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이곳만 생각했다. 마치 전혜린이 '내가 구라파를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안개와 가스등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나는 록키의 압도적인 석회암 바위산과 하늘이 내려준 푸른 호수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
천혜의 절경 모레인 호수뒤 높은 곳에는 3000m 이상의 고봉들에 둘러쌓인 채 라르치라고 불리는 침엽 소나무가 가장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Valley 와 Meadow,계곡과 초지가 있다. 매년 9월 말 10월 초에 걸쳐 이일대가 완전히 황금색으로 뒤덮이는 장관을 보러 세계각지에서 몰려든다.
 
Lyall`s Larch, 즉 라르치 낙엽송은 드물게 침엽 소나무인데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떨어진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 서브 알파인 지대에만 서식하며 대개 9월 중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하며 10 중순까지 이어진다. 캐나다 록키산 일대에 광범위하게 서식지가 분포되어 있으나 그중에서도 밴프 모레인 호수 뒷편의 라르티 밸리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예전에도 이곳은 가기가 쉽지 않았다. 모레인 호수 주변의 좁은 주차장으로 인해 심지어 전날 저녁에 가서 차박을 한뒤 올라가는 수고도 했었는데 요즘은 개인차량은 아예 진입자체가 안된다. 파크 캐나다에서 저렴하게 운영하는 셔틀이 있으나 예약전쟁을 피할 수 없고 인가받은 투어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푸르디 푸른 모레인호수와 황금 가을 색의 라르치 밸리, 그리고 눈 덮인 주변 명산을 감상하며 센티넬 패스까지 다녀오는 것은 인근 캘거리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포기할 수 없는 특권 중 하나다. 모레인 호수는 10월 첫째주 주말이후 6월 중순까지 탐방휴식기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호수 옆 랏지 입구에서 출발하여 센티넬 고개까지 편도 5.6Km, 산행 높이 730m 정도를 왕복하는 코스로 내 기준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다. 센티넬 고개에 올라서면 지난 번에 다녀왔던 패러다이스 밸리로 이어지며 오른 쪽엔 내가 네번 몰라갔던 해발 3544m의 거산, Mt Temple 이 있다. 이산을 오르기 위해선 오늘의 목적지 센티넬 패스까지 와야 하고 여기서 헬밋도 쓰고 다른 장비 점검도 하여 900m 정도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 
라르치 계곡과 센티넬 패스를 오르내리는 내내 모레인 호수 주변을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10개의 고봉, Ten Peaks 을 감상 할 수 있다. 록키 최초 방문자 중 한명인 월터 윌콕스가 그 이름을 원주민 언어로 만들어 부쳤지만 후에 몇개의 봉우리는 록키를 사랑하고 도전했던 사람들을 기리며 이름을 바꾸었다. 록키산에서 최초의 등반사망사고를 당한 분을 기리는 Mt. Fay, PEI 출신의 원주민이자 알버타 총독이었던 분을 기려서 명명한 Mt Bowlen, 캐나다에서 태어난 여성 최초의 알피니스트 산악인을 기려서 붙여준 Mt Tuzo, 월터 윌콕스와 함께 템플산을 최초로 올랐던 Samuel Allen를 기려 붙인 Mt Allen이 그것이다.
센티넬 고개 왼쪽으로는 잘생기고 웅장한 산의 전형인 Pinnacle Mt. 이 있는데 어떻게 저절로 그런 형상이 되었는지 의심하게 만들만치 감동을 준다. 직접 와서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세상 아름다운 곳, 캐나다 2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곳, 모레인 호수. 라르치 등산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호수를 호위하는 10개의 봉우리가 웅장하다.
첫 2.5km구간은 멋진 숲길이다. 그러나 꽤 가파르다. 앞서가는 두 젊은이들은 매우 빨랐다. 나도 뒤쳐지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숲길 끄트머리에서 라르치가 시작된다. 해발 2000-2200m 사이에만 서식한다. 앞에보이는 산이 Mt. Tuzo(7번 픽) Mt. Deltaform, Mt Neptuak 이다.

