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이라하던가요.. 불타는 금요일.. 저도 은근히 바라죠.

와인 한잔 하며 한 주간의 시름을 잊는 시간.. 비록 대부분은 혼자지만.

그런데 어제 금요일엔 이곳 캐나다 의료제도의 놀라운 면을 몸소 경험한 날이었어요.

사실 이런 경험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낫지만.

 

캐나다는 의료가 무료인 나라죠.
물론 외래 처방약은 본인 부담으로 사야하지만 병원 진료,즉 각종 진단과 검사와 처치,수술, 
원내투약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본인 부담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알버타주는 개인이 내던 의료보험료도 
수년 전에 없어져 완전히 무료입니다.

물론 의료 적체문제는 있어서 MRI 검사같은 경우는 상당히 오랫동안 대기해야하지만
(저는 무릎 반월판 손상 때는 8개월 기다렸고 ㄷㄷ 허리 디스크는 1개월 정도 기다렸습니다.) 
대개 초음파나 CT 같은 경우는 예약후 검사까지 2-3일 정도 소요되고 XRay 는 당일 검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외 각종 피검사 대소변 검사는 지정 패밀리 닥터또는 walk-in 닥터로부터 의뢰서를 받아서 하는데 
당일 대기로 검사 가능하고 예약을 할 경우 기다림 없이 검사가 가능합니다. 물론 이 모두가 모두 무료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캐나다에 살면서 캐나다 사회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탁월한 장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 무료 공공 의료시스템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케이스에 따라, 사람에 따라 불편하고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다수 많은 서민들, 노인들, 싱글맘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캐나다의 무료공공의료는 
공공복지의 최후보루로서 매우 뛰어난 사회적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왔는 데 
이에 대한 수많은 감동적인 예가 주변 곳곳에 있으며 
가끔씩 터지는 불합리하고 어이없는 의료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캐나다 공공의료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무엇보다 사회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장치로서도 그 의의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빈곤계층에게 암이나 휘귀병같은 것이 찾아올 때, 아니 중산층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왔을 때 진료비 걱정을 하지 않으며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저와 제 가족 역시 그동안 이러한 캐나다 의료혜택을 상당히 많이 받고 누려왔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한의사이지만 양의학의 도움과 이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양의학과 한의학은 상호보완적으로 운용할 때그 시너지 효과가 최대로 발휘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 오고 있지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그저께밤.. 
2층에서 와인 한 잔 하며 영화를 보다 1층 서재로 물건을 가져 내려갔습니다.
약간은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제가 성질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두세계단씩 성큼성큼 내려가다 다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서재문쪽으로 향하고..
결국 헛딛으며 바닥으로 꼬꾸라졌죠. 어이쿠 !! 머리끝이 삐죽 서는 단말마의 고통 !!! 

뭔가 발이 이상했습니다.(당연히 !!) 그래도 워낙 아픔을 잘 참는 데다가 명색이 한의사인지라..
바로 사혈하고 시침을 하고 냉찜질.. 그 다음날 걸을만해서 한의원으로 출근해서 절뚝거리며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제가 만져보고 판단하기에는 분명 골절이된 것같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냥 이대로 붙지않을까 생각하며 하루를 더 근무했지요. 이날 금요일 이라 여차하면 일 마치고 응급실을 갈 생각으로..

결국은 응급실 유혹을 못이기고 ㅋㅋ 사실은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ㅋ 저녁에 풋힐스 병원으로 갔습니다. 
요즘 캘거리 남쪽에 큰병원이 새로 생겨 제너럴 하스피탈 응급실 적체가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데 과연..
"지금부터 의사 만나기까지 1시간 25분 !! " 전광판 안내입니다. 이정도면.. 모.. 양호하죠. 무료니까ㅋㅋ

제일 먼저 병의 경중과 종류를 구분하는 곳에서 간단한 혈압검사를 받고 내원한 이유를 들은 후 
1응급실과 2응급실로 나뉘어 보내집니다. 저는 비교적 가벼운 외상이라 2 응급실로 가서 순번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도 별로 사람들이 많지 않군요. 럭키 !!

그래도 응급실 답게 근무하는 사람들이 매우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눈만 마주쳐도 웃어주고 인사를 하네요.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응급닥터를 만납니다. 저로부터 히스토리를 듣고 간단하게 시진과 촉진을 한다음
바로 Xray로 보냅니다. Xray 실에 근무하는 분들은 대부분 여자입니다. 왜 그런지..

근무자들이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고 헌신적입니다. 그냥 미안할 정도로.. 
발 사진 찍고 얼마전 타박상을 입은 가슴도 찍고 가벼운 관절염 소지가 있는 손가락까지 사진 찍었죠.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의사와 함께 XRay 보면서 의견을 나눕니다.

에구구 !! 새끼발가락 중족골 지골이 제대로 부러졌네요. 그것도 사선으로 !!! 
EM 닥터가 바로 정형외과 전문의를 컨택합니다. 의견을 들은 후 다시 Xray 실로 보냅니다.
정밀하게 몇장 더 찍어오라는군요. 

그런데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어 아까는 제가 직접 걸어서 갔는데 지금은 중환자가 됩니다.
발과 다리에 air walker 를 부착하고 crutch 를 사용하게 합니다. 그리고 중장거리 이동시에는
휠체어 대령!! 보조원의 도움을 받으며 앉아서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세명의 방사선 기사가 들러붙어서 전문의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사진을 만들어냅니다. 
각도와 방향을 매우 창의적으로 만들어서 찍더군요..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고 전문의 소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조금 초조해집니다. EM 닥터가 '응급수술' 이라는 뉘앙스도 비치고.. 수술로 뼈를 맞추겠다는 것인지...
야단났네요.. 

1시간 남짓 기다리니 드뎌 전문의 소견이 나왔습니다.
수술은 안해도 될 듯.. 그냥 2주간 석고 깁브스를 하고 다시 사진 찍어서 예후를 보자고 합니다.
오마이갓.. 석고붕대를 한쪽 다리에다가 !!! 

한의원에서 환자 침은 어떻게 놓으라고..
2 주간 크럿취를 써서 다녀야 한다니.. 오른발인데 운전은 어떻게.. ㅠㅠ

초조히 기다리던 아내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고 저를 치료한 응급의사와 간호사, 
석고붕대 감아준 친절했던 아줌마, 수련의까지 모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그분들 모두 진심으로 쾌유를
빌어주고.. 내가 한의사라는 것을 알고는 명함도 달라하고 침맞으러 오겠다며..ㅎㅎ
힘들고 어려운 응급실 근무를 보람으로 하는 사람들.. 그 따뜻한 마음들을 느꼈죠.
그러면서 에어워커와 크러취는 원래 본인부담이지만 석고붕대로 바뀌는 바람에 모두 공짜로 얻어왔습니다.
담당자가 130불 인보이스 찢어버리더군요. 

그리고..
이 많은 검사와 치료와 진료를 받았는데 모두 무료였습니다. 그리고 밤이 늦으니 주차장 문도 개방하여
주차비도 안내고 집으로 돌와왔죠. 비바 캐나다 !!

그나저나 앞으로 2주간 .. 이런 모양으로 다닐 생각을 하니 눈 앞이 깜깜하네요.


(물론 이 글을 옮겨 포스팅하고 있는 지금은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 후 약 6개월 간 전문의로부터 추적 검사를 받았죠.

당연히 모든 비용은 무료입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치료는 제가 스스로 침을 놓아서 했어요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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