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리즈의 경우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4기통 터보, 257마력의 430i Xdrive 와 6기통 터보,382마력의 M440i Xdrive 두가지 트림으로 나옵니다. 각각의 트림은 여러가지 편의 및 안전사양들을 스탠더드로 장착해 Base 모델로 내어놓고 여기에 외장색, 시트, 타이어, 실내 트림을 선택한 후, 4가지 패키지와 개별 프리미엄급 편의 및 안전 사양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430i와 M440i의 가격 차이는 약 13000불(1300만원) 정도 되며 당연히 기본 옵션과 사양, 외관에서의 차이가 있습니다. 

M440i는 M퍼포먼스 트림이라  M스포츠 서스펜션, M디퍼렌셜, M스티어링등 M감성의 장치와 사양들이 기본으로 들어 있으며 무엇보다 430i에서는 반자율 주행 옵션을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옵션빠인 나는 M440i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빨간색 캘리퍼를 너무나 원했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블랙 익스테리어가 들어가는 패키지를 선택해야해서 부득이 포기하였습니다. 미러와 그릴의 세륨 그레이 포인트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 장착되어 나오는 블루 캘리퍼도 나쁘진 않더군요.

 

먼저 제 차의 실내를 보여드리고 나중에 제가 차를 받자마자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제 사는 곳의 BMW 딜러쉽에서는 선물이나 화려한 출고 이런거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차 값도 깎아주지 않고 

그냥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정도 ㅎㅎ  이날 같은 시간에 출고 차가 3대나 있었어요. 

 

 

BMW의 뒷모습은 정말 BMW다워요. 쿠페의 멋은 프레임리스 도어에 있는 것 같아요.  마치 프레임리스 선그라스를 낀 것 같은 느낌.  웬지 이 차에는 어울리는 옷이 있을 듯 해요. 캐주얼 수트같은 것? 

 

 

 BMW의 실내는 정말 독일차스럽죠. 실용적이면서도 만듬새가 좋아요. 처음 보는데도 마치 오래 본듯한 익숙함이랄까. 그러나 오래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마치 독일 고전음악이 들으면 들을 수록 마치 새로운 듯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요.

 

 

제가 고백하지만 G70을 선택하지 않았던 몇가지 이유 중엔 분위기등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어요. 이번에 새롭게 페리되는 G70에도 여전히 분위기등은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차의 분위기등은 색상 수도 많지 않고 밋밋한 수준이지만 절제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Tacora Red 시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선택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우디 S5 도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절제미와 특유의 감성이죠. 발트 드 실바 (Walter De Silva) 의 디자인 감각은 진보적이면서도 심플하여 정말 매력이 있어요. 그러나 현재의 S5는 수년째 그대로입니다. `완벽하니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제가 너무 많이 봐버렸어요. 좀 질렸어요.  그러나 BMW는 많이 봐도 질리지 않는 어떤 요상한 힘이 있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운전하고 싶은 모습.  웬지 내 뜻대로 정확하고 충직하게 움직여 줄것 같은 느낌. 나와 한 몸으로 놀아줄 것 같은. 

 

 

제가 실내 트림을 무조건 카본으로 한 것은 순전히 이 차를 오래 탈 예정이기 때문이예요. 일단 15년이 목표입니다^^

 

 

디지털 클러스터는 제 마음에 너무 듭니다. 이유는 이것일 거에요. 제가 쏘나타 계기판을(클러스터가 아닌 ㅋㅋ)  17년간이나 보아왔기때문에.. 뭔들 새롭지 않겠어요.

 

 

저는 기어봉이 좋습니다. 버튼 식은 아직 익숙치 않아요. 조그다이얼도 너무 편리하고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하만카돈, 서라운드 뷰, 컴포트 엑세스 등 9가지 옵션과 함께 프리미엄 패키지에 들어 있습니다. 

 

 

갈바닉 컨트롤이라고 하죠. 그냥 플라스틱 버튼이 아니니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S5는 플라스틱.  

 

 

요녀석이 정말 재미있고 캘거리에서는 시내주행에서도 빈번히 사용됩니다. 준고속도로 수준의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입니다.

 

 

겨울이 6개월이라 스티어링 열선은 모든 트림 기본 장착입니다.  M 벳지는 이 차가 M 패키지가 아닌 M퍼포먼스임을 알려주고 있지요.

 

 

선루프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옵션입니다. 기본 장착되어 있습니다. 실내등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요. 

 

 

뒷좌석 공조기도 괜찮습니다. 뒷좌석은 생각보다는 넓고 앉을만 했어요. 허리 받침대만 준비하면 그런대로 몇시간은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뒷자리에 사람 태울일은 없지만. 

 

끝으로 흑백사진으로 찍어보았어요. 

 

 

 

 

 

 

 

 

 

이제 제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차를 받던날 그 감동의 깊이와 파장은 인생의 몇 안되는 경험이리만치 크고 놀라웠어요.

정말 오랫동안 고르고 기다려왔기에 더욱 그랬지요. 그래서 차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미리 차 설명서를 다운 받아 공부했어요. 차를 받고 집으로 와서 바로 여러가지 기능들과 옵션들을 시험했죠.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탑앤고, 반자율 주행을 켰어요. 그런데 차선이 하나만 표시되어 있고 70km 속도 표시 위 핸들이 회색이에요. 기능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인텔리전트 안전 옵션 버튼을 눌렀더니 이렇게 뭔가 안되고 있다는 표시가 떴어요. 그래서 제가 뭔가 잘못 설정을 했나 싶어 처음부터 다시 설정을 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똑같은 상황. 

