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 몬트리올에서는 에어 캐나다, 웨스트젯으로 아바나 직항이 운행한다. 그러나 캘거리의 경우 직항이 없으며 토론토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당연히 요금도 비싸진다. 이 또한 촌에 사는 불리함이다.

따라서 캘거리에서는 Air Transat 이나 Sunwing같은 레저 항공사편으로 아바나에서 두시간여 떨어진 휴양지 바라데로로 날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이곳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7박 8일을 지내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Air Transat과 직접 딜을 하여 아바나 3박, 바라데로 4박의 여행 일정을 따로 얻어내었다. 추가 비용을 요구했는데 아바나 호텔에서의 All inclusive
옵션을 포기하고 대신 조식뷔페만 포함하는 것으로 역제안하여 딜이 이루어졌다. 사실 아바나 관광에 올인클루시브는 현명하지 못한 계획이다.
이런 여행에서는 점심 저녁은 현지 음식을 두루 먹어보는 것이 좋기에 우리에겐 최상의 딜이 되었다.

7박 8일 올인클루시브란 항공권, 숙박권에 호텔 시설 무료이용에, 휴가기간 중 식음료 모두 포함을 말하는데 호텔내 모든 식당과 바와 카페,
야외 풀, 비취 바에서 추가비용없이 24시간 먹고 마실 수 있다. 물론 술도 포함되어 있다. 칵테일, 맥주, 와인, 위스키 무제한.

가격이 시기와 호텔에 따라 다른데 5성급 호텔이 1500불 내외이다. 우리돈 130만원 정도. 물론 여름 비수기엔 총비용 500불 이하도 있지만 호텔이 저질이라는 것이 함정. 참고로 꾸바 5성급은 우리로 보면 4성급 정도다.


비행기 여행은 언제나 멋진 놀이와 같다. 입출국 수속이나 기다리고 탑승하는 모든 시간들이 여행의 설레임을 더해주는 기회.

꾸바로 가는 비행기는 7시에 출발하였지만 3시간 전에 나오라는 소리에 새벽같이 나와야 했다. 이럴때는 커피가 제격이다



캘거리를 출발한 Air Transat 전세기는 인근의 에드먼턴을 들러 승객을 태우고 미국을 가로 질러 아바나에서 차로 약 두시간 정도 떨어진 휴양지 Varadero 라는 곳의 공항으로 직행한다. 비행 시간은 모두 6시간 정도. 중형 비행기로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휴가를 떠나는 시기, 3월이지만 여전히 한 겨울이어서 이 눈이 정말 지겨울 때도 되었다. 아침에 캘거리를 떠날 때 눈발이 날리고 온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캐나다인들에게 윈터 브레이크는 최대의 로망이다.



에어 트랜젯은 레저 항공사인데 모든 승객에게 웰컴 샴페인이 제공되었다. 별것도 아닌 이런데서 여행자들은 기분이 저절로 up 된다.



비행시간 6시간 중 한 차례 제공되는 기내식. 돈주곤 사먹지 않을 것 같지만 어디서나 뭐든 잘먹는 복을 타고난 탓에 아주 맛나게 먹었다.



꾸바 입국시 반드시 필요한 비자다. 꾸바는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그런다지. 아마도 미국을 비롯한 적성 국가로부터 오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 아닐까. 대신 여행객은 이 비자를 사야하고 약 25불 정도가 든다. 문제는 비자 작성시 오타가 날 경우 수정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틀리면 고칠 수 없고 비자를 다시 사야한다. 기입할 때 대학 입시 답안 작성 때처럼 긴장했다. 덜덜덜..



꾸바는 북위 23도 정도의 아열대 지방인 꾸바는 연중 기온이 20도 ~ 30도 안팎의 온화한 날씨다. 여름은 우기이며 후덥지근하다고 한다.
아침에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캘거리를 떠났는데 어느새 여름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이처럼 기묘하고 아름답다.



입국 심사는 전혀 까다롭지 않았지만 이민국 직원은 역시 매우 딱딱했다. 인사해도 대답이없다. 누가 공산국가 공무원아니랠까봐..
사실 이민국 공무원의 고자세, 뻣뻣함, 무표정..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미국이 가장 심하지만. 이곳은 휴양지 관문이라 그런지 묻는 것 없고 사진만 찍는다. 발 표시가 된 곳에 서서 빤히 쳐다보면 끝. 아내는 여전히 긴장한듯.



리뷰를 보면 짐찾는 것에 대해 말들이 있긴 하다. 분실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도착후 컨베이어로 나오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후기도 있다. 대부분 어쩌다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매우 신속하고도 아무 문제없이 짐을 찾을 수 있었다.



꾸바 입국의 또 하나의 특이사항은 입국 심사 후 짐을 찾은 다음 공항 밖으로 나가기전 개인 짐에 X레이 투시하고 몸수색 보안검사를 다시 받는다는 것. 생각해보니 비행기 탈 때 받은 보안 검사는 순전히 안전 비행을 위한 것이나 이 것은 꾸바를 위한 것. 예를 들어 gps 같은 것은 꾸바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

드디어 공항 밖에 나오니 현대 엑센트 택시가 손님을 기다린다. 이제부터 관광객들은 꾸바를 떠나는 날까지 길거리에서 수도 없이 들을 것이다. 딱시? 딱시? 우리는 패키지 여행에 포함된 버스에 올라 아바나로 이동을 했다.대부분 휴양지 바라데로로 떠나고 우리처럼 아바나를 가는 팀은 우리 포함 셋이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만나는 첫번째 도시가 바로 Matanzas 마딴사스 항구도시다. 바라데로 공항은 마딴사스 국제공항인 셈이다. 이 도시는 훌륭한 항구를 낀 뛰어난 입지 조건으로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으나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좋은 공연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야구의 나라답게 가난한 나라치고는 곳곳에 잔디야구장이 갖춰져 있었다. 꾸바리그의 열기는 대단하다고 한다. 하긴 반미주의 거두 까스뜨로가 메이저리그 열성팬일 정도니.

꾸바에서 신호등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예산문제로 비싼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은 듯 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도로임에도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로 순발력이 약한 대형 버스가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경찰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차량이 완전히 뜸하길 기다리다가 마침내 경찰이 길을 막고 버스를 좌회전 시켜주었다. Gracias !!

아바나까지 두시간 가량 걸리는 여정의 중간에 들린 휴게소 하바나 클럽.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곳이 고속도로 휴게소다. 관광객들을 위주로 장사하는 듯 보였다. 칵테일과 스낵을 팔고 있었다. 부족한 전력 사정으로 꾸바의 밤은 매우 어두운데 그래서 여행자는 더 운치를 느낀다.



약 두시간 여만에 우리가 머물 호텔에 도착. 5성급이라지만 실제론 3.5~4 정도로 보면 좋을 것이다.
프론트 데스크. 이런 곳에서 일하는 꾸바인들은 선택받은 삶일까.. 그냥 궁금했다. 멜리야 꼬히바는 스페인 자본의 체인 호텔이라 한다. 직원들은 꾸바인들로 영어를 한다. 그러나 발음이 알아듣기 매우 어렵다. 스페인어랑 발음을 섞어서.. 여기서 환전을 할 수도 있다. 환율은 상당히 불리하다.
호텔에서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개 1 CUC 정도면 족하다. 캐나다 1불 정도.

아바나에서의 일정에는 저녁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바나 시내에서 저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의 목적에 맞는 것 같다. .
그러나 첫날 저녁 호텔에 늦게 도착하였기에 이날만큼은 룸서비스를 시켰다. 대개 룸서비스가 그렇고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고 좋았다.

아내가 미리 고추장을 준비했다. 꾸바에 머무는 동안 이것이 없었어도 큰 불편은 없을정도로 음식이 대체로 입맛에 맞았지만 그래도 매우 유용했다.

와인을 곁들여 2인분 40 CUC 정도. 와인은 거의다 스페인산이다. 빵맛이 좋고 유기농 과일과 야채는 맛은 강하진 않지만 유기농 특유의 향취가 느껴져 좋았다. 무엇보다 해산물이 풍부하여 돔을 비롯한 생선과 바닷가재, 새우 등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식사후 혼자 잠깐 나가 보았다. 바다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문대로 말레꼰 방파제 위로 대서양으로부터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삼각대도 없이 미러리스로 찍었기에 좋은 화질은 아니지만 먼 이국땅, 중세 및 근현대사의 질곡 중 하나를 담고 있는 곳, 꾸바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해서 꾸바 여행 첫째날이 지나갔다.



