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바 여행기 2편에 이어 여행정보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먼저 꾸바 국기에 얽힌 이야기 하나.





다른 나라의 국기를 볼 때마다, 그들의 국기 사랑을 대할 때마다 우리 태극기를 대하는 내 마음 한구석의 서글픔을 감추지 못한다.
국가의 상징 속에 들어 있는 치욕과 오욕의 뿌리를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기에는 건국의 역사와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국가 정통성과 통합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태극기에는 그런 정신과 역사적 전통이 부족하다.

그런 것이 없으니 태극기의 의미를 찾아보면 죄다 음양이 어떠하고 건곤이감 팔괘가 어떠하며 등등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말한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 외울 수가 없다. 그런 것은 국기의 의미로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기에는 오히려 친일의 뼈아픈 뿌리에다 개발 독재의 망령이 뿌려져 있다. 가슴 아프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그 통일국가의
정신과 역사적 정통성이 새겨지는 새롭고 자랑스러운 국기가 만들어지길 희원한다.

꾸바 국기는 혁명 이전 스페인으로부터의 오랜 독립운동의 산물이자 그들의 꿈과 이상, 역사와 전통이 서린 상징이다.
독립을 상징하는 별, 그를 위해 흘린 피의 붉은 색,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삼각형, 순수한 애국심의 흰색 등..
이 쯤되면 국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된다. 저절로 공경하게 된다. 의미도 쉽게 익혀진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국기와 파란색 빨강색 만 바뀐 채 완전히 닮은 꼴의 다른 나라 국기가 있는데, 뿌에르 또리꼬 국기이다.
역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이나라가 꾸바를 따라 독립전쟁을 일으키며 국기도 본뜬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꾸바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로 있었다. 초창기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탄압과 비인간적인 압제로 타이노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단기간에 멸종되었고 그결과 식민지의 노동력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흑인들이 노예로 대량 유입되었다.


바로 이들이 스페인 본국으로부터 차별받던 이주 백인들과 함께 소수의 중국 노동자가 더하여 오늘날 꾸바 다원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정치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꾸바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음악과 미술 분야는 이와같은 다원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예가 된다.

특히 아프로 쿠반 뮤직이나 볼레로, 맘보, 차차차, 살사 등 모든 꾸바 음악은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거나 하지않고 상호 존중되는 가운데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창조적으로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꾸바 사회가 경직된 이념편향과 함께 계획경제가 지닌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달리 사람들은 전혀 경직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분방하기까지 하며 자유로운 것은 까리베 해의 낙천적인 환경과 함께 꾸바 음악의 이와같은 탄생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 점이 바로 꾸바 사회의 한 매력이자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호텔정문에 걸려 있는 캐나다 국기


지구 반대쪽 한국에서 꾸바를 여행하기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오래도록 적성국가였던데다 여전히 미수교국이라 영사업무가 없으니 유사시 여행안전에도 의문이 들고 상대적으로 여행정보도 부족하여 그런 것 같다.

요즘은 여러가지 여건이 많이 나아진 데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으로 대표되는 꾸바음악과 은둔의 공산국가라는 특색으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꾸바를 여행하고 있으며 후기도 심심찮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캐나다를 많이 경유하는 것 같고 간혹 남미 여행 중에 멕시코 등지에서 꾸바 항공을 이용하여 들어가는 여행객들도 많은 것 같다.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꾸바와 좋은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 결과 매우 많은 캐나다인들이 해마다 꾸바 휴양지를 찾고 있다.

겨울이 6개월 이상으로 길어 한 번 쯤은 Winter Break Vacation을 다니는 캐나다 사람들이 완벽한 기후조건에 가격도 저렴한 꾸바를 여행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의 꾸바 여행은 대체로 패키지 여행으로서 항공과 숙박,교통,식음료(술 포함),레저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격은 시즌과 호텔 옵션에 따라 달라서 가장 저렴한 것은 500~600 불 정도에서 부터 1200~1500불까지 다양하다.한국으로 치면 사이판 괌 여행이나 태국 필리핀 여행 쯤 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보통 한국에서 꾸바를 여행하면 토론토를 거쳐 아바나를 들어가고 그 이후로는 교통과 숙박, 음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숙박은 대개 위 사진과 같이 Casa 까사라고 불리는 곳, 정부에서 허가받은 민박집에서 1박당 20 CUC 내외로 해결하고 교통은
도시간의 이동은 Viazul 비아술 이라고 하는 외국인 전용 시외버스를 이용하며 시내에서는 택시를 흔히 이용한다.