 

 

급기야 뭔가 문제가 있어 운전자 보조기능이 일시적으로 작동안된다는 멧시지가 떴어요. 주행에는 아무문제 없으니 계속 운전해도 된다면서.

 

그래서 그날 바로 딜러쉽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어요. 그리고 신차 설명 담당자에게 직접 운전하며 시험해보라고 했죠.  역시 결과는 똑같았어요. 뭔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월요일 아침 일찍 서비스를 받자고 했어요. 그날이 토요일이었거든요.

 

꿈에도 그리던 신차를 받자마자 반자율주행 기능 고장,(고장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어요)이라니.. 정말 슬펐어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닐거라는 신차 출고 담당자의 말에 위안을 삼고 주말을 힘겹게 보낸 후 아침 7시 서비스센타가 문을

열자 마자 차를 접수 시켰습니다.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담당자가 친절하게도 이메일을 보내놓은 상태라 별 무리 없이 접수가 되었죠. 

 

 

수리하는 동안 기다렸습니다. 대개는 일터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딜러에서 그냥 기다렸어요. 두시간이 지나니 ` 점검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소프트웨어를 모두 점검했고 모든 기능이 정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하며 비록 첫날부터 고장수리라니 기분이 안좋았지만 액땜이라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다시 받

아들고 출근길에 올랐죠. 

 

그러나 웬걸 도로에서 그 기능을 다시 시험해보니 여전히 똑같은 메시지에 똑같은 경고문구. 반자율주행 기능은 거리 조정만 되고 차선 이탈 방지나 차선 유지기능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이메일을 넣었더니 서비스센타에서 답이 오기를 내가 설명서를 충분히 숙지 하지 못해서이니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답이 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해야해서 퇴근후 집으로 돌아오며 가르쳐준대로 해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고 역시나 문제는 매한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새벽 다시 무작정 서비스센타로 찾아갔죠. 센터에 가기전 새벽에 담당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현재 상황과 나의 Blue Heart를 꼭 고쳐달라고. 

 

담당자는 제 편지에 감동했는지 좀더 진지하게 대하며 오늘은 반드시 고쳐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딜러가 페이하는 우버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하루종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이 오기를 내일까지 차를 서비스센터에 둬야겠다고 하며 다시 우버를 보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우버를 타고 출근했고 나는 차를 고치지 못하게 될까봐 온갖 불안한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연락이 오기를 여전히 문제가 해결 안되어 차를 하루 더 센타에 둬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차 서비스로 차를 대여해주겠다는 것이었죠.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갔습니다. 

 

차를 받자 마자 차도 없이 비록 딜러가 돈을 내지만 우버로 출퇴근하고 급기야 대차 서비스를 받을만큼 차수리가 길어진다니.

독일 본사에 연결해서 원격수리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울했죠. 못고치면 새차로 바꿔주나.. 그러면 똑같은 차 받기 까지 나는 차없이 어떻게 하나. 그때까지 대차 서비스해주나.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터질즈음에 센터에서 걸려온 전화. 

"차 고쳤어! 시험운행까지 했고 모든 기능 정상 작동하는 것 확인했어" 

 

그리고 오후에 차를 제 사무실까지 달리버리 해주었습니다.  마침 소프트웨어 테크니션이 휴가 중이었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전달했고 그 친구가 전화로 지시하여 스포트웨어 업데잍 및 리셋을 했더니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차를 받자마자 5일 동안 마음고생을 했지만 호사다마,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런거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는데

BMW 서비스 팀의 헌신적이고 진실한 대응과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배려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도 하나의 상품인데 불량도 날 수 있고 고장이 나기도 하죠. 그러나 그럴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태도로 나오는

지가 중요하다고 볼 때 앞으로 이 차를 소유하는 동안 이 서비스 센터와 관계를 계속 맺어야할 터인데 이번 일을 기회로 

그들이 제 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하니 이 번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여기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제 차를 받은지 20일, 1000km 주행을 막 넘어섰습니다. 모든 기능 정상이며 아직 길들이기 기간이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M감성, 382마력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살짝살짝 느끼며 슬기로운 신차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말 긴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마침내 !!  17년간 애마였던 쏘나타 3.3L V6와 `헤어질 결심` 을 한지 2년 6개월여만에

샤로운 애인, M440i 가 내 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내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고 해야 맞을 듯 합니다.

쏘나타를 넘겨줄 때 그렇게 서운하더니 새차를 만나러 가는 중에 그 서운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새애인 만날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정절이란 없는건가. 사람이 이리 간사할 수가!

계약후 6개월의 기다림끝에 BMW를 처음 만난 순간은  숨이 멎을 듯 그 설레임의 정도가 인생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만큼 특별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마음 같아선 최소 15년 이상은 이 차에 대한 정절을 지킬 것 같은데 말이죠.

 

 

첫인상? 아름다웠습니다. Artic Race Blue 의 exterior컬러는 저의 최애 색인 불루의 깊고 그윽하면서 북극해의 햇살아래 반짝이는 짙푸른 감성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BMW하면 불루죠. 그리고 뜨거운 심장,6기통 실키식스 직렬엔진이죠. 그래서 이 차를 보자마자 "My Blue Heart" 나의 푸른 심장으로 이름지었습니다. 나의 푸른 심장은 뜨거운 심장입니다.  382마력 51 토크의 강력한 힘으로 도로를 당당히 질주 할테죠. 그러면서 직렬 6기통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지요. 야성과 함께 감성의 뜨거운 심장이니까요. 남은 인생, 내 삶의 동반자로, 강력함과 함께 부드러움으로, 푸른색의 색온도가 높은 것처럼.  뜨겁게 살아야죠. 