밴쿠버 바다 낚시는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고 한국에서처럼 선상에서 조리하거나 즉석 회를 쳐서 먹는 즐거움은 없지만 우럭이나 광어, 대구등 우리에게 친숙한 어종을 대물로 낚을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통발 게잡이를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밴쿠버의 바다를 즐길 수 있어 한 번쯤은 해볼만합니다.




우선 이곳은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면허를 사야합니다. 낚시하려는 지역과 잡으려는 어종, 그리고 기간에 따라 각기 다른 면허를 사야하는데 특별한 자격조건은 없으나 그만큼 까다롭게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면허없이는 어떠한 종류의 포획도 금지가 되며 또한 잡을 수 있는 고기의 크기와 마리수도 제한을 두는데 이런 것들이 다소 불편하고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남획의 부작용이 없어 해양 자원과 환경 보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BC주 밴쿠버는 산과 호수, 바다, 섬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녀 언제나 세계 살기 좋은 도시 1,2위를 다투는 아름다운 미항입니다. 밴쿠버 바로 앞에는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섬, 우리나라 면적의 약 1/3 정도로 큰 밴쿠버 아일랜드란 섬이 있습니다.

남북의 길이가 460km, 동서 넓이가 80km 에 이르는데 인구는 전체 약 130만명 정도입니다.


이곳에는 BC 주의 주도인 빅토리아 씨티가 있고 세계의 아름다운 정원을 테마로 한 부차드 가든과 아름다운 비취로 유명한 토피노 등 관광 명소가 즐비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나나이모는 이 섬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데 이번 낚시여행의 목적지입니다.




나나이모행 비행기에서 바라본 캘거리입니다. 제가 출근하는 스토니 트레일과 가을색이 완연한 주변 보네스공원의 예쁜 풍경이 제법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타고 낚시할 낚시배와 선장입니다. half day  혹은 full day 로 임대할 수 있는데 어군탐지기를 가지고 있어 포인트를 찾아 우리를 안내합니다. 릴 낚시대를 제공하며 루어 낚시로 합니다. 게 통발을 설치하여 잡은 게는 우리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데 요금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선장이 부르는 가격을 놓고 흥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나이모 항의 요트선착장. 우리같은 소형 낚시배 외에 많은 레저용 요트들이 있었어요. 캐나다가 한국보다 결코 더 부유하다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캐나다의 항구와 호수마다 요트들이 즐비합니다.  아마도 노는 문화의 전통이 달라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나나이모와 밴쿠버를 잇는 수상비행기입니다. 레저용이 아닌 수송용입니다.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풍경이죠. 



밴쿠버와 인근 섬들을 오가는 BC Ferry 입니다.  사람과 자동차를 싣고 오가는 주요 교통 수단이죠.  밴쿠버에서는 Horseshoe Bay 와 Tsawwasen 두군데에서 출발하는데 Nanaimo 행은 Horseshoe Bay 에서 타는게 좋습니다. 


홈페이지  https://www.bcferries.com/schedules/mainland/maps.html 에서 예약이 가능합니다.




나나이모 항에서 포인트를 찾아 나갈 때 미리 통발을 설치해두었다가 돌아올 때 건져 올리면 이렇게 게들이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통발 두개에서 잡힌 30여마리 게들 중 너댓마리 빼놓고는 대부분은 그냥 바다에 도로 돌려보냅니다. 크기가 작다는 이유.  한국이었다면 다 가져왔을 걸 사진에서처럼 정말 씨알 굵은 놈외에 자로 재어서 조금이라도 작으면 가차없이 모두 놓아주었습니다. 너무 아까웠지만 수산자원 보호라는데 어쩌랴.. 



밴쿠버 아일랜드 주변에는 포인트가 참 많은 것 같아요. 



대구입니다. 



오늘의 수확입니다. 우럭 종류와 뽈락, 도미종류라네요



내해를 지키는 등대 섬.. 6개월 정도 살아볼 수 있다면.. 




이 녀석이 맛이 좋앗습니다.  선장께서 모든 생선을 하나하나 뼈를 발라 필레를 만들어 주었어요. 

우리는 이 것들은 모두 냉동하여 아이스박스에 싣고 캘거리 집으로 가져왔어요.



우리가 머물렀던 펜션입니다. 미리 예약을 했는데 여름이면 거의 방 구하기가 힘든다고 하네요. 복층구조로 1층에 방 둘 화장실 하나,

키친과 거실이 있고 2층은 화장실, 샤워장 딸린 방이 하나 있었고요. 



잡은 게와 생선으로 매운탕을 해먹습니다. 



게는 그냥 삶고 매운탕은 군대식 잡탕 ㅎㅎ 



게는 삶으니 색깔이 빨갛게 변하네요. 맛이 기막히던데요



다음날 돌아오기전 바닷가를 둘러보았습니다. 조게도 잡을 수 있다는 곳.. 그 옛날 수영하며 게잡고 해삼잡고 하던 어린시절의 제 고향 바다가 생각나더군요.  마산, 가포, 덕동, 구실, 용호... 



깨진 조개껍질이 마치 한구석 뻥뚫린 듯한 내 마음인듯..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들의 추억들..



밴쿠버 아일랜드 나나이모 낚시여행은 이렇게 내 삶에 아련한 추억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꾸바 여행기 2편에 이어 여행정보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먼저 꾸바 국기에 얽힌 이야기 하나.





다른 나라의 국기를 볼 때마다, 그들의 국기 사랑을 대할 때마다 우리 태극기를 대하는 내 마음 한구석의 서글픔을 감추지 못한다.
국가의 상징 속에 들어 있는 치욕과 오욕의 뿌리를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기에는 건국의 역사와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국가 정통성과 통합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태극기에는 그런 정신과 역사적 전통이 부족하다.

그런 것이 없으니 태극기의 의미를 찾아보면 죄다 음양이 어떠하고 건곤이감 팔괘가 어떠하며 등등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말한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 외울 수가 없다. 그런 것은 국기의 의미로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기에는 오히려 친일의 뼈아픈 뿌리에다 개발 독재의 망령이 뿌려져 있다. 가슴 아프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그 통일국가의
정신과 역사적 정통성이 새겨지는 새롭고 자랑스러운 국기가 만들어지길 희원한다.

꾸바 국기는 혁명 이전 스페인으로부터의 오랜 독립운동의 산물이자 그들의 꿈과 이상, 역사와 전통이 서린 상징이다.
독립을 상징하는 별, 그를 위해 흘린 피의 붉은 색,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삼각형, 순수한 애국심의 흰색 등..
이 쯤되면 국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된다. 저절로 공경하게 된다. 의미도 쉽게 익혀진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국기와 파란색 빨강색 만 바뀐 채 완전히 닮은 꼴의 다른 나라 국기가 있는데, 뿌에르 또리꼬 국기이다.
역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이나라가 꾸바를 따라 독립전쟁을 일으키며 국기도 본뜬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꾸바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로 있었다. 초창기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탄압과 비인간적인 압제로 타이노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단기간에 멸종되었고 그결과 식민지의 노동력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흑인들이 노예로 대량 유입되었다.


바로 이들이 스페인 본국으로부터 차별받던 이주 백인들과 함께 소수의 중국 노동자가 더하여 오늘날 꾸바 다원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정치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꾸바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음악과 미술 분야는 이와같은 다원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예가 된다.

특히 아프로 쿠반 뮤직이나 볼레로, 맘보, 차차차, 살사 등 모든 꾸바 음악은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거나 하지않고 상호 존중되는 가운데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창조적으로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꾸바 사회가 경직된 이념편향과 함께 계획경제가 지닌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달리 사람들은 전혀 경직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분방하기까지 하며 자유로운 것은 까리베 해의 낙천적인 환경과 함께 꾸바 음악의 이와같은 탄생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 점이 바로 꾸바 사회의 한 매력이자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호텔정문에 걸려 있는 캐나다 국기


지구 반대쪽 한국에서 꾸바를 여행하기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오래도록 적성국가였던데다 여전히 미수교국이라 영사업무가 없으니 유사시 여행안전에도 의문이 들고 상대적으로 여행정보도 부족하여 그런 것 같다.