음식은 다양하게 해결하는데 까사에서 먹을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원래 집이라는 뜻이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꾸바 정부가 고안해낸 제도다. 주인은 숙박료의 일정 금액을 정부에 내고 나머지로 살아가지만 국영기업의 월급보다는 훨씬 수입이 좋은 편이다.

까사를 미리 예약하는 싸이트도 있는데 이것은 꾸바 바깥에서 하는 비지니스 같고 당연히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요즘은 까사가 도시들마다 차고 넘쳐서 성수기에도 어렵지 않게 빈방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꾸바의 실생활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도 다음에는 까사를 이용해보고 싶다.






꾸바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른 이중 화폐제도의 나라다. 여기에는 약간의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한데 대체로 혁명후 미국과의 단절, 소련경제권으로의 편입과 함께 미국 달러 사용이 중지되었다가 소련 붕괴후 위기의 시절 미국 달러가 재 사용되면서 미국 달러와 1대1로 맞교환되는 CUC 쎄우쎄라고 불리는 태환화폐(peso convertible)를 발행했고 외국인이 사용하는 화페가 되었다.

물론 꾸바인들도 CUC 를 월급으로 받기도 하고 사용도 한다. 주로 가전제품같은 국제 무역 제품을 구매할 때 필요하다. 대체로 캐나다 1불과 1CUC는 거의 등가 교환된다. 미국 달러의 경우 10%의 수수료를 별도로 물어야 했는데 수교후에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것은 꾸바인들이 사용하는 꾸바 뻬소, CUP 다. MN 에메녜라고도 하는데 Moneda Nacional, 즉 국가 화폐란 뜻이다. 물론 외국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 주요 관광지를 벗어나 꾸바인들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그들의 시장을 이용하거나 관광지라도 길거리 음식 같은 것을 사먹을 때 사용할 수 있다.

1 CUC 는 24 CUP. 따라서 꾸바 뻬소 가게에 가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꾸바의 물가를 실감할 수 있다. 보통 꾸바인들의 월급이 500 CUP 안팎이니까 캐나다 달러 20불 정도, 한국 돈 20000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중 화폐제도는 가끔씩 재미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꾸바인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꾸바인들은 아이스크림에 환장하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집은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꾸바 페소로7- 10CUP 정도. 그러나 같은 맛의 외국인 전용 가게에는 줄이 없다. 대신 3 CUC 정도로 7배의 폭리다. 관광객들이 있는 곳의 물건 값은 언제나 이중가격이다. 그러나 그네들이 살아가는 곳, 뒷골목 시장이나 카페같은 곳에서는 저렴한 꾸바페소의 놀라운 가격을 맛볼 수 있다.

사실 배급제의 나라인 사회주의 국가이니 상품에 대해 단위 가치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CUC를 내고 CUP로 거스름돈을 받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세워야할 필요는 있다. 내국인용 CUP는 인물 도안, 외국인용 CUC는 사물 도안이다. CUC에는 Peso Convertibles 란 글이 인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꾸바의 치안에 대해 묻는다. 대부분은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매우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꾸바의 치안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꾸바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낙천적이며 상냥하다. 특히 나라 전체가 관광객들에게 지극히 호의적이다. 호객행위가 심하긴 하나 거절하기가 쉽다.

꾸바는 자국의 범죄율 또한 매우 낮으며 관광객에 대한 강력 범죄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좀도둑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차량 속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늘고 있으며 카메라같은 고가의 장비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기에 매우 편안하고 안전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경찰의 힘이다. 관광지 곳곳에 경찰이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가 마음을 매우 편하게 해주었다. 꾸바인들이 경찰을 매우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인터넷.. 내가 여행할 때만 해도 객실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했고 호텔 로비에서 WIFI 가 가능했지만 정말 느렸다. 돈을 주고 id와 비번을
구입해야하는데 두시간 이용에 14 CUC 로 우리돈 14.000 원 정도.. 무지하게 비싼 편이었다. 그리고 호텔내에 인터넷방 같은 것이 있어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중에는 거의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일단 신기했지만 이게 딱히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국제 전화는 전화방에서 거는데 즉석에서 시간당 요금을 계산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전화카드도 있다는데 이용해보지는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으로 들어가보자


꾸바 여행에 대한 나의 소회와 기대, 간단한 여행정보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여행은 3막으로 구성된 연작 드라마와 같다.
떠나기전, 여행을 준비하며 기대와 설레임으로 보내는 것이 제 1막이라고 한다면
실제 여행을 하는 기간을 제 2막 본장이라 할 수 있겠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못다 느낀 감상들을 정리해낼 때 3막 에필로그로 여행은 완성된다.