 

 

원래는 빨간색 스포츠 세단을 원했습니다. 눈덮인 록키의 고봉 사이 도로를 빨간 스포츠카로  달리는 꿈, 시리도록 아름다운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따라 태평양 싯푸르 바다를 보며 빨간 스포츠 카로 달리는 꿈. 그러나 BMW에 레드는 웬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무채색은 내 취향이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나의 최애 블루로 별고민없이 정했죠. 

 

그러나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빨간 자동차에 대한 꿈! 그래서 대신 시트를 빨간색으로 하기로 하고 

Tacora Red 가죽으로 선택했습니다. 타코라 레드는 새빨간 색이 아닙니다. Burgundy에 가깝죠. 

약간의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은은한 붉은색이죠.

 

타코라는 칠레의 화산 이름입니다. 그 화산에서 발원된 물로 많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죠. Tacora Wine.   

아마도  BMW의 타코라 레드는 이 타코라 와인의 붉은 색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요.  

타코라 붉은 시트색이 북극해 푸른 외장색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파격과 대 변신의 vertical Kidney Grill. 전면부의 주연으로서 강인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처음본 그때부터 이 디자인의 묘한 매력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밋밋함을 싫어했고 남들과 똑같은 것을 피했으며(약간의 관종끼?) 새로운 것에 늘 강한 호기심을 보였던 터라던 강한 개성의 세로형 키드니 그릴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울리는 형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주변 범퍼와 에어덕트가 훌륭한 조연으로 받쳐주고 가운데로 모아지는 보닛 라인과 날렵한 형상의 헤드 램프는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웅장함과 함께 잘 조화되어 진보적이고 역동적인 조화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임승모 디자이너. 본인의 외모는 섬세한 편인데 선이 굵은 이런 디자인을 해낸 것 은 그가 도톰한 입술을 가진 때문일까요. 역시 조화로운 삶의 한 단면이 아닐런지요. 그의 과감하면서도 결코 밸런스를 잃지 않는 부드러움의 디자인 철학은 차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블랙 익스테리어를 선택하면 세륨그레이 포인트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블루에 블랙익스테리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블랙은 흰색, 빨간색, 혹은 노란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합니다. 블루와 블랙은 같은 어두운 톤이라 무거워보이는게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M440i의 스탠더드인 세륨그레이는 업그레이드된 프리미엄 버전이기에 개인적으로 놓칠 수 없었습니다. 

 

 

BMW 레이저 라이트는 캐나다에서 매우 유용한 옵션입니다. 워낙 넓은 땅이라 조금만 나가면 차량 통행도 드물고 가로등도 없는 길이 무한정 뻗어 있지요. 특히 겨울엔 밤이 길어 이럴 때 레이저 라이트는 진가를 발휘할 겁니다.  

 

 

레이저 라이트가 들어가면 이렇게 푸른 색 부품이 들어가서 헤드램프의 디자인을 훨씬 풍성하게 보이게 합니다. 

 

 

 휠은 19인치 이며 summer performance tire를 주문했다가 3월 중에 차가 나온다고 해서 다시 올시즌 런플랫 타이어로 주문변경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5월이 되어야 봄입니다. 4월까지는 눈도 많이 오고 기온도 낮아서 윈터 타이어가 필수죠. 섬머 타이어는 다음 타이어 바꾸는 주기에 한 번 경험해보려 합니다. 

 

옆모습은 자동차 종류 중 가장 아름답다는 쿠페세단답게 이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시리즈보다 낮은 차체와 운전석에서 시작되는 떨어지는 쿠페라인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가히 예술적입니다. 사진에서 앞바퀴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지만 앞뒤바퀴는 편평비만 다를 뿐 같은 사이즈입니다. BMW 차종 중 가장 긴 도어와 짧은 오버행, 도톰한 펜더 부위는 이 차가 정말 날렵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정통 스포츠 세단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 쿠페는 자유다'  쿠페는 실용성의 덫과 정형화된 세단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자동차 본래의 특성에 최적화된 형태에 멋과 스타일을 입혀서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비록 얽혀있는 관계 속에 살지만 자동차만큼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사고 싶었습니다. 프레임리스가 주는 자유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창문을 내린채 문을 열고 하차하면 프레임없는 텅빈 개방감에서 족쇄가 풀어진 느낌을 받거든요. 

 

 

M440i의 뒷모습은 전형적인 BMW입니다.  3시리즈와 달리 웨이브 진 테일램프는 더 낮아진 차체와 더불어 4시리즈의 개성을 표현하며 잘 달리는 차임을 표현해주고 있네요. 블랙 익스티리어 옵션이 아님에도 디퓨저는 검정색으로 하이그로시같이 되어 

강인한 인상을 주네여. 마음에 듭니다. 

 

 

 

 젊었을 때 카투사로 복무하며 정말 다양한 차종을 몰았는데 그 때 동료 미군으로부터 운전을 많이 배웠습니다. 4륜 지프와 오프로드를 운전하고 닷지 램 4륜으로 경북 시골길을 쏘다니고 시보레 승용차로 고속도로 순찰을 다녔습니다. 그때 운전의 재미를 알았고 사륜의 코너 주행 안정성과 직진 가속력의 묘미를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살면서 이를 제대로 누리고 느끼진 못했어요. 우리 세대는 그랬죠.

