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레인은 소위 7-80년대 하이틴 미녀 삼총사 중의 하나였다.
브룩쉴즈, 피비캣츠와 함께. 그러나 그녀의 용모와 재능에 비해 맡은 배역과 작품은 의외로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성공에 그리 안달내지 않았던 그녀의 참 매력은 바로 이들 영화 속에서 비로소 만개했다.
Unfaithful, Paris can wait, Under the Tuscan sun 등이 바로 그 영화들이다.

사실 Unfaithful은 안봐서 모르겠다.
다만 다이앤 레인의 섹시미가 돋보인 수작이라는 거 외에는.

나머지 두영화의 공통점은 역시 다이앤 레인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영화라는 것이다. 지적 용모와 풍부한 표정, 자연스럽게 나이들어가는 여인의 섹시함까지.


칸느에서 파리까지의 로드트립을 플롯으로 한 영화' Paris can wait' (파리로 가는 길) 은 영화 제작자로 너무나 바쁜 남편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여자라는 아내의 내면이 남편의 사업파트너이자 오랜 지인이었던 그러나 분명한 외간남자인 프랑스 남자 자크와의 여행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영화가 선사하는 각종 장치들, 미장쉔들이 주는 재미와 아름다움, 호기심이 더욱 매력적인 영화였다.
프랑스 전원 도시들의 지극히 프랑스적인 아름다움들이 마네와 세잔느의 그림을 통해, 정말 mouthwatering 말 그대로 군침을 돌게하는 프랑스의 각종요리와 와인들을 통해 마치 프리젠테이션 하듯 그려졌다.

여든한살의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섬세하며 디테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주인공 여자가 들고 다니며 시도때도 없이 찍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라이카 카메라의 디테일한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여든 한살의 이 감독은 여자다. 그녀는 여자 영화, 적어도 여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직접 각본을 쓰고 대사를 만들었다. 그랬다. 자신의 경험을 살짝 각색하여 만들었다고 한것으로 우리는 한 중년 여자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다이앤의 농익은 연기를 통해 연출 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녀는 다름아닌 할리웃의 상업적 감독 패밀리,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아내, Eleanor Coppola 이다. 원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였는데 이 작품은 그런 그녀의 첫번 째 상업 극영화이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등으로 할리웃을 평정한 상업영화의 거장인데 이 집안이 죄다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이 두사람 사이의 딸이 바로 소피아 코폴라. 누군가 하면..
그렇다. 대부 3편에서 꼴레오네의 딸로 나오는 그 여자다. 헐! 프란시스 코폴라는 이 무지막지하게 연기를 못했던 딸을 대부에 캐스팅을 했다니 ..( 맛탱이가 갔군)
그러나 소피아는 자신의 발연기를 바로 알아차리고는 배우를 그만두고 감독으로 데뷔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베니스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유일한 부녀 수상) 프란시스의 손녀도 영화 감독이라니 3대에 걸쳐 네명이 동시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감독 마피아 패밀리인 셈.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각종 프랑스 요리는 미국의 NAPA Valley 의 어느 Vineyards 에서 Chef 로 일하고 있는 세계적인 Culinary Director 인 Maria Sinskey 의 특별 요리라고 하는데 각종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까지 레시피를 공개해 놓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깐느에서 파리로 가는 길은 7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이 로드 무비는 1박 2일을 풀로 채워서 겨우 파리에 도착하게 된다. 다이앤은 빨리 파리로 갈 것을 재촉하나 동행한 프렌취 외간 남자는 " 파리는 어디 안가니 걱정말아요"

우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작 목적을 하나하나 채우고 있는 도중의 디테일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사는지 삶의 소중한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지 않은가.

행복은 파리에 있지 않고 도중의 이름없는 시골 마을에 디테일로 살아있다.





오타쿠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덕후라고도 하데. 그러나 이 두 말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를 두고 혹 매니아라고만 해석하면 매우 천박하다. // 일단 오타쿠 덕후는 혼자노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 쳐박혀있는. 그렇다고 빈둥대기만 하는 룸펜과는 다르다. 오타쿠 덕후는 혼자 놀되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즉 혼자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이라는 뜻. 완성된 개인주의를 말한다.  // 여기서 예술은 문화 및 교양, 스타일과 함께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 덕후가 완성된 개인주의자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개인주의는 혼자 논다. 그러나 고립을 거부한다. 부족주의나 가족주의,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무수한, 지평이 확대된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은 자유롭다. 내가 주인된 만남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만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한다는  얘기. 이 얼마나 통쾌한가.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면 윗사람에게 혼나는 그런 조직에서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비위 맞추지 않는 사람, 한마디로 사회 부적격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왕따 기질이 좀 있는 그런 까칠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다.