요즘은 여러가지 여건이 많이 나아진 데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으로 대표되는 꾸바음악과 은둔의 공산국가라는 특색으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꾸바를 여행하고 있으며 후기도 심심찮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캐나다를 많이 경유하는 것 같고 간혹 남미 여행 중에 멕시코 등지에서 꾸바 항공을 이용하여 들어가는 여행객들도 많은 것 같다.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꾸바와 좋은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 결과 매우 많은 캐나다인들이 해마다 꾸바 휴양지를 찾고 있다.

겨울이 6개월 이상으로 길어 한 번 쯤은 Winter Break Vacation을 다니는 캐나다 사람들이 완벽한 기후조건에 가격도 저렴한 꾸바를 여행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의 꾸바 여행은 대체로 패키지 여행으로서 항공과 숙박,교통,식음료(술 포함),레저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격은 시즌과 호텔 옵션에 따라 달라서 가장 저렴한 것은 500~600 불 정도에서 부터 1200~1500불까지 다양하다.한국으로 치면 사이판 괌 여행이나 태국 필리핀 여행 쯤 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보통 한국에서 꾸바를 여행하면 토론토를 거쳐 아바나를 들어가고 그 이후로는 교통과 숙박, 음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숙박은 대개 위 사진과 같이 Casa 까사라고 불리는 곳, 정부에서 허가받은 민박집에서 1박당 20 CUC 내외로 해결하고 교통은
도시간의 이동은 Viazul 비아술 이라고 하는 외국인 전용 시외버스를 이용하며 시내에서는 택시를 흔히 이용한다.

음식은 다양하게 해결하는데 까사에서 먹을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원래 집이라는 뜻이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꾸바 정부가 고안해낸 제도다. 주인은 숙박료의 일정 금액을 정부에 내고 나머지로 살아가지만 국영기업의 월급보다는 훨씬 수입이 좋은 편이다.

까사를 미리 예약하는 싸이트도 있는데 이것은 꾸바 바깥에서 하는 비지니스 같고 당연히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요즘은 까사가 도시들마다 차고 넘쳐서 성수기에도 어렵지 않게 빈방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꾸바의 실생활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도 다음에는 까사를 이용해보고 싶다.






꾸바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른 이중 화폐제도의 나라다. 여기에는 약간의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한데 대체로 혁명후 미국과의 단절, 소련경제권으로의 편입과 함께 미국 달러 사용이 중지되었다가 소련 붕괴후 위기의 시절 미국 달러가 재 사용되면서 미국 달러와 1대1로 맞교환되는 CUC 쎄우쎄라고 불리는 태환화폐(peso convertible)를 발행했고 외국인이 사용하는 화페가 되었다.

물론 꾸바인들도 CUC 를 월급으로 받기도 하고 사용도 한다. 주로 가전제품같은 국제 무역 제품을 구매할 때 필요하다. 대체로 캐나다 1불과 1CUC는 거의 등가 교환된다. 미국 달러의 경우 10%의 수수료를 별도로 물어야 했는데 수교후에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것은 꾸바인들이 사용하는 꾸바 뻬소, CUP 다. MN 에메녜라고도 하는데 Moneda Nacional, 즉 국가 화폐란 뜻이다. 물론 외국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 주요 관광지를 벗어나 꾸바인들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그들의 시장을 이용하거나 관광지라도 길거리 음식 같은 것을 사먹을 때 사용할 수 있다.

1 CUC 는 24 CUP. 따라서 꾸바 뻬소 가게에 가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꾸바의 물가를 실감할 수 있다. 보통 꾸바인들의 월급이 500 CUP 안팎이니까 캐나다 달러 20불 정도, 한국 돈 20000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중 화폐제도는 가끔씩 재미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꾸바인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꾸바인들은 아이스크림에 환장하는 사람들이다. 유명한 집은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꾸바 페소로7- 10CUP 정도. 그러나 같은 맛의 외국인 전용 가게에는 줄이 없다. 대신 3 CUC 정도로 7배의 폭리다. 관광객들이 있는 곳의 물건 값은 언제나 이중가격이다. 그러나 그네들이 살아가는 곳, 뒷골목 시장이나 카페같은 곳에서는 저렴한 꾸바페소의 놀라운 가격을 맛볼 수 있다.

사실 배급제의 나라인 사회주의 국가이니 상품에 대해 단위 가치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CUC를 내고 CUP로 거스름돈을 받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세워야할 필요는 있다. 내국인용 CUP는 인물 도안, 외국인용 CUC는 사물 도안이다. CUC에는 Peso Convertibles 란 글이 인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꾸바의 치안에 대해 묻는다. 대부분은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매우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꾸바의 치안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꾸바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낙천적이며 상냥하다. 특히 나라 전체가 관광객들에게 지극히 호의적이다. 호객행위가 심하긴 하나 거절하기가 쉽다.

꾸바는 자국의 범죄율 또한 매우 낮으며 관광객에 대한 강력 범죄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좀도둑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차량 속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늘고 있으며 카메라같은 고가의 장비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기에 매우 편안하고 안전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경찰의 힘이다. 관광지 곳곳에 경찰이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가 마음을 매우 편하게 해주었다. 꾸바인들이 경찰을 매우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인터넷.. 내가 여행할 때만 해도 객실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했고 호텔 로비에서 WIFI 가 가능했지만 정말 느렸다. 돈을 주고 id와 비번을
구입해야하는데 두시간 이용에 14 CUC 로 우리돈 14.000 원 정도.. 무지하게 비싼 편이었다. 그리고 호텔내에 인터넷방 같은 것이 있어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중에는 거의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일단 신기했지만 이게 딱히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국제 전화는 전화방에서 거는데 즉석에서 시간당 요금을 계산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전화카드도 있다는데 이용해보지는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으로 들어가보자


꾸바 여행에 대한 나의 소회와 기대, 간단한 여행정보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여행은 3막으로 구성된 연작 드라마와 같다.
떠나기전, 여행을 준비하며 기대와 설레임으로 보내는 것이 제 1막이라고 한다면
실제 여행을 하는 기간을 제 2막 본장이라 할 수 있겠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못다 느낀 감상들을 정리해낼 때 3막 에필로그로 여행은 완성된다.

이 중에서도 제 3막, 즉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돌아보고 추억하며 그 때를 되새겨보는 것은 실제 여행에서 놓쳤던 느낌과
의미를 재 발견하게 하며 마치 여전히 여행 중에 있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니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나의 의식과 감성은 아직도 꾸바를 맴돌고 있다.



사진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요소다. 시간과 공간속에 흩어져 버리는 감동과 느낌을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떠난 순간부터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는 쉴새 없이 바뀌는 이미지의 연속이며 그 속에는 무한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사진 자체가 창조적인 이야기꾼인것이다. 사진이 없다면 여행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여행.. 그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설레이는 마법을 지녔다.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 아무리 평범하고 흔한 풍경이라도 여행지에서 만큼은 모두 특별하지 않은가.
그리고 남은 날들 속에 수없이 꺼내보는 추억들 속에서의 진한 커피향같은 여운까지..

이렇게 우리를 매혹하는 여행은 쿠바의 상징, 체 게바라에게도 그러했다.



1959년 체 게바라는 꾸바 혁명을 성공시킨후 피델 까스뜨로에 이어 확실한 2인자로서 그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킬 탄탄대로의 길,
제국주의와 싸워나갈 새로운 나라의 건설이라는 대업을 앞에 놓고 있었다.

혁명 직후부터 당 중앙 지도자, 중앙은행 총재, 상공장관 등을 역임하였고, 꾸바를 대표해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UN 연설을 하는등 그는 새로운 꾸바 건설의 주역으로 우뚝섰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탄탄대로의 삶을 내려 놓고 또다시 험난한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의 반제 민중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여행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니 여행 가운데서 만난 인민들을 사랑하였던 사람이었다.

오늘날 모든 젊은 영혼(나이의 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들, 특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우상인 게바라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과 꿈은

그가 아르헨티나 의과대학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전 남미를 돌아다닌 여행을 하였을 때 형성되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모티브가 될 때 단순한 휴식과 오락을 넘는 인생의 참 의미로 다가온다.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기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은 자본주의의 사치' 라고 일갈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기도 했지만

러나 그의 여행이 결코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한 즐거움의 그것만이 아님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체게바라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 하바나의 이 혁명광장에 구조예술작품으로 남아 있는 그의 얼굴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만 확인이 된다.