 

 

캐나다 M440i는 382마력에 51토크입니다. 제가 다 쓰진 못할 겁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그 힘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차가 거의 막히지 않습니다. 출근 길 20km가 너무 짧아요. 그러나 준고속도로도 있고 코너링 구간도 있고 살짝살짝 M 감성을 느껴볼 수 있기에 출퇴근이 마냥 기다려 지네요.

 

다음 얘기가 궁금할 지 모르겠어요. 2편에서는 실내 이야기와 옵션 및 패키지 이야기를 할게요. 북미는 한국과는 차량 트림과 옵션 선택이 다른 것 같아요. 베이스 모델이 71000불인데 아마도 풀옵으로 가면 10만불이 넘어갈거에요. 제가 선택한 옵션들도 소개하고 지면이 남으면 차를 받고 생긴 정말 가슴아플 뻔 했던, 1주일간 잠못 이루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시대를 떠나 역사와 무관하게 살수 없는 우리들. 오늘을 살아내는 의미를 과거로 부터 찾고 배우는 중에 맞딱뜨리는 현실은 인간의 끔찍함이다. 그러나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희망하기를.
선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명에 맞서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간 철의 여인이다. 최악의 환경과 조건에서 놀라운 투지와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믿을수 없는 적응력으로 살아남았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의 비극적 첫 아들 노아는 지적 수련에 비해 지나치게 폐쇄적이며 일종의 결벽증에 빠졌다고 볼수 있다. 현실과 이상의 철저한 분리 속에서 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삶과의 싸움에서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 강한듯 보였으나 결국 나약한 패배주의에 빠진 것.
결국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버티고 살아가야한다. 그의 권총 자살은 충격이었으나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찾는 존재이다. 
운명에 맞서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요구되는 때가 인생에서는 반드시 찾아 온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면. 혼신의 힘을 쏟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존재의 끔찍한 실상에 대해 새삼 분노하고 절망했다.
과연 인류에 희망이 있으며 미래가 있을까. 생존이란 이름하에 등쳐먹고 차별하며 모략을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한 모습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무엇을 희망할수 있을까. 절망의 나락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희망하지 않을수 없다. 사람에 꿈을 두고 세상의 진보를 믿으며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장미로 살아가야함을 선언하지 않을수 없다.
선자의 아들 모자수, 그 아들 솔로몬이 희망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캘거리는 노을의 도시다. 긴 겨울의 꽃. 날마다 희망을 본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거죠.
 
 
어제는 오래만에 Deer Hunter 영화를 리바이벌 해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반전 휴먼드라마로 명분없는 전쟁과 그 후유증이 남긴 인간성 파괴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영화죠. 비록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으로 그려졌다는 한계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아시아인 비하의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당시 종전후 미국사회에 만연한 상처와 아픔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수작입니다. 
 
무엇보다 클래식 기타 독주곡으로 널리 애청되었던 주제가 카바티나는 그 선율의 애잔함과 서정성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주제보다는 주인공들의 우정에 특별히 주목하였습니다. 일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그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싸우고 있는 베트남 공산정권의 본산인 소베에트 연방 소속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들이었습니다. 
 


  

 
펜실베니아 공업지대는 오늘날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동북부 공장지대를 말합니다. 터프하고 팍팍한 이미지의 불루컬러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옛소련 우크라이나 이민자출신의 후예들이 제각각 가난한 불루컬러의 삶을 살아가면서 쌓아온 우정은 마침내 친구를 위해 사지로 뛰어들도록까지 깊고 절실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흔한 즐거움과 함께 슬픔도 나누며 서로의 삶에 훌륭한 동반자들이 되어주었습니다.  터프한 환경과 팍팍한 삶에서 고단한 삶들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친구들의 이런 우정이야말로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지요. 
 
아마도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미국 주류 사회에 대해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로서의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하여는 그들끼리 더욱 진득한 우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캐나다의 소수 이민자들인 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제게도 여기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친구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어렸을적 부터 사귀고 알아온 친구들은 아니지만 이민자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들어내기 힘든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동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 정신과 뜻을 바탕으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작지않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명분없이 단지 죽이고 죽이는 살상만이 남은 베트남 전쟁 속에서 평범했던 공장지대 그 친구들이 전쟁이 남긴 광기어린 모습으로 인간성이 철저히 부정되고 파괴되어 간 것을 보며 마치 팍팍한 이민생활에서 생존이 제일의 목표가 된채 살아온 결과 스스로 지닌 참된 인간성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God bless America를 부르며 끝난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건전 홍보영화를 보는 듯해서 유치했지만 남은 친구들이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다시금 살아가게되는 힘은 결국 서로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랑, 우정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디어헌터 그 친구들같은 우정이 있다면 정말 그 어떤 삶도 부럽지 않을텐데요.


북미 사람들 외에는 별관심이 없지만 영화의 첫장면에서 이 친구들이 일을 마치고 바에서 풋볼, 미식축구 경기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 바로 필라델피아 필리즈 경기입니다. 아마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인듯 한데 둘이 라이벌이죠. 올해 그 필라델피아 이글즈 팀이 수퍼볼에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영화완 별관계없는 얘기지만.. 

영화가 주는 즐거움 중 으뜸은 영화속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지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속의 그들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지만 인간으로서의
동일한 공명 속에서 서로 호응하고 있음에 놀란다.