이 중에서도 제 3막, 즉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돌아보고 추억하며 그 때를 되새겨보는 것은 실제 여행에서 놓쳤던 느낌과
의미를 재 발견하게 하며 마치 여전히 여행 중에 있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니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나의 의식과 감성은 아직도 꾸바를 맴돌고 있다.



사진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요소다. 시간과 공간속에 흩어져 버리는 감동과 느낌을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떠난 순간부터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는 쉴새 없이 바뀌는 이미지의 연속이며 그 속에는 무한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사진 자체가 창조적인 이야기꾼인것이다. 사진이 없다면 여행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여행.. 그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설레이는 마법을 지녔다.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 아무리 평범하고 흔한 풍경이라도 여행지에서 만큼은 모두 특별하지 않은가.
그리고 남은 날들 속에 수없이 꺼내보는 추억들 속에서의 진한 커피향같은 여운까지..

이렇게 우리를 매혹하는 여행은 쿠바의 상징, 체 게바라에게도 그러했다.



1959년 체 게바라는 꾸바 혁명을 성공시킨후 피델 까스뜨로에 이어 확실한 2인자로서 그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킬 탄탄대로의 길,
제국주의와 싸워나갈 새로운 나라의 건설이라는 대업을 앞에 놓고 있었다.

혁명 직후부터 당 중앙 지도자, 중앙은행 총재, 상공장관 등을 역임하였고, 꾸바를 대표해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UN 연설을 하는등 그는 새로운 꾸바 건설의 주역으로 우뚝섰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탄탄대로의 삶을 내려 놓고 또다시 험난한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의 반제 민중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여행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니 여행 가운데서 만난 인민들을 사랑하였던 사람이었다.

오늘날 모든 젊은 영혼(나이의 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들, 특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우상인 게바라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과 꿈은

그가 아르헨티나 의과대학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전 남미를 돌아다닌 여행을 하였을 때 형성되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모티브가 될 때 단순한 휴식과 오락을 넘는 인생의 참 의미로 다가온다.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기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은 자본주의의 사치' 라고 일갈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기도 했지만

러나 그의 여행이 결코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한 즐거움의 그것만이 아님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체게바라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 하바나의 이 혁명광장에 구조예술작품으로 남아 있는 그의 얼굴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만 확인이 된다.

그의 인생여행은 볼리비아 숲 속에서 끝이 났지만 그의 꿈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개방으로 가는 쿠바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꾸바 여행을 가기전 수많은 리뷰들을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으니..

그리고 책을 한국에서부터 주문하여 읽어보았다. 꾸바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적성국가인데다 여전히
미수교국이어서? 그렇다면 편협한거다. 적어도 진리의 학문에는 국경과 이념이 없어야 한다.

꾸바의 매력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여행지로서의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꾸바라는 나라가 형성되어온 과정,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의 세계를 다원주의시대라고 한다. 종교와 문화와 표현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복합적이며 상대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힘의 우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의 시대를 넘어 상호 존중과 조화, 연대가

시대의 주요한 패러다임으로 요구되며 또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꾸바는 이와같은 복합문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되어온 매우 모범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들의 인종 구성, 정치역정, 문화적 특성에서 오늘날 세계가 지향해야할 상호 존중과 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는 서구사회와 그 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충돌 속에서 창조적으로 탄생한 일종의 신 문화국가이다.

동서 냉전 시대의 미주 대륙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그것도 자본주의 초강대국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관계로 극심한 경제봉쇄와

국제적 고립 속에서 지난한 시기를 보내면서도 그들은 특유의 낙천성과 유연성을 잃지 않았다.


생필품이 부족하고 지독한 가난에 허덕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 및 교육시스템을 갖추었고 생명 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분야에서도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인민을 향한 연대와 인류 공영에도 이바지하는 등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꾸바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랐다.


꾸바의 문화는 상호 존중에 입각한 인류 보편적인 염원인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담고 있다. 고난을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가운데 오늘날 세계가 열광하는 꾸바 음악이 탄생했다. 이와같은 고난극복의 역사는 음악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이상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비료공급을 중단하자 그들은 대규모 유기농법을 개발했고 지금 꾸바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재료는 유기농법에 의한 것이 되었다.

백신과 의약품 조차도 엠바고에 포함되자 그들은 독자적으로 천연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했고 그것을 또다른 가난한 제 3세계에 공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지구상에서 흑백이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게 공존하며 살아가가는 곳, 꾸바. 다원주의로 정의되는 앞으로의 사회의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꾸바는 새로운 레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인본주의 정치를 위한 대의에서 그랬다할 지라도 사상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인권 탄압 및 나아가 민주주의 말살은 그 어떤 논리로도 용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상은 수많은 할일없는 꾸바인의 무료함에 그 허구성이 녹아져 있다.