그의 인생여행은 볼리비아 숲 속에서 끝이 났지만 그의 꿈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개방으로 가는 쿠바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꾸바 여행을 가기전 수많은 리뷰들을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으니..

그리고 책을 한국에서부터 주문하여 읽어보았다. 꾸바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적성국가인데다 여전히
미수교국이어서? 그렇다면 편협한거다. 적어도 진리의 학문에는 국경과 이념이 없어야 한다.

꾸바의 매력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여행지로서의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꾸바라는 나라가 형성되어온 과정,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의 세계를 다원주의시대라고 한다. 종교와 문화와 표현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복합적이며 상대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힘의 우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의 시대를 넘어 상호 존중과 조화, 연대가

시대의 주요한 패러다임으로 요구되며 또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꾸바는 이와같은 복합문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되어온 매우 모범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들의 인종 구성, 정치역정, 문화적 특성에서 오늘날 세계가 지향해야할 상호 존중과 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는 서구사회와 그 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충돌 속에서 창조적으로 탄생한 일종의 신 문화국가이다.

동서 냉전 시대의 미주 대륙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그것도 자본주의 초강대국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관계로 극심한 경제봉쇄와

국제적 고립 속에서 지난한 시기를 보내면서도 그들은 특유의 낙천성과 유연성을 잃지 않았다.


생필품이 부족하고 지독한 가난에 허덕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 및 교육시스템을 갖추었고 생명 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분야에서도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인민을 향한 연대와 인류 공영에도 이바지하는 등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꾸바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랐다.


꾸바의 문화는 상호 존중에 입각한 인류 보편적인 염원인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담고 있다. 고난을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가운데 오늘날 세계가 열광하는 꾸바 음악이 탄생했다. 이와같은 고난극복의 역사는 음악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이상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비료공급을 중단하자 그들은 대규모 유기농법을 개발했고 지금 꾸바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재료는 유기농법에 의한 것이 되었다.

백신과 의약품 조차도 엠바고에 포함되자 그들은 독자적으로 천연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했고 그것을 또다른 가난한 제 3세계에 공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지구상에서 흑백이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게 공존하며 살아가가는 곳, 꾸바. 다원주의로 정의되는 앞으로의 사회의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꾸바는 새로운 레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인본주의 정치를 위한 대의에서 그랬다할 지라도 사상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인권 탄압 및 나아가 민주주의 말살은 그 어떤 논리로도 용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상은 수많은 할일없는 꾸바인의 무료함에 그 허구성이 녹아져 있다.


한국에서는 멀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쿠바에 25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여행기인데 앞으로 한국과 쿠바가 수교되면
쿠바 여행에 관심있는 분들이 더 많아 지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싸돌아다니길 지극히 좋아했던 나는 날마다 여행을 꿈꾸다 못해 언젠가부터 일
상의 삶을 여행처럼 살자고 모토로 삼았다. 출퇴근 길을 여행길처럼 여기며, 날마다 보는 주변의 풍경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칫 일상에 눌린 삶에 신선함을 불어 넣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로망을 위로해왔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잠재울 수 없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여행의 참맛은 바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곳,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데에, 즉 탈출에 있기 때문이다.


늘 가던 출근 길, 등교길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며
늘 먹던 음식의 지루함으로부터도 벗어나 전혀 새로운 맛을 탐험하며
늘 잠자던 방을 떠나 낯선 잠자리에서 마음껏 어질러도 보며 지내는 해방감.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재미없는 일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순전히 나 자신의 기호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만족을 위해 창조적으로 일정을 짤 수 있는 자유. - 여행이 주는 자유다.

캐나다로 이사온 후 캐나다 서부 록키산 일대와 밴쿠버, 동부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 등을 여행하고
미국의 LA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지를 다니며 제법 여행을 다니긴 했으나 우리나라로 쳐서 해외 여행은 이번 쿠바 여행이 처음이었다.

카리브해의 그림같은 풍경에 더하여 세계적인 살사 춤과 쿠바 음악, 그리고 월드 유네스코로 지정된 하바나, 트리니다드 같은 고도(古都), 시가와 야구와 사탕수수, 체게바라로 유명한 혁명의 나라 쿠바는 나의 캐나다에서의 첫 해외 여행지로, 특히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꿈꾸어온 내 마음 속의 여행이었다.

그들의 음악과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역사
그들의 삶을 만나고 싶었지.
그러나 첫 만남이어서인지
참 많이 서툴렀던 것 같아.

비록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지나치게 사전 계획에 따라 움직이진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잊어 버리고..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여행의 참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진이 나의 꿈을 앞서가지 않기 바랬지만
이미 여행 시작 전부터 여행의 절반을 차지해버린 사진.

그러나 다녀와 그 많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나름 고마운 점도 있어.
내 여정을 스쳐간 수많은 쿠바의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들을
2000여장의 사진들이 꽤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중에 여행은 우리로 삶에 경외심을 갖게 하며 마치 할일을 한 것처럼
여겨지니 참으로 인생이 여행길임에 틀림이 없어.

내 카메라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곳은 Castillo del Morro, 즉 모로요새이다.
수백년 전의 역사를 내 사랑스런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것과
그것을 내가 또한 함께 바라보고 있음에 감격하며 쿠바를 가슴에 품는다.


오랫동안의 꿈이었어
너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지.
푸른 바다를 사랑하여 보기만 해도 눈물 흘릴 줄 아는 소년이었기에
화려하고 세련된 곳보다 허름하고 낡은 풍경에 늘 마음이 편했기에
바다를 보면 언제나 숫총각의 설레는 가슴 마냥했고
하릴없어도 뒷골목 시장 다니기를 좋아했어.

음악을 들으면 그림이 그려지고 글이 떠올라 언제나 연인처럼 사랑했던
지나온 삶에 더하여 신기하고 낯선 풍경에 넋을 빼앗기기 일쑤여서
새로운 곳이면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이 여행은 내겐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여행, 한 번으론 결코 충분치 않고
두 번 세 번도 모자랄 만남이 되었지.


그러나 무엇보다
25년을 함께 살아오며,
34년을 사랑하며 살아온 지나온 날들이 내겐 꿈같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너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되었기에
이 번 여행의 가장 큰 행복은 너와 함께 했다는 것이야

꾸바는 모든 것이 낡았다.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아바나 거리에는 Ford와 GM 의 4-50년대 차량들로 가득한데 지난 50년간 미국이 주도한 경제봉쇄로 인한 것이지만 이것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한 요소이니 또한 아이러니다.
그들의 가난이 오히려 세계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나 해야하나.

여기서 명칭이야기 하나.
앞으로 쿠바(특히 큐바) , 하바나, 카리브 해가 아니라 꾸바, 아바나 그리고 까리베 해라고 쓸것이다. 당연하다. 서울이 쎄울이 아니며 최씨지 초이씨가 아닌 것과 동일하다.

Cuba 를 쿠바, 심지어 큐바로 읽고 부르며 Habana 를 하바나로 부르며 Havana로 철자까지 바꾸는 것에서 나는 제국주의의 잔재가 느껴졌고 제국주의와의 오랜 투쟁의 결과 세워진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꾸바는 에스파냐어를 쓰는 나라이며 꾸바, 아바나는 그들의 고유 명칭이자 원래의 발음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은 원래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꾸바를 쿠바나 큐바로 부르는 것은 마치 독도를 다께시마로 부르는 것과 같은 늬앙스로 여겨지니 지나친 견강부회인가.




꾸바는 스페인의 수백년에 걸친 잔혹한 통치와 미국의 야비한 침탈과 맞서며 세워진 나라이다. 스페인의 차별 받던 백인과 아프리카로부터 사냥해온 흑인 노예들이 함께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어 독립을 쟁취하고 혁명을 성공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흑백 통합국가이며 차별없는 혼합인종국가이다.

세계적인 그들의 음악 역시 이와같은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해 지역과 삶의 각기 다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손, 룸바, 살사, 맘보, 차차차 등 다양한 꾸바의 음악 장르는 죄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섞이며 자연스럽게 재창조된 형식이다. 자유롭다. 관대하며 밝고 명랑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들어 내는 절묘한 조화와 어울림이 있다. 바로 꾸바 음악의 특성이다.