인간은 누구든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존엄하며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에게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개조하고 단죄할 권리가 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나에게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도 있고
모두에게 있는 존엄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터키 영화 I saw the Sun 이 호소하는 메시지는 이제 어쩌면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클리쉐일지도 모르겟다.
테러와 전쟁으로 인한 비극, 그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 비극적 가족사등은
오히려 영화가 나온 그 때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영화는 거칠고 야성적인 터키어의 발가벗은 듯 강열한 느낌에 힘입어
보는 이의 감성과 이성을 두드려 깨우고 인간 존재의 존엄함을 회복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를 멋지게 표현했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림같이 아름다운 쿠르드 족의 고산 빌리지와 터키 제일의 도시 고도 이스탄불,
지극히 이성적이고 인간적이며 현대적인 노르웨이의 풍경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자기들 뜻과는 상관없이
격랑에 이리저리 내몰리는 쿠르드 가족의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비극적 주제와 맞물려 전개되는 그들 가족에 포함된 성적 소수자의 또다른 비극적 삶을 통해
인류가 이뤄내야할 진보의 강물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한참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 최대 도시 이스탄불... 로마제국, 비잔틴 제국을 거쳐 오스만 터키의 수도였던 인구1500만에 이르는 거대도시..
비록 영화는 필요에 의한 보여줄 것만 보여주었으나 한 눈에 보아도 아름다운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이성적이며 인간적이며 별천지 세계로 살아가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평화롭고 깨끗하며 지성적이나 그들만의 세계.. 언제나 흐려 태양을 그리며 살아야하는 곳.

분명 나은 조건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나 낯선 이방인의 땅.
그러나 그들 쿠르드 족의 하늘 아래 고산 마을은 언제나 해가 있어 아름답고
또한 차별과 다툼없이 그들이 원래 살아온 그대로 살 수 있는 곳이라 익숙한 곳.

"비록 전쟁통의 척박한 땅이지만 늘 불러왔던 노래 그대로 부르며
내땅에서 서로를 품고 사랑하며 살아온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것인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스탄불을 여행한 기분. 안가봐도 될 듯 ㅎㅎ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과 함께
3대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이노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다 버전의 오리지날 송이다.





1964년 작곡된 이노래는 니나 시몬느를 위해 정통 재즈로 작곡되었다. 그것이 이듬해 부루스 락으로 리메이크 되었다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어 한 때 디스코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녀의 삶과 의식 속에 녹아져 있는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자유를 향한 갈망,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은 채 특유의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해석되어져 나오는 이 원곡으로 들을 때 가슴이 요동친다.

니나는 분노와 좌절이 있거든 세상을 향해 주저없이 외치라고 했다. 골방에 박혀 좁은 세상에 갖힌 채 절망한 영혼들에게 자신을 찾아 사랑하고
드러내어 존엄을 회복하라고 한다. 인류의 대표자가 되라고 한다.

********
보졸레는 저렴하나 매우 신선하고 경쾌한 와인입니다. 꽃과 과일향이 풍부하며
감미롭기까지 하죠. 그렇다고 천박한 단맛은 절대 아니죠. 니나가 사랑한 프랑스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이 노래와 어울릴까요?




이 영화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서브프라임 몰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 금융시장 붕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또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인간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즉 돈과 인간성에 대한 생각, 돈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바른 품성과 자존감으로 살아가야할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릿과 런던의 더시티는 현대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상층부다. 중국이 그 하부구조로서 세계의 생산공장이라면 런던과 뉴욕 월스트릿은 상부구조로 굴뚝없는 세계 자본주의의 금융공장이다.

중국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원료를 이용하고 인간의 집단화되고 시스템화된 노동에 의해, 그리고 인간이 개발한 과학 기술에 의해 인간에게 필요한, 또는 필요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차익(이윤, profit) 을 남겨 돈을 버는 산업 자본주의의 전형이라면 뉴욕을 비롯한 전세계 금융허브(뉴욕, 런던,싱가폴, 홍콩, 등등..)를 두고 있는 국가들은 이런 산업자본주의에 더해 그렇게 해서 버는 돈으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돈을 버는, 즉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노동 착취를 기본으로 하며 금융자본주의는 자본 착취를 기본으로 한다. 착취란 영어로 exploit, sweat, underpay, 등등 과격하게 말해서 남의 등을 쳐먹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가 이윤을 창출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다. 우리가 젊은 날 사회체제에 대해 싸웠던 것은 이러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이었다. 착취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파생한 온갖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이 돈 앞에서는 도덕이고 철학이고 인간미고 뭐고 너무도 쉽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마는 것을 본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아마 누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면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런 상황에서는 아니요 ! 라고 외치며 파괴적 이기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돈이란 바로 나의 삶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의 삶 하나하나에,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당장 기숙사비를 보내야 하고 금전적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고국의 부모형제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인간적인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위해, 집을 비롯한 나의 현재 모든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 중의 하나는 그런 자신의 현재적 삶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돈 때문에, 자신이 현재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를 수습하는 방식이 자신의 일반 동료를 비롯한 이웃, 나아가 전세계 수많은 무고한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안길수도 있음에도 기꺼이 수행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는다. 미국의 수많은 일선 금융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일반 기업이 파산하고 산업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엄청난 수의 집들이 경매에 넘어가고 그결과 전세계 경제가 휘청되어 세계경제 위기로 이어져, 청년 실업, 도산, 파산, 자살 등등 비극이 몰아닥쳤지만 그 주인공을 비롯한 세계 금융산업의 금융엘리트들은 여전히 페라리를 몰고 고급주택에 살며 럭셔리한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다행이었는지 능력이 부족했던 지 이런 형태의 삶 속에 있지 않았다. 그 속에 있었다면 일견 잘 해낼 수 있는 그런 자질을 지닌 것도 같지만 어쩌면 나의 성향상, 기질상, 철학적인 갈등으로 인해 내가 그 바닥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날에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헌신했고 그 이후에는 가정의 소박한 가장으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민을 온 이후는 비록 밥벌이로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의 아픔을 다루는 직업을 가져 나름대로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딸이 한의원 비지니스를 좀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내게 조언을 했다. 아마도 때로 재정문제로 허덕이는 모습을 보며 나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래서 내가 아래의 내용으로 딸에게 내 입장을 말해주었다.

