈압을 내리는 효능이 좋다.
사실 상당히 좋은 효능이 있다. 고지혈증에 동맥경화 및 고혈압이 있는 친구라면 오래도록 차로 끓여 매일 두번씩 마시면
반드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믿는다.

근데 이것을 생으로 쓰면 독성이 있는바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니 뭔가를 해야하는데 일반인이 하기 어렵고 귀찮다.
그러나 보통 구증 구폭이라고 하는 법제를 한 하수오를 구입하여 사용할 것. 이런 짓을 안한 것이 생하수오인데
따라서 생하수오는 변비에 쓰고 소염작용이 강해 항생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

임상례)

근래 내원한 환자 중에 평생 고지혈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백인이 있다. 가족력이 있으며 식단은 건강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타틴을 거의 평생 복용해왔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고지혈은 꿈쩍도 안하며 계속 증가해왔다.
그로인해 HEART ATTACK 도 한 번 왔었다. 또 하나의 심동맥이 75%까지 막혀있다.

나는 그의 고지혈증을 간병으로 보고 치료했다. 한약도 썼다. 그냥 고지혈증 및 관상동맥 증에 쓰는 처방을 썼다. 3개월 치료했는데
오늘 혈액검사 결과를 가지고 왔다. 혈중 콜레스테롤수치가 반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 25년동안 꿈쩍도 안했던 수치. 그리고 관상동맥도 75% 막힘에서 65%로 떨어졌다.

내가 쓴 한약처방

단삼 24g 천궁 15g 적작약 15g 홍화 12g 강향 12g (여기까지는 천진 의과대학 관상동맥증 한약처방) + 향부자 시호 각 10g + 적하수오 20g 이상 하루양, 끓여서 세번에 나누어 마신다. 3개월 복용.
 
 
 

 

 

 



개인주의 속성을 지닌 인간의 대표적인 본능적 행위 중 하나는 집단행동이다.양자는 매우 상대적이나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개인은 집단을 통해서 성장하며 집단을 변화시켜 결국 개인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양자의 관계는 매우 커다란 전략적인 의미를 지닌다.집단의 질적인 변화가 물리적인 운동에 의해 방향성을 지니게 되는데 여기서 질적변화의 구체화는 개인들의 집단에 대한 행동양식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별하여 부족주의는 보수화로 치닫고 팀플레이는 진보의 근간이 된다.

잠시 축구로 들어가보자.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는 메시와 현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 그는 레알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날들을 보냈다. 그런 그가 근래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다.

노쇠화에 빠졌다는 둥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과거와 다른 점은 팀을 믿지 않는다는데 있다. 팀자체에 대한 불신에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다. 즉, 팀플레이가 상실된 것이다. 주변을 믿지 않으니 집단의 힘으로 전진하는 공식이 사라진 것이다.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나아가려하니 집단이 힘을 잃을 수 밖에. 보수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다.

그에게 있어 레알 마드리드는 오직 자기를 위한 집단에 불과하다. 과거 레알을 통해 성장하고 레알의 팀전술에 녹아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오르려고 했던바 동료들을 믿고 동료들과의 협력에 의해 팀을 승리로 이끌며 자신을 최고로 만들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오로지 팀을 자신의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집단에 대해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부족주의적 퇴행행동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부족주의는 그저 영토와 지역정도로 단순했다면 근래의 이것은 지역별, 학력별, 계급별, 성별, 종교등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부족주의적 퇴행행동 집단을 들라면 검찰을 비롯한 관료조직, 탁상공론화된 교수사회 그리고 배타적 지역 또는 학벌 집단 및 종교집단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검찰 권력은 사회진보를 가로 막는 대표적인 부족주의적 집단이다. 그리고 입만 살아 그저 가르치려들고 우대받으려는 구조에 빠져있는 교수집단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부족주의 행태를 스스럼없이 보이는 것이 " 00 향우회' ' k대 동창회' ' 00교회' 같은 집단들이다.

'우리가 남이가' 는 부족주의의 대표적 슬로건이며 '묻지마 지지'는 부족주의의 강령이다. '차별과 배타주의'는 부족주의 행동의 결정체다. 따라서 부족주의가 횡행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독재가 날뛰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상설화된 수많은 단톡방이나 밴드 조직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의 위험성을 항상 지니고 있다. 부족주의적 행태를 sns로 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모순 속에서 갈등한다. 가만 있으면 퇴보하는 것이기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쨋거나 사회 진보를 꿈꾼다면 팀플레이로 가야하고 천재가 나와야 하고 창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편성의 원칙 속에서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하며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각종의 봉건적 올가미를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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