아바나 비헤아 광장에 있는 Cafe Tabernet 에서는 매주 토요일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이 열린다.

내가 본격적으로 꾸바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음반과 영화로 만나고 난 다음부터다. 그리고 아바나에서 그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만났다.

물론 오리지널 멤버는 하나도 없지만 원래의 명성과 재능과 자긍심에 걸맞는 연주실력과 무대 매너로 꾸바여행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척박한 삶의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어둡고 칙칙한 슬픔을 노래하기 보다는
까리베 해의 찬란한 태양과 쪽빛 바다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꿈을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있는그대로 표현해내는 그들의 음악은 내가 그토록 원하는 인간 본성의 자유롭고 긍정적인 면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꾸바 여행 최고의 매력은 그들의 음악에 취하는 것이다.


전쟁 직후의 페허같은 모습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는 아이러니. Habana Vieja, 아바나 비헤아, 즉 올드 하바나 지역이다. 야릇한 매력이 넘치는 아바나 여행의 성지인 이 곳이 꾸바 관광의 핵심 중 하나이니 우리는 그들의 가난을 구경하러 온 것인가.

3000여개 가 넘는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대부분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해 페인트는 다 벗겨지고 창문틀과 문짝은 너덜거리며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고 부실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어 관광 이전에 있는 그대로 그들의 열악한 삶의 한 단면을 목도한다.

그러나 이 것이 월드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세계인들을 부르는 관광자원이 된 것은 분명 시대의 아이러니다.

아바나 대극장의 모습이다. 고전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매우 잘 어울리는 거리를 질주하는4-50년대의 올드카가 매우 이색적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내.. 특히 조형미가 뛰어난 건축물에 매력을 느끼기에 고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즐비한 아바나 여행은 그녀에게 행복할 수 밖에 없었다.



쿠바는 체게바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그의 사진과 그의 기념물이 있다. 골목마다 게바라의 얼굴이 보인다.

40년이 지났지만 게바라는 아직도 쿠바 민중의 가슴 속에 살아 혁명을 이끌고 있는 듯 하다.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체 게바라의 업적과 그 인간성이 뛰어나다고 한들 40여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지속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전설적인 인물의 지극히 높고 지순한 꿈과 이상, 그 가운데의 헌신적이며 드라마틱한 삶.. 그리고 극적인 죽음까지. 체게바라는 혁명 동지였던 카스트로에게 신이 내린 은총이었고 죽어서까지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것이다.

아스따 라 빅또리아 시엠쁘레 !! 승리의 그날까지 !!

바나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매료되는 곳이 있다. 말레꼰이라 불리는 방파제 길이다. 다큐벤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인트로 부분에 나오는 명장면..

꾸바의 아이콘 중의 하나인 올드카가 말레꼰 도로를 달리고 방파제를 넘어 지나는 차를 덮치는 까리베 해의 파도..
그러나 이번에 나는 이 장면을 찍지 못했다. 여행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법.

아바나의 말레꼰 방파제 길에는 꾸바인의 여가, 무료한 삶과 함께 그들을 보러온 관광객들의 여가, 분주한 여행이 공존한다. 아바나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찾게 되는 곳, 말레꼰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맹구와 까끼로 서로 사랑하다 결혼하여 25주년. 그리고 함께한 꾸바 여행 . 신나게 시작해보자.




한 낯선 여행자의 눈에 비친 샌프란시스코의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많은 다른 것들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감동이었습니다.

아마도 이와같은 화해와 공존의 평화가
성령충만 했던, 그리고 강력한 개혁 의지로 무장한 채
중세시대 세속화되고 부패했던 교회와 맞섰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도시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일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분명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도를 하였던
13세기 개혁적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인 것은 틀림이 없기에 게이들의 자유로운 성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 읽는 분들 중엔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차별과 분열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성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인구 75만의 생각보다는 작은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
그 중 게이 인구가 무려 10만에 달한다는 것을 알면
이 도시가 얼마나 게이들에게는 일종의 메카로서 존재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게이들의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게이들의 천국인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하비 밀크라는 사람입니다.

Harvey Milk는 게이였고 뉴요커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 여기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찾아 샌프란 시스코로 이주하였고
게이들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나중에 단지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권을 억압당한 채
정치적,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하는 세상에 대해 항거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시의원에 당선되어 게이로서 미국 최초의 선출직 공직자(elected officer) 가 됩니다.

그는 처음엔 게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지만 차츰 모든 억압받고
차별받는 계층들을 위해 투쟁의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그리하여 게이들 뿐 아니라 이민자들과 여성, 노인들의 인권과
생존권의 확보를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의원이 된지 1년만인 1978년
전직 경찰관이었고 전직 시의원이었던 무뢰한에게
하비 밀크는 그를 지지했던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시장과 함께
총을 맞아 살해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비밀크를 기억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구스 반 산트라는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입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굿윌 헌팅이 그의 작품입니다.

변방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그들의 쓸쓸한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영화감독..
그는 하비 밀크의 삶을 영화화하여 우리들에게 거대한 편견의 벽을
과감하게 허물라고 외칩니다.

하비밀크의 마지막 8년간의 생애를 통해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의 벽을 허물고 동성애가 어떻게 합법화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Milk입니다.
혹시라도 게이들의 삶과 그들의 존재에 역겨움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잠시 버리고 그들 역시 나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이해하면서 이 영화를 한 번 보실 것을 권합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렇게 사람들이 성적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한가지만으로도
평화와 자유의 도시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이 컴뮤니티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입니다. 그들의 꿈과 희망, 자유와 평화가 담겨 있는 듯 합니다.


몬타나는 미국의 가장 가난한 주 중의 하나입니다.  국립공원 등의 관광산업을 빼면 이렇다할 돈벌이가 없는 주라서 그렇죠. 물론 농업 목축을 하긴 하긴 하지만 그걸로 부유한 주가 되긴 힘들죠. 그러나 그래서 오늘 제가 숙박한 곳의 호텔이 상하수도 비용을 따로 청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숱한 호텔에서 숙박을 해보았지만 호텔비 외에 체크아웃할 때 사용한 상하수도값을 정산하여 지불하는 호텔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호텔의 역사와 위치, 시설과 주변환경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그리고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자연을 지키고 지나친 소비를 자율적으로 억제케하는 그 독특한 개념에 동참한 것을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되더군요.


Many Glacier and Swift current. 그 이름만으로도 제가 오늘 방문하는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 하겠네요. 험산 준령 록키의 산자락에 수많은 빙하가 숨어있고 수만년을 살아온 빙하가 밀려내려와 그 아랫부분이 녹기 시작하여 만든 호수가 있는 곳.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그 곳에 자연과 멋들어지게 어울리도록 지어져 100여년을 견뎌온 스위스 샬레 스타일의 호수가 있으니 바로 Many Glacier Hotel 입니다. 


Many Glacier 지역은 가히 하이킹의 천국이라 불릴만한 곳입니다. 호수 주변과 산중 빙하지대까지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하이킹 트레일은 1주일 숙박하며 돌아다녀도 다 가보지 못할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여행이 스펙을 쌓는 일이 아닐진대 굳이 다 돌아다닐 필요는 없겠죠.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채 시간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하루를 보내고 오는 것만으로도 멋지고 설레는 경험이 될 것이니까요.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Going to the sun road에서 빠져나와 국립공원 바깥으로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89번 Highway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Many Glacier Road 를 만나고 그 길을 따라 약 18km 를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다시 국립공원 게이트를 지나야하죠.



Many Glacier / Swift Current 지역은 자연의 웅대함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정수와도 같은 곳, 그래서 공원의 심장이라고 말하죠. 크고 높은 산들, 수많은 만년 빙하, 신비한 색깔의 호수가 한데 어울려 온갖가지 야생동물과 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는 곳입니다. 



Swift Current lake는 주변 곳곳의 빙하들이 녹은 물이 모아져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빙하는 좀 더 깊고 높은 곳에 있어 또다른 빙하호에 담겼다가 이 호수로 내려오죠.  깊은 산중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운 푸른 색을 띤 채 그림같은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이 호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고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버립니다. 