나는 앞으로 가능한 점점 일을 줄이려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더 바빠지고 싶지 않다. 남은 나의 인생을 지금보다 더 바쁘게 일하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돈이 필요하고, 아니 더 필요하고 사실 상당히 필요하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러하고 당장 나의 좀더 여유있는 삶을 위해서 사실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가진 돈이 정말 없다. 나올 곳도 없다. 때론 생각하면 이런 현실이 한심할 때도 있고 무섭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일견 모순되는 생각같고 한가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다소 줄이고 포기하더라도 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소중한 시간, 나의 인간성, 나의 철학, 삶의 모토, 도덕적 자부심, 인간적인 삶 등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가족을 사랑하며 일상의 소중함에 늘 감사하며 세상의 고통에 연민하고 공감하며 진리의 편에 서며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며 사는 그런 삶. 이런 삶에 기본적으로는 그리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을 더 벌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더 잘 갈 수 있고 가족들이랑 더 즐길수도 있겠고, 이웃들을 조금 더 풍족하게 도와줄 수 있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한의원 이외에도 관심있는 분야가 너무 많다. 사실 돈안되는 일이고 그리고 돈이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록 이렇게 시골 촌부로 가진 것도 없고 이름도 없이 살아도 자존감하나만은 잃지 않으려 한다. 아무도 인정 안해줘도(아내와 딸들만 인정해주면 족하다 여기지만) 스스로 진리의 편에 서서 바른 생각으로 살며 그것을 일상 생활 구석구석에서 실천하고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먼곳의 아픔에도 공감하며 거짓을 행하지 않고 (물론 작은 거짓은 피할 수 없어 괴롭지만) 무엇보다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 속에서 살아 있음을 자각하고 나름 예술과 스타일을 추구하고 좋은 아빠와 남편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이런 삶에 돈이 많이 필요할까? 물론 돈이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만큼 씀씀이에 여유가 생기고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삶을 위해서는 돈보다는 여전히 바른 철학과 품성, 의지가 요구되고 절제와 조절이 필요하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 데 필요하다면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것들 다 처분하려고 한다. 사는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소비와 소유를 줄여 홀가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그런 날이 오겠지 하며 산다.

이야기가 잠시 곁으로 빠졌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해준 말은 이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살아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란 필요한 것이며 가치환산의 수단이니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합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돈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스스로 보람있게 여기는 일을 찾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언제나 인류단위로 사고하며 스스로 자존감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바른 철학과 신념, 인간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서처럼 전직 로켓 과학자인 주인공 중의 한사람이 돈에 의해서 자신의 소중한 커리어를 버리고 곁가지로 나아가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짓. 돈에 인생이 팔려서는 안된다.”



다이앤 레인은 소위 7-80년대 하이틴 미녀 삼총사 중의 하나였다.
브룩쉴즈, 피비캣츠와 함께. 그러나 그녀의 용모와 재능에 비해 맡은 배역과 작품은 의외로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성공에 그리 안달내지 않았던 그녀의 참 매력은 바로 이들 영화 속에서 비로소 만개했다.
Unfaithful, Paris can wait, Under the Tuscan sun 등이 바로 그 영화들이다.

사실 Unfaithful은 안봐서 모르겠다.
다만 다이앤 레인의 섹시미가 돋보인 수작이라는 거 외에는.

나머지 두영화의 공통점은 역시 다이앤 레인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영화라는 것이다. 지적 용모와 풍부한 표정, 자연스럽게 나이들어가는 여인의 섹시함까지.


칸느에서 파리까지의 로드트립을 플롯으로 한 영화' Paris can wait' (파리로 가는 길) 은 영화 제작자로 너무나 바쁜 남편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여자라는 아내의 내면이 남편의 사업파트너이자 오랜 지인이었던 그러나 분명한 외간남자인 프랑스 남자 자크와의 여행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영화가 선사하는 각종 장치들, 미장쉔들이 주는 재미와 아름다움, 호기심이 더욱 매력적인 영화였다.
프랑스 전원 도시들의 지극히 프랑스적인 아름다움들이 마네와 세잔느의 그림을 통해, 정말 mouthwatering 말 그대로 군침을 돌게하는 프랑스의 각종요리와 와인들을 통해 마치 프리젠테이션 하듯 그려졌다.

