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번 크리스마스때 우리 같이 여행갈까? "


내년이면 대학을 졸업하는 작은 딸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앞두고 제게 제안을 했습니다. 


" 응? 여행? 우리 둘이서? 어디로 가고 싶은 데? "


마침 아내가 한국을 방문 중이었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돌아온 다음 여행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떠나 과년한 딸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랑 둘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니 처음엔 약간 당황했었죠.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이 있는 최고의 이벤트죠. 그런데 함께가는 동반자가 딸이라면 이건 정말 특별한 것입니다. 놓쳐서는 안되는)


"응.. 아빠랑 같이 뉴욕에 가고 싶어 !" 


사실 작은 딸과는 어렸을 적부터 여러가지 놀이를 같이 하며 함께 놀았고 메일과 카톡과 전화를 주고 받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자주 안아주며 언제나 사랑한다는 주고 받으며 충분히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우선 뉴욕은 겨울보다는 가을에, 그것도 아내와 가고 싶었고 크리스마스에 아내가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고 

등등으로 잠시 망설였는데 생각해보니 딸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어서 기꺼이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에서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이런 것을 촌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러번 가본 사람들이 주로 그런 말 해요.) 


작은 딸과는 평소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주고 받는 가운데 서로의 가치관과 이념이 비슷하고 정치적 사회문화적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에 성격도 비슷해서 까다로운거 없고 좋아하는 비슷하고 해서 함께 여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흔히 자녀들과 세대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 대개의 경우 부모가 나이들어가면서 젊은세대에 비해 보수화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외에 평소 대화 부족 또는 함께하는 시간의 부족으로 공통의 관심사가 줄어든데다 상호 이해가 멀어져서 그러합니다.  

 

그리고 둘만이 있어보거나 둘이서 뭔가를 해보지 않았기에 대개는 어색해하고 둘사이의 공통된 대화주제가 없으니 같이 있는 것이 힘든거죠우선 서로가 너무 바쁘다는 것인데 가능하면 1달에 번이라도 함께 뭔가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거나 먹고 싶어하는 것을 밖에서 함께 먹거나... 그런데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요


(밤 12시 맨해턴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그 유명하다는 shake shack 버거를 함께 먹었죠.  여행이 아니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들 중 하나죠.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녔는데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함께 버거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버지가 딸과 여행할 때는 무조건 딸 위주로 생각하고 정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건 아내와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죠.  이게 딸과의 여행수칙 제 1번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행을 떠나기전에 딸에게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다 공부해서 알아 놓으라고 했는데 그래놓고 정작 저는 여행사상 처음으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바람에 여행 기간 내내 딸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 아빠, 나더러 공부하라더니 아빠는 공부 하나도 안했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우리 세대에게는 세계 최고의 건물, 뉴욕 제 1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었죠.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우리 방문 일정에는 없었는데 근처의 한국 식당을 방문하느라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어요.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영화를 기억하며 전망대에 올라간 수많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실망스런 후기의 영향도 컷지만 4박 5일의 짧은 일정에는 포함시키기 어려운 곳이었어요.


딸이 박물관,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것, 뉴욕 재즈를 사랑하고 브루클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래된 것의 새로운 재발견에 멋을 느끼고 있다는 것 등.. 뉴욕 여행을 앞두고 저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취향이었죠. 여행일정을 자연스럽게 이런 컨셉으로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지요. 


그리고 이번에 딸과 여행을 가면서 몇가지 정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딸 중심여행이라는 것외에 자는 곳과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가능한 범위내에서이지만 딸이 특히 어렸을 적부터 호텔 하나만큼은 클래시한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머지는 뉴욕 지하철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 가급적 박물관을 많이 둘러 본다는 것 등 이었습니다. 물론 딸과 사전 의논한 것들이죠. 


(사진은 우리가 묵었던 Hyatt Regency Hudson Hotel 에서 바라본 One World Trade Centre 건물이 있는 Lower Manhattan 의 전경입니다. 누구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911 테러. 호텔의 위치로 볼 때 그날 이곳에서는 아마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을 테지요.) 