호수 바로 앞에 갈색 목조 건물로 지어진 Many Glacier Hotel은 알파인 지대의 외딴 산 속에 통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각이 좁고 긴 지붕을 가져 혹독한 날씨에 잘 견디도록 지어진 산장형 샬레입니다. 이 호텔은 이런 샬레풍으로 1915년에 지어졌고 오늘까지 원형이 대부분 보존되어 있는 정말 고풍스러운 호텔이죠.  여름 한철 대개 6월말부터 9월까지만 문을 여는 이곳은 그만큼 희소성이 높아서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쉽지 않은데 운좋게도 하루 숙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약싸이트 http://www.glaciernationalparklodges.com/lodging/many-glacier-hotel/)



호텔로비입니다. 건물의 기둥들이 모두 통나무들입니다.  들어서는 순간 그야말로 산중 샬레에 들어온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매우 이국적이며 고전적일 뿐 아니라 사적지같은 느낌도 납니다.




호텔 꼭대기 4층까지 시원하게 뚫려 천장의 서까래들도 볼수 있습니다.  서까래들 역시 통나무들이고요.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원통형 혹은 전구형 조명장치들이 독특합니다.  차분함 속에서도 화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곳곳에 투숙객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 있습니다. 객실에는 TV나 전자제품이 없고 당연히 에어콘도 안되고(선풍기가 있습니다) 인터넷이 거의 안된다고 할 정도로 신호가 약하고 느리기 때문에 자칫 매우 심심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로비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하는 것이 훨씬 낫죠. 



심심한 여행객들.. 로비의 피아노 주변에 모였습니다. 누군가 그저 그런 솜씨로 연주하는 것이지만 여행 중에는 모두 즐거운 추억거리입니다. 



호텔 객실문입니다. 스위스 샬레 같죠?



세면대가 방안에 놓여있고 앤틱스러워보이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침대 하나 달랑. 보이는 문을 열면 화장실과 샤워실입니다.


약간 각도를 다르게 해서 본 모습.  주중 1박에 미화 200불 가량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체크아웃할 때 사용한 물값을 따로 내야합니다. 20 불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호텔 뒷편 주차장 언덕에 올라서면 전망이 제법 좋습니다.  주변을 가볍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호텔내에는 Bar 도 있고 레스토랑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외 다른 시설들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쉬러 온 것이니 자연과 함께 놀아야죠. 호수는 수정처럼 맑고 고요한 데 뒤로 우뚝 솟은 산이 압도적입니다. 이 산의 이름은 Mt. Grinnel 인데 보이는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고 Grinnel Point라는 곳입니다. 호수에서 직선 높이로 900m 솟아 있어 장관입니다.  



호수에서 보트를 탈 수 있고 카약과 카누를 즐기기도 한다는 군요. 



이 근처에는 숙소가 한 군데 더 있습니다. Swift Current Motor Inn 이죠. 방갈로 형태의 숙소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사무실 및 식당 등이 있는 메인 로비건물이며 숙소는 뒤 쪽 숲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방갈로 바로 앞에 주차를 하는 독립적인 구조인데 샤워장이 없이 잠만 자는 구조의 방갈로도 있고 다 갖춘 곳도 있어 예약할 때 잘 살펴 본 후 해야합니다.



주변에서 본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블랙베어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아냐고요? 색깔이 아니라 shoulder hump 로 구분합니다. 

이곳은 워러톤 레이크 국립공원처럼 곰들이 매우 많습니다. 하이킹할 때 만날 수도 있겠네요. 무셔!!


이제 Going-to-the-sun Road  트립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네요. 몬타나는 자연그대로의 때묻지 않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미국의 오지같은 곳입니다. 목가적이며 전원풍이면서도 스펙타클한 웅장함을 또한 간직한 매우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그중에서도 '태양으로 가는 길' 은 그 이름 그대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극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캘거리에서 불과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기에 두고두고 다시 찾아와도 좋을 그런 곳이었어요. 


이제 남은 사진 몇장들 보시며 Going-to-the-sun road 여행을 가슴속에 담아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만의 여행 계획 한 번 세워보세요. 



이 일대의 특산 야생화 Bear Grass. 곰이 월동용 침구로 사용하기 좋아하는 꽃이랍니다. 



Cedar 나무 숲향을 맡으며 삼림욕..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산세




짙은 코발트 색 불루의 호수들..




그리고  잔잔한 얘기거리가 만들어지는 길가의 작은 카페에..



산중 멋진 샬레까지..



이민 15년 만에 처음 가본 몬타나 글래시어 국립공원은 가히 명불허전, 반드시 가보아야할 보석과 같은 자연이었습니다. 

Going-to-the-sun road 일대 Glacier 국립공원에는 수많은 하이킹 트레일이 있습니다. 총연장 1200Km 가 넘는데 공원 구석구석을 

연결하며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Day trip, 당일 코스도 있지만 Overnight 으로 캠핑과 숙박을 하며 하이킹 할 수 있는 코스가 많습니다. 


캐나다 록키산과 마찬가지로 수목한계선을 지나면 펼쳐지는 멋진 알파인 메도우를 따라 트레킹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멋진 경험이죠. 산중 곳곳에 숨은 호수와 폭포등 의 비경을 섭렵하며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바람을 벗삼아 구름과 동행하며 대자연의 품 속을 돌아다니는 것. 그러다 지치면 쉘터와 샬레를 찾아 들어가 지친 몸을 누이고 비록 전기도 전화도 인터넷도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사랑스러운 곳. 



1932년에 지어진 산중 쉘터입니다. 아마 이런 곳은 거의 조난이나 당하면 찾는 곳이 아닐까요.



Granite park Chalet 라는 곳이군요. 오직 걸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산중의 쉼터입니다. 이곳에서 리턴 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코스를 향해 트레킹을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로간패스에서 걸어서 약 7km 정도에 있습니다. 약 700m 정도의 elevation gain 입니다. 



Logan Pass 에서 출발하는 많은 하이킹 트레일 중 가장 잘 알려진 하이라인 트레일입니다. 아래로 Going-to-the-sun road 를 조심조심 달리는 자동차들도 다소 위태해 보이는 데 그 위로 절벽길을 걷는 것에는 짜릿함이 있겠네요.  이 하이라인 트레일을 통해  위 사진의 Granite Park Chalet 까지 갑니다.  



가까이에서 본 하이킹객들로 붐비는 하이라인 트레일입니다. 이외에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매우 많아서 많은 관광객들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곳 로간 패스뿐 아니라 Going-to-the-sun-road 곳곳에 하이킹 출발이 가능한 trail head 가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다녀온 곳, Hidden Lake Trail 도 그런 관광객용 하이킹 코스인데 로간 패스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녀오는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거리는 왕복 4.5km 정도이고 elevation gain은 150m에 불과하여 매우 쉬운 산책길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로간패스의 인포센타 뒤로 올라서면 멋진 알파인 메도우가 나타납니다. 가슴이 탁트이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7월 중순의 한 여름이지만 이렇게 만년설을 걸어가는 특별한 느낌을 맛볼 수 있죠.



설사면이 제법 길기 때문에 신발을 잘 신고 오셔야 합니다. 운동화 정도는 괜찮지만 슬리퍼 ㅎㅎ 도중에 여러 사람들이 눈에 파묻힌

발이 시려 걷지못하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히든 레이크와 바로 그뒤의 Bearhat Mountain입니다.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는데 참으로 숨은 비경이 아닐 수 없었어요.

Serene !! 많은 관광객들도 할말을 잊은 채 조용히 바라보며 자연의 깊고 차분한 정경에 저절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여느 산중 빙하호처럼 짙푸른 색의 호수는 주변의 초원과 록키한 산에 남아 있는 잔설과 산재해 있는 침엽소나무들로 인해 그래픽이 참 좋았습니다. 호수까지 내려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변 식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같습니다. 



Bearhat Mountain은 해발 2670m 로 제가 다니는 산들에 비교해서 고도는 낮은 편이지만 일반 등산은 불가능한 곳입니다. 



돌아가는 길..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여름 한철만 볼 수 있는 곳이니. 



산행길 초입은 이렇게 Boardwalk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주변의 Vegetation, 즉 식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마구 다니면 주변은 금방 황폐화 될테니까요. 등산 다닐 때 트레일을 벗어나는 것은 가급적 삼가해야합니다. 