여든한살의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섬세하며 디테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주인공 여자가 들고 다니며 시도때도 없이 찍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라이카 카메라의 디테일한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여든 한살의 이 감독은 여자다. 그녀는 여자 영화, 적어도 여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직접 각본을 쓰고 대사를 만들었다. 그랬다. 자신의 경험을 살짝 각색하여 만들었다고 한것으로 우리는 한 중년 여자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다이앤의 농익은 연기를 통해 연출 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녀는 다름아닌 할리웃의 상업적 감독 패밀리,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아내, Eleanor Coppola 이다. 원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였는데 이 작품은 그런 그녀의 첫번 째 상업 극영화이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등으로 할리웃을 평정한 상업영화의 거장인데 이 집안이 죄다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이 두사람 사이의 딸이 바로 소피아 코폴라. 누군가 하면..
그렇다. 대부 3편에서 꼴레오네의 딸로 나오는 그 여자다. 헐! 프란시스 코폴라는 이 무지막지하게 연기를 못했던 딸을 대부에 캐스팅을 했다니 ..( 맛탱이가 갔군)
그러나 소피아는 자신의 발연기를 바로 알아차리고는 배우를 그만두고 감독으로 데뷔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베니스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유일한 부녀 수상) 프란시스의 손녀도 영화 감독이라니 3대에 걸쳐 네명이 동시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감독 마피아 패밀리인 셈.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각종 프랑스 요리는 미국의 NAPA Valley 의 어느 Vineyards 에서 Chef 로 일하고 있는 세계적인 Culinary Director 인 Maria Sinskey 의 특별 요리라고 하는데 각종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까지 레시피를 공개해 놓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깐느에서 파리로 가는 길은 7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이 로드 무비는 1박 2일을 풀로 채워서 겨우 파리에 도착하게 된다. 다이앤은 빨리 파리로 갈 것을 재촉하나 동행한 프렌취 외간 남자는 " 파리는 어디 안가니 걱정말아요"

우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작 목적을 하나하나 채우고 있는 도중의 디테일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사는지 삶의 소중한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지 않은가.

행복은 파리에 있지 않고 도중의 이름없는 시골 마을에 디테일로 살아있다.





오타쿠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덕후라고도 하데. 그러나 이 두 말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를 두고 혹 매니아라고만 해석하면 매우 천박하다. // 일단 오타쿠 덕후는 혼자노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 쳐박혀있는. 그렇다고 빈둥대기만 하는 룸펜과는 다르다. 오타쿠 덕후는 혼자 놀되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즉 혼자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이라는 뜻. 완성된 개인주의를 말한다.  // 여기서 예술은 문화 및 교양, 스타일과 함께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 덕후가 완성된 개인주의자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개인주의는 혼자 논다. 그러나 고립을 거부한다. 부족주의나 가족주의,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무수한, 지평이 확대된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은 자유롭다. 내가 주인된 만남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만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한다는  얘기. 이 얼마나 통쾌한가.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면 윗사람에게 혼나는 그런 조직에서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비위 맞추지 않는 사람, 한마디로 사회 부적격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왕따 기질이 좀 있는 그런 까칠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다.





개인주의자는 예민하다. 소심하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단단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되 그렇기 때문에 소소한 주변을 물리치고 거대한 인류단위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맞설 수도 있게 된다. // 그러니까 진정한 개인주의는 철학도 만나고 역사도 만나며 종교도 만나고 교양과 문화와 예술을 만나게 된다. 자연과 친구가 된다.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며 곧 자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신중함이 뺏어가고 창의력은 상식이 주저앉히며 예술적 감성은 잘해야한다는 강박증이 스스로 말살시킨다.


그래서 열정과 창의력, 예술적 감성과는 무관한 그런 삶이 안전할지는 모르나 너무 지루하다. 때론 신중함에서 벗어나 도전도 해보고, 상식을 뛰어 넘어 의외의 길로도 가보며, 잘 못해도 좋으니 작품도 만들어 보는거다. 그것이 실수를 만들고 좌절도 겪게 하며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공동체의 선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나의 취향과 사상과 라이프 스타일은 당연히 존중받아야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내가 최고가 되면, 훌륭한 개인주의를 완성하면 누구라도 알아주는가? 개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주변과의 부대낌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흐를 누가 알아주었나. 미친 정신병자였다. 그런데 고흐는 그의 개인주의를 완성했다. 신과 일대일로 만났다. 세상과 늘 마주했고 인류단위로 사고하며 사색하며 그것을 예술로 옮겨 세상을 한마장 진일보시켰다.



나는? 고흐도 아니고 위대한 철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일단 주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발견하며 나를 완성해나가는 순간,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선언하고 인류단위로 생각하며 세상의 진보에 대해 작은 밑돌을 자처할 때 나는 고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누가 알아주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세상의 변화에 자신의 이성과 삶의 한 조각이라도 더해 기여해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하루를 살아도 멋있게 살고픈거다. 스타일을 중시하고 살고싶다. 기능성도 좋지만 디자인은 더욱 중요하다. //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 취향이 꼭 한가지여야할 아무런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이유란 없다. 나는 모든 음식이 맛있고 모든 색깔이 다 이쁘다. 모든 산이 다 좋다. 그래서 나쁜가. // 나는 정답을 찾는 부질없는 허세를 그만두고 깨달음을 향한 길만을 오직 본다. 계속하여 뭔가를 시도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며 배우고 아는 가운데 나는 완성되어져 간다. 그 속에 기쁨이 찾아 온다.


영화를 한편 보아도, 감독의 연출의도를 쫓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토리는 대개 그렇고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로 보면 보았지만 안 본 것이다. 커피를 한잔 마셔도 어디서 만들어진 무슨 커피인지를 알고 마시면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전에는 맥주를 그냥 맥주로만 알았다. 그런데 맥주는 문화더란 얘기. 우리 나라 맥주가(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맛없다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수준이하라는 얘기다. 밋밋한 캘거리만도 못한. 여하튼 그렇다는 얘기.