한국에서는 멀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쿠바에 25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여행기인데 앞으로 한국과 쿠바가 수교되면
쿠바 여행에 관심있는 분들이 더 많아 지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싸돌아다니길 지극히 좋아했던 나는 날마다 여행을 꿈꾸다 못해 언젠가부터 일
상의 삶을 여행처럼 살자고 모토로 삼았다. 출퇴근 길을 여행길처럼 여기며, 날마다 보는 주변의 풍경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칫 일상에 눌린 삶에 신선함을 불어 넣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로망을 위로해왔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잠재울 수 없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여행의 참맛은 바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곳,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데에, 즉 탈출에 있기 때문이다.


늘 가던 출근 길, 등교길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며
늘 먹던 음식의 지루함으로부터도 벗어나 전혀 새로운 맛을 탐험하며
늘 잠자던 방을 떠나 낯선 잠자리에서 마음껏 어질러도 보며 지내는 해방감.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재미없는 일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순전히 나 자신의 기호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만족을 위해 창조적으로 일정을 짤 수 있는 자유. - 여행이 주는 자유다.

캐나다로 이사온 후 캐나다 서부 록키산 일대와 밴쿠버, 동부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 등을 여행하고
미국의 LA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지를 다니며 제법 여행을 다니긴 했으나 우리나라로 쳐서 해외 여행은 이번 쿠바 여행이 처음이었다.

카리브해의 그림같은 풍경에 더하여 세계적인 살사 춤과 쿠바 음악, 그리고 월드 유네스코로 지정된 하바나, 트리니다드 같은 고도(古都), 시가와 야구와 사탕수수, 체게바라로 유명한 혁명의 나라 쿠바는 나의 캐나다에서의 첫 해외 여행지로, 특히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꿈꾸어온 내 마음 속의 여행이었다.

그들의 음악과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역사
그들의 삶을 만나고 싶었지.
그러나 첫 만남이어서인지
참 많이 서툴렀던 것 같아.

비록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지나치게 사전 계획에 따라 움직이진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잊어 버리고..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여행의 참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진이 나의 꿈을 앞서가지 않기 바랬지만
이미 여행 시작 전부터 여행의 절반을 차지해버린 사진.

그러나 다녀와 그 많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나름 고마운 점도 있어.
내 여정을 스쳐간 수많은 쿠바의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들을
2000여장의 사진들이 꽤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중에 여행은 우리로 삶에 경외심을 갖게 하며 마치 할일을 한 것처럼
여겨지니 참으로 인생이 여행길임에 틀림이 없어.

내 카메라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곳은 Castillo del Morro, 즉 모로요새이다.
수백년 전의 역사를 내 사랑스런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것과
그것을 내가 또한 함께 바라보고 있음에 감격하며 쿠바를 가슴에 품는다.


오랫동안의 꿈이었어
너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지.
푸른 바다를 사랑하여 보기만 해도 눈물 흘릴 줄 아는 소년이었기에
화려하고 세련된 곳보다 허름하고 낡은 풍경에 늘 마음이 편했기에
바다를 보면 언제나 숫총각의 설레는 가슴 마냥했고
하릴없어도 뒷골목 시장 다니기를 좋아했어.

음악을 들으면 그림이 그려지고 글이 떠올라 언제나 연인처럼 사랑했던
지나온 삶에 더하여 신기하고 낯선 풍경에 넋을 빼앗기기 일쑤여서
새로운 곳이면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이 여행은 내겐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여행, 한 번으론 결코 충분치 않고
두 번 세 번도 모자랄 만남이 되었지.


그러나 무엇보다
25년을 함께 살아오며,
34년을 사랑하며 살아온 지나온 날들이 내겐 꿈같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너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되었기에
이 번 여행의 가장 큰 행복은 너와 함께 했다는 것이야

꾸바는 모든 것이 낡았다.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아바나 거리에는 Ford와 GM 의 4-50년대 차량들로 가득한데 지난 50년간 미국이 주도한 경제봉쇄로 인한 것이지만 이것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한 요소이니 또한 아이러니다.
그들의 가난이 오히려 세계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나 해야하나.

여기서 명칭이야기 하나.
앞으로 쿠바(특히 큐바) , 하바나, 카리브 해가 아니라 꾸바, 아바나 그리고 까리베 해라고 쓸것이다. 당연하다. 서울이 쎄울이 아니며 최씨지 초이씨가 아닌 것과 동일하다.