 이곳의 진정한 주인인 Rocky Mountain Goat입니다. 상당히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람을 좋아하죠.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의 

소변. 미네랄이 필요한 산염소가 사람이 남긴 소변을 핥아 먹어 소금기를 보충합니다. 



멋진 하이킹을 마치고 지나는 분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ㅋ 



이제 로간 패스의 서쪽 사면으로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이일대에서 가장 큰 맥도날드 호수까지 내려갑니다. 지금부터 무려 1100m 의 높이를 내려가야합니다. 아찔한 높이 차이를 경험합니다. 




하늘을 이고 스카이웨이처럼 공중에 떠있는 듯한 Going-to-the-sun road 를 따라 내려가는 것은 아찔하면서도 스릴 넘치고 정말 잊혀지지 않는 드라이브 경험입니다. 



왼쪽으로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절벽이죠.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Hairpin turn 이라고 부르죠. 도로가 산허리를 따라 완전히 머리핀 끝모양처럼 굽어 있는.. 우리는 말발굽형이라고 하나요.

전형적인 것은 이보다 더아래에 있지만 이곳이 또 유명한 뷰포인트인데다 누구나 내렸다가는 곳입니다. 




우선 이녀석들 때문인데요.. Beargrass 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꽃입니다. 캐나다 워러톤 레이크 국립공원과 함께 이곳에서 많이 서식하는 독특한 야생화입니다. 



원주민들은 이것을 가지고 바구니를 짜서 만든다고 합니다. 이름처럼 곰이 이 꽃을 먹는 것은 아니고 다만 겨울 동면용 거처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고 하네요. 



이 주변이 군락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열중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찍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죠.



이곳 에서는 가벼운 등산을 할 수도 있슴니다. 저 높은 폭포까지요.. 폭포를 넘으면 하이라인 트레일과 만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넓은 시야와 함께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니까요.



 이곳에서는 베어그라스를 원없이 볼 수 있습니다. 




Going-to-the-sun Road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 중의 하나는 바로 빙하관찰입니다. 



글래시어 내셔널 파크 그 이름그대로 길가에 빙하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수만년 되었다는 것이니.



물론 길바로 옆의 이 빙하는 도로가 개발전에는 상당히 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을 타고 자동차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이만큼 녹아 없어진 것이겠지요.



맥도날드 호수로 들어가는 Haystack creek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내려가야 합니다. 저 크릭 따라 양쪽으로 깊고 울창한 숲, 아름다운 계곡 등, 멋진 곳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섭렵하기 위해서는 1주일도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80km 를 달려 Going-to-the-sun road의 서쪽 끝쪽에 다다르면 바로 맥도날드 호수입니다. 바다같이 넓어서 여의도 크기의 3.5배 정도 됩니다. 가장 깊은 곳은 144m 에 이르는 자연호수입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호수 주변만 구경하고 바로 돌아가기로 합니다.이도로의 반대쪽까지는 다시 80km를 돌아가야 하고 숙소까지는 20여km를 더 가야합니다. 



그러나 한 군데를 놓칠수는 없습니다. Trail of the Cedars 라는 삼림욕에 아주 좋은 산책로입니다. 숲 속 길을 좋아하는 아내와 저는 이곳 삼나무 숲길을 아주 천천히 호흡하며 기분좋게 산책했습니다. 



Cedar 는 삼나무입니다. 백향목이라고도 하죠. 이 나라에서는 지붕 재료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무죠.  매우 크게 자라는 녀석이라

Giant Cedar로 유명하죠.



Going to the sun road의 명물 중 하나입니다. 바로 weeping wall 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통곡의 벽이군요.




벽을 따라 눈 녹은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데 오른 쪽 절벽 아래로 바짝 붙어가면 자연 세차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날은 수량이 적어 그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물이 많이 떨어질 때는 길 바로 옆에서도 물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군요.



Going to the sun road에는 뷰포인트가 정말 많습니다. 그때마다 차를 세워서 보면 아마 80km 를 하루에도 다 못지나갈 정도입니다. 

이곳은 Heavens Peak이라는 곳입니다. 길 옆에서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Heaven peak. 뭔가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아침에 해 뜰때 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Going to the sun Road는 과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캐나다 록키를 15년째 보아온 터라 뭐 별것이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집에서 세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오질 않았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캐나다 록키와는 또다른 이곳만의 특별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절벽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돌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과연 눈 앞에 보이는 태양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제 다음 편에서는 이곳의 숙박 시설, Many Glacier lodge와 swift current 지역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래시어 국립공원에서 스위프트 커런트를 보지 않았다면 20%는 못본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의 정수가 담긴곳입니다. 






"태양으로 가는 길"

태양에 살고 있는 신,  Deity Sour Spirit 은 한겨울 최대 24m의 높이로 쌓이는 몬태나의 보석같은 이 곳, 만년 빙하가 켜켜히 쌓여 억겁의 세월을 이고 있는 이곳에 내려와 그의 집, 태양을 달구어 눈을 다 녹인뒤 원주민인 검은발, Blackfeet 족속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쳐 준다음 다시 태양으로 돌아갔고 그의 이미지는 해발 2939m 산에 입혀져 going-to- the sun Mountain  이 되었습니다.  


Saint Mary`s Lake 의  오른 쪽에 우뚝솟아 오른 산입니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The-Face-of-Sour-Spirit-Who-Went-Back-to-The-Sun-After-His-Work-Was-Done Mountain 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산 이름이 아닐까요. 이 산의 전설을 이름으로 요약해서 지었군요. 많은 원주민들이 지명이나 인명을 명명할 때처럼. 


서부개척시절 이 일대의 유명한 탐험가요 작가였던 James Willard Schultz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Blackfeet 원주민 친구와 함께 사냥을 다니다 이 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원주민 친구로부터 산에 대한 전설을 들은 후 산의 이름을 Going-to-the sun Mountain 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원주민(인디언) 친구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원주민의 이름은 Tail-Feathers-Coming-Over-the-Hill 이었습니다. 



태양으로가는 길, Going-to-the-sun Road 는 1933년 11년의 공사끝에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최초의 Mountain Road 입니다. 



총연장 80Km 에 이르며 글래시어 국립공원을 동서로 가로 질러 Saint Mary`s Lake 호수를 따라 올라 가다 앞에 보이는 Going-to-the-sun Mountain의 산허리를 돌아 Lagan Pass 고개에 이르러 한 숨을 쉰다음 산허리를 따라 내리막 길을 달려 다시 이일대 최대 호수인 MacDonald  Lake 호수를 지나 여정이 끝납니다.



 

Going-to-the-sun road는 10월 중순이면 출입 통제가 되어 다음해 6월 중순이 되어야 다시 열립니다.  겨우내 엄청난 눈이 쌓여 
봄부터 여름 관광객들을 위해 눈을 치우는데 무려 두달반이 소요될 정도입니다. 눈이 많은 해는 따라서 오픈 일정도 늦어지게 됩니다. 




1910년 미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Glacier National Park 은 Crown of the Continents 대륙의 왕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웅장하고 멋진 산세를 자랑하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의 waterton lakes 국립공원과 함께 1932년 international peace park로 지정이 되었고 둘다 UNESCO 지정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워터톤 국립공원의 모습입니다. 사진 왼쪽편이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북쪽 끝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두 공원은 서로 연이어져 있으며 국경선만 아니라면 하나의 공원으로 보아도 되겠죠. 



참고로 제가 사는 캐나다 알버타 주와 미국 몬태나 주의 국경지대는 대체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멀리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그냥 끝없는 구릉지대입니다. 제가 여행한 때가 7월 성수기였음에도 한적하고 고요하여 평화롭고 멋스러운 곳이죠. 드라이브만으로도 여행의 매력을 한 껏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캘거리에서 자동차로 약 세시간 정도 달리면 캐나다 미국 국경 Carway가 나오고 여기서 30분정도 내려가면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못미쳐 Lower Saint Mary Lake 가 있습니다. 이 호수는 글래시어 국립공원 바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수 옆엔 멋진 카페가 있죠. 아마도 두 자매가 시작한 카페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흐름한 가건물에 그저그런 시골 카페같습니다. 맛이 있을까.. 지붕엔 "외계인 환영"  UFO 가 쉬었다 가는 곳인가..