일단 딸이 제가 정한 호텔에 매우 만족했습니다숙소에서 점수를 엄청 많이 땄어요그런데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 호텔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습니다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하는 미국의 전통으로 국내 여행객들의 숫자가 줄어서 인듯 합니다

 

 

       (도착한 때가 밤이어서 룸을 제대로 찍지 못해 이 사진은 호텔 웹싸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바로 그방입니다)

 

다큰 딸과의 여행에서는 여러가지 챙겨야할 것들이 많습니다적어도 숙소만큼은 멋진 곳에 잡는 것이 좋아요좋은 호텔에 머문다면 딸과의 근사한 분위기는 이미 보장된거죠.  베드룸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Two double bed 정도로도 충분할겁니다



이 호텔은 뉴저지에 위치하여 공항과도 가까웠고(우버택시로 25불 정도) 상대적으로 객실료가 저렴한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호텔 바로 앞에 지하철 역이 있어서 매우 편리했습니다. 



호텔 방에서 바라본 전망인데 바로 앞에 보이는 큰 빌딩이 골드만 삭스 본사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아침의 풍경입니다.  보통 9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호텔을 나갔다가 거의 자정이 지나서 돌아오는 강행군..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행 스타일이지만 딸은 이번에 작심한 듯 저를 마구 닥달하여 우리는 결국 명소 탐방꾼이 되었어요^^ 딸도 원래 이런 여행 안좋아한대요. 그런데 뉴욕이니까...



호텔 뒷편 허드슨 강변 쪽에서는 건너편 맨해턴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보였습니다. 어떤 곳이든 멋진 풍경은 그 속에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곳에서 볼 수 있지요. 이 호텔의 강점은 바로 허드슨 강을 따라 맨해턴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뉴욕 여행은 반드시 지하철을 이용해야합니다. 길이 막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요. 이것 만큼 빠르고 안전하며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7일권을 끊었는데 한사람당 31불인데 무제한 이용권입니다.  1회 이용권은 거리 관계없이 3불입니다.  당연히 시내버스와 환승도 됩니다. 



뉴욕 지하철은 명성 그대로 곳곳이 더러운 모습 그대로였어요. 큰 시궁쥐는 못보았지만 구정물에 쓰레기에 지저분한 벽.. 그러나 뉴요커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들... 세계적인 대도시에 대비되는 듯한 낡고 지저분한 지하철은 그대로 하나의 관광 아이템인 된 듯해요. 그러나 여행객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죠. 교통 지옥이자 살인적인 주차고통에 택시비가 만만찮은 뉴욕 여행에 이렇게 싸고 이용하기에 쉽고 안전한 교통수단을 외면할 수 없기에 말입니다. 



언제나 스맛폰으로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고 경로를 찾아 준 딸 덕분에 저는 룰루랄라 사진만 열심히 찍으면 되었어요.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긴 했지만 결국은 또 많이 걸어야 했던 뉴욕. 뚜벅이 여행은 점점 힘이 드네요. 



도시에 어둠이 스며들면 그제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독특한 그들만의 밤이 시작되죠.

화려한 조명으로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빌딩숲, 뉴욕의 야경이 그러하고 은밀하기도 하며 더욱 풍부하기도한 night life 가 그러합니다. 



석양이 내려앉는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로맨틱해서 누구와 있어도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겁니다. 딸과 함께해도 마찬가지죠.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돌아오는 배안에서 바라본 맨해튼 야경은 따뜻하고 푸근한 부녀의 정을 저절로 깊어지게 할만큼 아름다웠어요.



강 또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야경은 여행자에게는 잊지못할 감동과 추억이 됩니다. 제 딸 역시 이 장면에 많이 감동을 받았어요.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지라 곳곳에서 펼쳐지는 성탄 쇼는 무료였지만 대단했어요. Saks Fifth Avenue  백화점의 전등쇼는 소문대로 장관이었어요. 약 40여만개에 달하는 전구라죠. 언청난 인파로 인해 좋은 자리를 찾기 힘들었지만 딸을 위한 부성은 이 마저도 거뜬하게 해치우게 했습니다^^