타자의 시선을 극복하고 때론 무시하고 라이벌 이런 개념을 이겨내고 자기 스타일을 찾아 완성하는 것. 이것이 개인주의이며 이와같은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티스트 되는 것이다. 


아트는 어원이 arm 에서 비롯된다. arm 은 붙어있다. 즉 연결이며 소통인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연결시켜주고 소통시키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저쪽의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이와 그냥 작품 하나로 연결되었다. 비행기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이야기인가.




이제 개인주의는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오히려 함께일 때의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와 넓이와 시간 공간적으로 나는 네트워킹되어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존재였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주어져 나를 완성시킨 것. 


자, 이제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개인주의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스타일리쉬한 나의 삶을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 

알아주고 말고는 그들의 몫.  난 다만 전 인류단위로 사고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마주하자. 맞짱뜨자. 

내가 주인임을, 일등임을 선포하자.

케이트 윈슬릿 주연의 Labour Day 를 보았는데 그녀의 연기가 참 좋았다.

그냥히 단순히 잘한 연기가 아니라 영화 내내 그녀의 모습에서 개념이 꽉 차있는 모습,

배역에 대한 확신으로 그녀의 삶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스티브 잡스' 로 조연상을 받고 인터뷰한 동영상

뉴스를 접했다. 과연 그녀의 연기가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다음은 그에 관련한 기사를 옮긴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4살 때 연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제가 뚱뚱한 소녀 역할로 자리를 잡는다면, 이후의 연기인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상패를 들고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지금 나를 봐봐! 지금 나를 보라고!”

기자회견장의 사람들은 모두 웃었지만,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선생님이나 친구,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면,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요.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고, 내가 할 일을 계속했고,

그래서 공포와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믿고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계속하면 됩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그동안 외모에 대한 다른 이의 평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자주 전해왔다.

지난 2015년 10월, ’랑콤’과의 광고계약에서 ‘포토샵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조항을 넣은 그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어린 세대의 여성들은 잡지를 볼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성공한 여성들을 바라보겠죠. 그리고 그들은 그 여성들처럼 되고 

싶어할 거예요.나는 지금의 어린 여성들에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강한 여성을 길러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조건은 매우 중요했어요.”



그리고 그해 9월 페이스북으로 생얼을 드러낸바 있다. 그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내 피부에 주름이 있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오늘은 그 주름 이상의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진짜인 나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또 여러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이 메시지를 공유하고, 모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까지 닿게 하도록 합시다.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부정적인 말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 말 때문에 내가 인종이나 성별로 인한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합시다.“


2015년 1월에는 ‘러닝 와일드 윗 베어 그릴스’(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출연해 딸과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서서 딸 미아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이런 몸매를 가져서 정말  운이 좋은 거야. 몸에 이런 곡선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지.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엉덩이를 가진 것도 운이 거라고,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나도 알아. 

 나도 신에게 감사해."


" 그때 그동안 내가 해왔던 행동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온 거죠.”



와우 !! 정말 멋지지 않은가.. 배우란 인생을 연기하는 직업이다.

그녀는 타고난 배우이자 뛰어난 액티비스트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사랑하는 두 딸들도 케이트의 말처럼, 그녀의 인생 여정처럼, 인생에 대한 의지, 도전, 확고한 주관으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세상의 편견과 옳지 못한 차별에 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굳센 태도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해 나가고

세상을 주도적으로 대하며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가기를.

아빠는 언제나 그런 너희들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또한 깊이 사랑한다. "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두딸들에게 기사와 함께 보냈던 메시지다.








북미의 노동절은 유럽 전통과 달리(유럽과 우리나라는 5월 1일) 여름이 끝나고 9월 신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어진다.

그리고 Back to School 과 함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노동절은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전 주어지는 

마지막 꿀맛같은 휴식, 새출발을 위한 마지막 재 충전의 롱위켄드 연휴이다.


아마도 이 영화의 배경으로 노동절 연휴가 선택된 것은 어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영화자체는 연출과 주제의식에 다소의 가벼움과 사실적 허술함도 엿보인다. 그러나 케이트의 연기는 이런 허술함을 

묻어버리고도 남을정도로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영화는 세상에의 희망을 버린 탈주범과 이혼녀의 운명적 만남에 의한 따뜻한 사랑이 주제이지만 노동절 연휴의 의미와 

밎물려 이제 모든 것이 정지되었던 기나긴 휴식의 시간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을 암시한다. 


원래 노동절은 미국의 노동자 총파업을 기념하여 제 2인터네셔널 이 지정한 메이데이 이지만 정작 미국은 매카시 열풍 때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며(우리 식으로 말하면 빨갱이 냄새) 아무 관계도 뜻도 없는 9월 첫째 월요일로 귀양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노동절은 새로운 시즌의 새출발을 알리는 날로 자리를 잡았다.


영화는 이와같이 생뚱맞게 변해버린 미국 노동절을 운명적 사랑이란 주제를 붙여 영화적 의미로 해석해 낸 것이다. 

비록 진부한 내용의 의미이긴 하지만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명배우들의 무게있는 연기와 어울려 따뜻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 주목한 것은 케이트란 배우였고 그녀의 멋진 인생관에 오히려 반해버려 영화를 다시

반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의 긴 영화와도 같다. 모두가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감독이며 시나리오 작가며 

촬영감독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연기 파트너이자 동시에 관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매순간 치열한 모습으로 삶의 바른 태도와 인식을 갖출 때 우리들이 만드는 자화상 영화는 완성도가 더 높은 

수작으로 결말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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