개인주의자는 예민하다. 소심하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단단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되 그렇기 때문에 소소한 주변을 물리치고 거대한 인류단위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맞설 수도 있게 된다. // 그러니까 진정한 개인주의는 철학도 만나고 역사도 만나며 종교도 만나고 교양과 문화와 예술을 만나게 된다. 자연과 친구가 된다.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며 곧 자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신중함이 뺏어가고 창의력은 상식이 주저앉히며 예술적 감성은 잘해야한다는 강박증이 스스로 말살시킨다.


그래서 열정과 창의력, 예술적 감성과는 무관한 그런 삶이 안전할지는 모르나 너무 지루하다. 때론 신중함에서 벗어나 도전도 해보고, 상식을 뛰어 넘어 의외의 길로도 가보며, 잘 못해도 좋으니 작품도 만들어 보는거다. 그것이 실수를 만들고 좌절도 겪게 하며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공동체의 선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나의 취향과 사상과 라이프 스타일은 당연히 존중받아야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내가 최고가 되면, 훌륭한 개인주의를 완성하면 누구라도 알아주는가? 개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주변과의 부대낌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흐를 누가 알아주었나. 미친 정신병자였다. 그런데 고흐는 그의 개인주의를 완성했다. 신과 일대일로 만났다. 세상과 늘 마주했고 인류단위로 사고하며 사색하며 그것을 예술로 옮겨 세상을 한마장 진일보시켰다.



나는? 고흐도 아니고 위대한 철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일단 주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발견하며 나를 완성해나가는 순간,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선언하고 인류단위로 생각하며 세상의 진보에 대해 작은 밑돌을 자처할 때 나는 고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누가 알아주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세상의 변화에 자신의 이성과 삶의 한 조각이라도 더해 기여해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하루를 살아도 멋있게 살고픈거다. 스타일을 중시하고 살고싶다. 기능성도 좋지만 디자인은 더욱 중요하다. //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 취향이 꼭 한가지여야할 아무런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이유란 없다. 나는 모든 음식이 맛있고 모든 색깔이 다 이쁘다. 모든 산이 다 좋다. 그래서 나쁜가. // 나는 정답을 찾는 부질없는 허세를 그만두고 깨달음을 향한 길만을 오직 본다. 계속하여 뭔가를 시도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며 배우고 아는 가운데 나는 완성되어져 간다. 그 속에 기쁨이 찾아 온다.


영화를 한편 보아도, 감독의 연출의도를 쫓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토리는 대개 그렇고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로 보면 보았지만 안 본 것이다. 커피를 한잔 마셔도 어디서 만들어진 무슨 커피인지를 알고 마시면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전에는 맥주를 그냥 맥주로만 알았다. 그런데 맥주는 문화더란 얘기. 우리 나라 맥주가(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맛없다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수준이하라는 얘기다. 밋밋한 캘거리만도 못한. 여하튼 그렇다는 얘기.




타자의 시선을 극복하고 때론 무시하고 라이벌 이런 개념을 이겨내고 자기 스타일을 찾아 완성하는 것. 이것이 개인주의이며 이와같은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티스트 되는 것이다. 


아트는 어원이 arm 에서 비롯된다. arm 은 붙어있다. 즉 연결이며 소통인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연결시켜주고 소통시키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저쪽의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이와 그냥 작품 하나로 연결되었다. 비행기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이야기인가.




이제 개인주의는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오히려 함께일 때의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와 넓이와 시간 공간적으로 나는 네트워킹되어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존재였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주어져 나를 완성시킨 것. 


자, 이제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개인주의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스타일리쉬한 나의 삶을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 

알아주고 말고는 그들의 몫.  난 다만 전 인류단위로 사고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마주하자. 맞짱뜨자. 

내가 주인임을, 일등임을 선포하자.

케이트 윈슬릿 주연의 Labour Day 를 보았는데 그녀의 연기가 참 좋았다.