뉴욕의 밤은 그저 이리저리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하긴 캐나다 촌동네에서 10년이상을 살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뉴욕은 뭔가 특별했습니다. 여행객들과 뉴요커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밤의 모습은 현실과 이상이 어지럽게 믹스된 일종의 판타지 같았죠. 사진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뉴욕의 밤 속을 거니는 이방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뉴욕 여행은 몇가지 키포인트가 있는 듯합니다. 월스트릿으로 대표되는 바쁜 도시 뉴욕의 일상을 마치 현지인인듯 느껴보는 것, 세계인 수억명이 다녀갔다는 타임스퀘어광장을 비롯한 도심의 유명한 명소들을 둘러 보는 것,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혹은 롹커펠러센터에서 바라보는 뉴욕 야경, 혹은 주경, 센트럴 파크를 거니는 것 등에다 뉴욕만의 특별한 문화코드를 경험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 다리입니다. 1883년에 완성된 이 다리는 최초의 철제 와이어 현수교로 알려져 있죠. 석회암골조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뉴욕 본섬과 블루클린을 이어주며 뉴욕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이 다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묘한 향수를 일어나게 해줍니다. 




cathedral of Saint John the Divine 개신교 교회입니다. 세계에서 네번째로 크다고 알려져 있어요. 다운타운의 고딕양식 성 패트릭 대성당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주변의 할렘도 구경할 겸해서 찾았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아침이라 마침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있더군요.  고딕 복고 양식과 로마네스크 복고양식이 혼합된 이 건축물은 뉴욕 대도시의 한켠에서 중세풍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줍니다. 



뉴욕엔 꼭 가보아야할 네개의 유명한 박물관이 있는데 오늘 소개할  곳 외에도 구겐하임 미술관, 현대미술관MOMA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물론 그외에도 이런저런 전시관이 매우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 The Metro politan museum of Art, 줄여서 The Met 라고 부르는 뉴욕 미술관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회화, 특히 인상파 그림이 다수 있어서 좋았고 딸이 좋아하는 현대 미술작품도 꽤 있었어요. 딸과 함께 미술관 관람..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브로드웨이 쇼를 보았네요. 볼게 너무 많아 고른다는 것이 무의미. 남들처럼 타임스퀘어 광장에 약 1시간여 줄을 서서 할인 티켓을 구입하여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했습니다. 둘다에게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제가 미리 예약해두었던 유일한 일정은 바로 이것. 뉴욕재즈의 밤입니다. 이스트 빌리지 어느 동네의 반지하 프랑스요리 카페인데 

이곳에서 매일밤 라이브 재즈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예약을 했었죠. 딸이 평점 10점 만점을 주었던 우리 여행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였어요. 와인도 함께 마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며 라이브 재즈가 주는 감미로운 뉴욕의 밤에 푹 빠졌더랬죠. 




뉴욕..
아내와 한번올거라고 생각한 곳을 다 큰 딸과 처음으로 오게 될 줄이야.
무엇보다 아빠를 친구처럼 여기며 함께 놀아준 딸이 고마웠어요.

처음으로 딸과 단둘이 멀리 떠나는 여행에 다소 긴장도 했는데, 지 엄마 어렸을적이 생각나며 마치 아내와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마치 연인처럼 두손 꼭 잡고 다녔습니다.
타임스퀘어에선 함께 쉐이크 쉑 버거도 먹고.. 뉴욕 재즈바에서 멋진 라이브 재즈도 함께 즐겼습니다.

유서깊은 성요한 성당에서의 크리스마스 예배, 딸을 깊이 안아주며 아버지의 기도를 해줄땐 나도 모르게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보며 50년대 미국문화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말도 하며..

3개의 박물관을 다리가 퉁퉁붓도록 걸어다니며 인류자연사..인상파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우리의 여행이 정말 귀한 시간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딸아이의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했습니다. 내가 아직은 청춘이구나.. 하하하 !!


여행은 우리를 새롭게 하여줍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자녀, 특히 딸과의 단둘이 여행, 여기서는

Father daughter trip 이라고 부르더군요. 대부분 어린 딸이거나 좀 컷어도 틴에이져 정도의 딸과 가는 여행입니다. 이렇게 대학졸업을 앞둔 딸과 가는 여행은 그리 흔한일은 아닌 듯 하지만 정말 오래도록 두고두고 감동을 남겨놓는 멋진 여행입니다. 벌써 다음 여행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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