Cuba 를 쿠바, 심지어 큐바로 읽고 부르며 Habana 를 하바나로 부르며 Havana로 철자까지 바꾸는 것에서 나는 제국주의의 잔재가 느껴졌고 제국주의와의 오랜 투쟁의 결과 세워진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꾸바는 에스파냐어를 쓰는 나라이며 꾸바, 아바나는 그들의 고유 명칭이자 원래의 발음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은 원래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꾸바를 쿠바나 큐바로 부르는 것은 마치 독도를 다께시마로 부르는 것과 같은 늬앙스로 여겨지니 지나친 견강부회인가.




꾸바는 스페인의 수백년에 걸친 잔혹한 통치와 미국의 야비한 침탈과 맞서며 세워진 나라이다. 스페인의 차별 받던 백인과 아프리카로부터 사냥해온 흑인 노예들이 함께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어 독립을 쟁취하고 혁명을 성공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흑백 통합국가이며 차별없는 혼합인종국가이다.

세계적인 그들의 음악 역시 이와같은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해 지역과 삶의 각기 다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손, 룸바, 살사, 맘보, 차차차 등 다양한 꾸바의 음악 장르는 죄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섞이며 자연스럽게 재창조된 형식이다. 자유롭다. 관대하며 밝고 명랑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들어 내는 절묘한 조화와 어울림이 있다. 바로 꾸바 음악의 특성이다.

아바나 비헤아 광장에 있는 Cafe Tabernet 에서는 매주 토요일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이 열린다.

내가 본격적으로 꾸바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음반과 영화로 만나고 난 다음부터다. 그리고 아바나에서 그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만났다.

물론 오리지널 멤버는 하나도 없지만 원래의 명성과 재능과 자긍심에 걸맞는 연주실력과 무대 매너로 꾸바여행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척박한 삶의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어둡고 칙칙한 슬픔을 노래하기 보다는
까리베 해의 찬란한 태양과 쪽빛 바다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꿈을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있는그대로 표현해내는 그들의 음악은 내가 그토록 원하는 인간 본성의 자유롭고 긍정적인 면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꾸바 여행 최고의 매력은 그들의 음악에 취하는 것이다.


전쟁 직후의 페허같은 모습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는 아이러니. Habana Vieja, 아바나 비헤아, 즉 올드 하바나 지역이다. 야릇한 매력이 넘치는 아바나 여행의 성지인 이 곳이 꾸바 관광의 핵심 중 하나이니 우리는 그들의 가난을 구경하러 온 것인가.

3000여개 가 넘는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대부분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해 페인트는 다 벗겨지고 창문틀과 문짝은 너덜거리며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고 부실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어 관광 이전에 있는 그대로 그들의 열악한 삶의 한 단면을 목도한다.

그러나 이 것이 월드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세계인들을 부르는 관광자원이 된 것은 분명 시대의 아이러니다.

아바나 대극장의 모습이다. 고전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매우 잘 어울리는 거리를 질주하는4-50년대의 올드카가 매우 이색적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내.. 특히 조형미가 뛰어난 건축물에 매력을 느끼기에 고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즐비한 아바나 여행은 그녀에게 행복할 수 밖에 없었다.



쿠바는 체게바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그의 사진과 그의 기념물이 있다. 골목마다 게바라의 얼굴이 보인다.

40년이 지났지만 게바라는 아직도 쿠바 민중의 가슴 속에 살아 혁명을 이끌고 있는 듯 하다.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체 게바라의 업적과 그 인간성이 뛰어나다고 한들 40여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지속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전설적인 인물의 지극히 높고 지순한 꿈과 이상, 그 가운데의 헌신적이며 드라마틱한 삶.. 그리고 극적인 죽음까지. 체게바라는 혁명 동지였던 카스트로에게 신이 내린 은총이었고 죽어서까지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것이다.

아스따 라 빅또리아 시엠쁘레 !! 승리의 그날까지 !!

바나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매료되는 곳이 있다. 말레꼰이라 불리는 방파제 길이다. 다큐벤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인트로 부분에 나오는 명장면..

꾸바의 아이콘 중의 하나인 올드카가 말레꼰 도로를 달리고 방파제를 넘어 지나는 차를 덮치는 까리베 해의 파도..
그러나 이번에 나는 이 장면을 찍지 못했다. 여행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법.

아바나의 말레꼰 방파제 길에는 꾸바인의 여가, 무료한 삶과 함께 그들을 보러온 관광객들의 여가, 분주한 여행이 공존한다. 아바나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찾게 되는 곳, 말레꼰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맹구와 까끼로 서로 사랑하다 결혼하여 25주년. 그리고 함께한 꾸바 여행 . 신나게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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