 

라르치는 침엽수이지만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오랜 기간 자연산불의 영향으로 해발고도 2000m 이상에서만 살아남아 번성하고 있다.
이제 거대한 산들의 품으로 들어간다. 에펠 산과 피나클 산이 정면 시야로 들어왔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러나 시기를 조금 지나버린 탓에 단풍은 많이 지고 없었다. 화려한 황금단풍이 절정을 지나버려 많이 아쉬웠지만 3000m 이상의 고봉에 내린 눈과 라르치의 조화는 또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오른 쪽으로 이일대를 호령하는 산 Mt. Temple이다. rockband라고 불리는 암벽이 세개있다. 타고 넘어야 한다. 경사가 장난 아니다. 위로 보이는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다. 그 뒤로 숨어 있는 봉우리로 더올라야 한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앞에 보이는 지그재그길을 따라 고개에 올라서는 것이다.
이곳에는 세개의 호수가 있다.Minnestimma Lake. 원주민 말로 `잠자는 호수`. 언제나 잠자는 듯 고요하다. 지금은 살얼음이 얼어 있다

 

해발 2200m 고도에 잠자는 듯 누워있는 호수가 고요하고 신비롭다. 앉아 있노라면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 속에 깊은 평화가 찾아온다

 

마치 쾌걸 조로가 칼로 그어넣은 듯한 지그재그 길(스위치백이라고 한다)을 따라 고개를 향해 올라간다. 파란하늘아래 고개에 사람들이 보인다
트레일이 눈에 덮여 매우 미끄럽다. 아이젠 필수. 이 곳은 한여름 시즌을 빼곤 항상 아이젠 준비해야 한다.
패스에 도달했다. 저 아래가 패러다이스 밸리이다. 가장 유명한 그랜드 센티넬(파수꾼) 타워가 그늘에 가려있다. 120m 높이다. 암벽 등반도 한다
고개 왼쪽으로 올라와 바라본 템플 마운틴 방향이다. 여기까지 약 700여m의 높이를 올라왔고 여기서부터 1000m 의 높이를 더 올라가야 정상이다. 한여름이면 이른 아침부터 템플산에 도전하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곳에서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준비를 한다. 여기는 일종의 베이스 캠프다.
다시 템플산 쪽에서 바라본 Pinnacle 산이다. 해발 3070m. 템플 산보다 많이 낮지만 일반인은 오를 수 없는 산이다.
센티넬 패스는 몇시간을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은 곳이지만 한 시간여 머물렀다. 돌아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쉬움을 남겨 놓은 채 떠난다. 미네스팀마 호수와 그 뒤로 병풍처럼 서있는 산들을 바라보며 내려가는 길은 마치 꿈속을 걷는듯 한 느낌을 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게된다.
아쉬움으로 돌아다본 하산 길. 피나클 픽 오른 쪽 모습이 유인원 닮아보였다. 오스테랄로 록키테쿠스? 과학 책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ㅎ
비록 절정기를 지났으나 여전히 버티고 있는 녀석들로 인해 아쉬움을 위로 받았다. 산 정상 부근이 빙하로 뒤덮여 있는 Mt Fay가 제 1번 봉우리다.
내려가는 길에 나무들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모레인 호수의 물빛이 예사롭지 않다. 저 신비한 푸른 색은 오로지 빙하호수에서만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등산을 마치고 호수로 다시 내려오니 모든 피로를 씻고도 남을만큼 아름다운 물빛의 모레인 호수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빙하가 녹은 물에 포함된 미세한 암석 부스러기가 빛과 만나 만들어낸 푸른 색이다. 푸른 하늘 푸른 호수 하얀 눈과 노란단풍 그리고 웅장한 산, 록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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