그냥히 단순히 잘한 연기가 아니라 영화 내내 그녀의 모습에서 개념이 꽉 차있는 모습,

배역에 대한 확신으로 그녀의 삶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스티브 잡스' 로 조연상을 받고 인터뷰한 동영상

뉴스를 접했다. 과연 그녀의 연기가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다음은 그에 관련한 기사를 옮긴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4살 때 연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제가 뚱뚱한 소녀 역할로 자리를 잡는다면, 이후의 연기인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상패를 들고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지금 나를 봐봐! 지금 나를 보라고!”

기자회견장의 사람들은 모두 웃었지만,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선생님이나 친구,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면,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요.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고, 내가 할 일을 계속했고,

그래서 공포와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믿고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계속하면 됩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그동안 외모에 대한 다른 이의 평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자주 전해왔다.

지난 2015년 10월, ’랑콤’과의 광고계약에서 ‘포토샵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조항을 넣은 그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어린 세대의 여성들은 잡지를 볼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성공한 여성들을 바라보겠죠. 그리고 그들은 그 여성들처럼 되고 

싶어할 거예요.나는 지금의 어린 여성들에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강한 여성을 길러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조건은 매우 중요했어요.”



그리고 그해 9월 페이스북으로 생얼을 드러낸바 있다. 그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내 피부에 주름이 있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오늘은 그 주름 이상의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진짜인 나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또 여러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이 메시지를 공유하고, 모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까지 닿게 하도록 합시다.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부정적인 말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 말 때문에 내가 인종이나 성별로 인한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합시다.“


2015년 1월에는 ‘러닝 와일드 윗 베어 그릴스’(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출연해 딸과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서서 딸 미아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이런 몸매를 가져서 정말  운이 좋은 거야. 몸에 이런 곡선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지.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엉덩이를 가진 것도 운이 거라고,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나도 알아. 

 나도 신에게 감사해."


" 그때 그동안 내가 해왔던 행동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온 거죠.”



와우 !! 정말 멋지지 않은가.. 배우란 인생을 연기하는 직업이다.

그녀는 타고난 배우이자 뛰어난 액티비스트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사랑하는 두 딸들도 케이트의 말처럼, 그녀의 인생 여정처럼, 인생에 대한 의지, 도전, 확고한 주관으로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세상의 편견과 옳지 못한 차별에 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굳센 태도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해 나가고

세상을 주도적으로 대하며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가기를.

아빠는 언제나 그런 너희들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또한 깊이 사랑한다. "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두딸들에게 기사와 함께 보냈던 메시지다.








북미의 노동절은 유럽 전통과 달리(유럽과 우리나라는 5월 1일) 여름이 끝나고 9월 신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어진다.

그리고 Back to School 과 함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노동절은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전 주어지는 

마지막 꿀맛같은 휴식, 새출발을 위한 마지막 재 충전의 롱위켄드 연휴이다.


아마도 이 영화의 배경으로 노동절 연휴가 선택된 것은 어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영화자체는 연출과 주제의식에 다소의 가벼움과 사실적 허술함도 엿보인다. 그러나 케이트의 연기는 이런 허술함을 

묻어버리고도 남을정도로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영화는 세상에의 희망을 버린 탈주범과 이혼녀의 운명적 만남에 의한 따뜻한 사랑이 주제이지만 노동절 연휴의 의미와 

밎물려 이제 모든 것이 정지되었던 기나긴 휴식의 시간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을 암시한다. 


원래 노동절은 미국의 노동자 총파업을 기념하여 제 2인터네셔널 이 지정한 메이데이 이지만 정작 미국은 매카시 열풍 때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며(우리 식으로 말하면 빨갱이 냄새) 아무 관계도 뜻도 없는 9월 첫째 월요일로 귀양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노동절은 새로운 시즌의 새출발을 알리는 날로 자리를 잡았다.


영화는 이와같이 생뚱맞게 변해버린 미국 노동절을 운명적 사랑이란 주제를 붙여 영화적 의미로 해석해 낸 것이다. 

비록 진부한 내용의 의미이긴 하지만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명배우들의 무게있는 연기와 어울려 따뜻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 주목한 것은 케이트란 배우였고 그녀의 멋진 인생관에 오히려 반해버려 영화를 다시

반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의 긴 영화와도 같다. 모두가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감독이며 시나리오 작가며 

촬영감독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연기 파트너이자 동시에 관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매순간 치열한 모습으로 삶의 바른 태도와 인식을 갖출 때 우리들이 만드는 자화상 영화는 완성도가 더 높은 

수작으로 결말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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