오호.. 식당 내부는 다소 정신없긴 해도 재미있습니다. 각종 장식들이 하나하나 구경할 만합니다.



제가 시킨 음식 맛있었어요. 치킨 샘위치 ㅎㅎ 



요건 실패입니다. 시키지 마세요~~~  프렌취 프라이는 맛있었어요.



공원 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Going-to-the-sun road로 진입합니다.  공원에 들어갈 땐 당연히 입장료가 있구요.. 내일도 다시 올것이기에 1주일 Pass 를 끊었습니다. Day pass 다음이 week pass 였어요. 3 day pass 이런거 만들면 좋을텐데..




Going-to-the-sun road는 멋진 호수를 따라 시작 됩니다. Saint Mary`s Lake 입니다. 이 호수는 짙은 푸른 색을 띤 빙하호로 길이가 11km, 넓이는 여의도 크기의 두배쯤 됩니다.  드라이브 내내 시원한 호수를 감상할 수 있죠.  바람이 많이 부는데 언젠가  Logan Pass에 시속 220km 의 바람이 불어 아예 통행을 막은 적이 있다는 군요.  Mother Mary`s whisper 치고는 매우 강한편이네요.  



호수를 따라 곳곳에 차를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Turnout 공간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Wild Goose Island View point는 놓치지 말아야겠죠. 그러나 저는 조금 더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사진과 같은 viewpoint가 더 좋았습니다. 



 바로 이 장면을 볼 수 있어서죠. 저 멀리 Wild goose Island 가 보이네요. 광각렌즈로 찍어서 그렇지 실제론 더 크고 가까이 보입니다.
 


영화 Forrest Gump에서 포레스트가 제니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며 자기가 미국횡단 달리기할 때에 대해 말합니다.


"Like that mountain lake. It was so clear, Jenny. It looked like there were two skies, one on top of the other." 이때 달리던 장면 촬영 배경이 바로 이 곳, Saint Mary`s Lake 와 Going-to-the-sun road 였습니다. (위키피디어 발췌)



호수가 끝나면 Lagan Pass까지 `태양으로 가는 길`은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을 끼고 올라갑니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광에 차를 자꾸 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도 여러군데의 Turnout 주차공간이 있습니다. Clements Mt.이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는 바로 아래에 Logan Pass 가 있습니다. 



같은 곳의 파노라마 풍경입니다. 바로 앞에 보는 산이 Heavy Runner Mt. 그 오른편으로 Reynolds Mt.  그리고 가장 오른 쪽의 산이 Logan Pass 뒤에 자리 잡은 Clements Mt. 입니다. 모두 해발 고도가 2600m 정도지만 깊은 계곡이 눈 앞에 있어 산세가 더욱 웅장해 보입니다. 



Logan Pass는 Going-to-the-sun road의 가장 높은 곳입니다. 길의 가장 높은 이곳이 이주변 산맥을 넘어가는 가장 낮은 곳입니다. 

해발고도 2026m 에 위치하고 있으며 Information centre 가 있습니다. 참고로 Going-to-the-sun Road 80km 구간내에 주유소는 없습니다. 공원으로 들어가기전에 미리 개스는 채워놓으셔야 합니다. 




이 주차장은 여름 내내 언제나 만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관광객이 하루 종일 여기 머무는 것도 아니기에 저처럼 운이 좋으면 들어오자 마자 바로 나가는 사람을 만나 주차할 수 있죠. 저는 대체로 주차운은 좋은 편입니다. 캐나다 미국의 평화 공원 답게 두 나라 국기가 사이좋게 펄럭이는군요. 


주차난으로 인해 공원 입구와 Rising sun Point에 차를 주차해놓고 1930년대 리무진을 개조한 이 빨간 셔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d Jammers 라고 부르는 이 셔틀은 물론 유료인데 Hop on Hop off 개념입니다. Going-to-the-sun Road 일대의 모든 관광 명소에 다 정차를 하기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면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공원 곳곳을 쉽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글래시어 국립공원엔 총연장 1200km 에 이르는 하이킹 코스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몇몇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 Logan Pass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도 여기서 가장 가까운 코스에 해당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Hidden Lake로 떠났습니다. 
(2편에서 계속)


* 글내용의 산과 길에 대한 정보는 위키피디어 영문판을 참조하였습니다.


여행, 그 설레는 이름을 늘 가슴에 품고 사는 존재들이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병에 걸려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인간에게 여행은 원초적 본능이다. 새로운 땅, 사람, 문화, 역사에 대한 호기심은 유사이래 인간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여행이 행해졌고 그 여행을 통해 세상은 하나로 이어져왔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세상은 여행을 통해 진보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행은 낯선 곳을 향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다. 가본 적도 느낀 적도 없는 데 웬 그리움이란 말인가. 상상력이다. 꿈이다.

어디선가 보았고 사진이나 뭐 그런 것으로, 누군가로부터도 들었다. 이렇게 현대인들의 뇌 속에는 온갖 가보지 않고 본적없는 것들에 대한 잡다한 정보들이 이미지와 지식으로 뒤엉켜있다. 이 것이 우리로 꿈을 꾸게 한다. 상상하게 한다.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상상력으로 이미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여행은 떠나고 싶은 충동의 산물이다. 그저 살던 곳으로부터 내가 사라지고 싶은거다. 굳이 싫어서이겠는가. 

다만 일상에서부터 잠시 벗어나 있을 수 있다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새로운 세상, 다른 풍물과 문화, 다른 자연과 기후를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큰 부가가치이긴 하지만 일상탈출은 여행의 본래적 가치이다. 해방인 것이다.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이들이여.. 여행을 통해 배워라.



누구에게나 살고 싶은 곳, 나의 집이었으면 하는 멋진 곳이 있다. 대개 여행을 하면서 그런 곳을 만나게 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 흥 ! 여기서 한 번 살아보라지.."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 중에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사는 곳, 내가 떠나온 곳을 동경하고 가보고 싶어 하고 

살고 싶기까지 여길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행지에서 어느새 자신의 사는 곳, 음식, 문화,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이 

또한 우리라는 존재들이다.


여행은 이렇게 서로를 부러워하고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집, 공간, 사는 곳을 다시 그리워하며 오고 가는 것임에 

내 사는 공간에서 마치 여행자처럼 살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세상 모든 곳의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어하는 것, 여행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일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싶은 것이다. 

나역시 여행지마다 아침을 일찍 깨우는 것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은 열망에서다. 즉 여행은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에너지는 세상 진보의 동력이다. 이치고 본질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에너지를 얻은 것으로 우리는 

인류사회의 진보에 발을 담근 것이다. 기여해야한다.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삶을 바꿀 수 있을 때 여행은 단순한 즐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쉼이 되어야 한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쉼을 희생했다면 노동을 하고 온것이다. 노동여행. 


반드시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그 곳에 흔적을 남기고 인증을 얻어야 한다면 

이건 주객이 전도되었다. 조급증으로 스펙은 쌓았을지 모르나 차라리 유투브로 여행함만 못할지 모른다. 

차라리 여행은 다소 게으르게 하는 편이 낫다. 미니멀리즘은 여행에서도 진리다.



여행은 신기한 것들과의 만남의 연속이다. 특별한 것들과의 우연한 조우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여행은 또한 순간순간 우연한 아름다움과의 놀라운 만남의 연속이다. 여행자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느때건 맞닥뜨리게 되는 세상의 온갖 놀라운 모습들, 특히 현상과 상징에 대해 

가슴에 담아둘 공간을 비워놓은 채..




그래서 여행은 한편의 잘찍은 영화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 남는 3차원 스토리가 된다. 당신은 감독인가 배우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은 깨달음의 여정, 구도적 삶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그 부분은 나아가 삶 전체를 바꾸고 새롭게 하여 세상의 주인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 호연지기다. 세상을 바꿀 힘을 얻어야 한다. 이를 얻지 못하니 다만 여행을 소비했을 뿐이다. 


하나를 보았으되 전체를 본것이나 다름없으니 조급할 이유가 없고 

보지 않았어도 마음에 품었으니 이미 본 것이나 다름없고  

나아가 여행을 통해 세상의 에너지를 보고 얻었다면 그는 인류의 대표자라 칭함을 입어도 좋다. 


여행..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 당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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