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마치 휴양지에서나 볼듯한 멋진 sun hat을 쓰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미인형의 환자는 모자 아래로 흘낏 보이는 첫인상이 다소 어두웠다. 병원에 왔으니 그렇겠지.

S가 견딜수 없는 머리 신경통으로 누워있을때는 제외하고 24시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2년전 facelift 수술을 받은 후부터였다.
S는 처진 안면근육을 위로 올리기 위해 헤어라인을 따라 앞뒤 머리 피부를 절개하고 올린다음 봉합하는 수술을 2년 전에 받았고 극심한 신경통은 그 이후로 시작되었다.

앉으나 서나 24시간 통증이 계속되는데 오직 반듯하게 누우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줄어들어 그나마 잠을 잘수 있었다. 그동안 처음 시술한 의사와 신경통 전문의등 숱하게 병원을 다니고 온갖 약을 먹었지만 낫지 않았고 그 와중에 스스로 발견한 것은 서있거나 앉을때 모자를 쓰거나 헤어밴드를 하면 통증이 확실히 경감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멋진(?) 모자를 쓰고 온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다. 고민을 했다. 일단 미용수술에 의해 신경데미지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런 종류의 신경통이 자연적으로 사라지거나 환자가 통증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미 2년째다. 그리고 통증의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S는 절망하고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끔찍하다고 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내게 왔다고 했다.이런 환자에게는 우선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한 공감과 함께 내가 어떤 도움을 어떻게 어떤 근거로 줄수 있는지에 대한 상세하고도 조리있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환자가 어느 정도의 믿음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상담과 설명에 한시간 이 상이 걸렸다.

“무엇이든 선생님이 하려는 것을 받아보고 싶어요”

국소부위에 전침을 사용했다. 그리고 간담경락과 소장 방광경락을 소통시키고자 했다. 한약도 썼다. 신경통증에 효능있는 처방을 사용했다. 한의학의 금과옥조중 하나, ’막히면 아프다. 뚫어주는 치료가 통증치료의 1원칙이다‘ 를 믿고 따랐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장부치료를 병행했다.
 
첫 침 치료후 잠을 잘잤고 두번째 치료후 하루동안 매우 아파 힘들었으나 그후 이틀은 그럭저럭 보냈다. 한약은 하루 세번 복용. 세번째 치료후 S는 한층 밝은 얼굴로 들어왔고 네번 째 치료후 S는 2년만에 처음으로 4일간 연속으로 한결 나은 상태를 경험했다. 그리고 한 두번 더 치료받고 모자와 헤어밴드를 쓰지 않은 채 내원했다. S도 나도 놀랐다. 솔직히 나 스스로도 이렇게 좋아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10번의 치료후 S는 여전히 통증이 있고 완전히 낫진 않았으나 이대로 좋아질것이란 희망은 더욱 강해졌다. 이에 나는 S에게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 에 대한 개념을 얘기했다. 물론 이것은 뇌신경과 뉴런에 관한 얘기지만 통증을 감수하는 뇌신경의 회로를 재구성함으로써 오랜 통증에 시달려온 환자의 통증 인지를 리셋할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우리 뇌는 특정 만성통증에 대해 고정적이며 민감하게 느끼는 식으로 신경회로가 고착되기 쉬운데 그 것을 훈련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개념이다. S는 나날이 좋아졌다. 이제는 앉으나 누우나 걷거나 어떤 활동을 해도 모자나 헤어밴드없이 통증이 없으며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며 삶을 새로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완전하다고 본인이 느끼지 않기에 침과 약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이며 신경가소성 이미지 트레이닝도 계속하겠다 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같다.

우리 인체는 놀라운 치유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그 어떤 인위적 치료보다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 모레인호수에서의힐링타임 
 

 

 
모레인 레이크, 밴프국립공원
 
 



 
그레이스가 내 한의원에 처음 찾아온 것은 10여년도 훨씬 전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한 눈에 딱봐도 극빈 저소득자에 캐나다 사회에서 보기 드문 소외계층이었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진동하며 눈은 퀭한 채 헤지고 낡은 외투를 걸친 모습은 홈리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손에는 그동안 캐나다 의료체계에서 받은 온갖 검사자료를 한뭉치 들고 있었는데 내게 그것을 건넬 때 이미 깊은 체념이 담겨 있음을 알아챘다. 캐나다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 숱한 기다림 속에 온갖 검사는 결국 그런데로 해주지만 제대로 된 그 이후가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혼녀로 청소년 당뇨가 있는 아들과 많은 여성병에 시달리는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폭력적 남편은 가족을 팽개쳤고 아무런 도움은 커녕 여전히 가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중에 그레이스는 소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안아프 곳을 찾는 것이 빠른.  나는 그날 작정하고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가 있을리 없고 파트타임 직장에서도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의사들 조차 5분이상 만나주지 않았다 한다.
더군다나 행색도 초라한 늙은 환자의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들어주고 있을 의사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녀 가슴속에 담겨져 있을 그 모든 아픔, 한,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였을지 생각하며 인내심으로 그녀의 개인사와 원망, 아픔들을 오랜시간 세심하게 들어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피해의식에 쩔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적절히 공감하며 동조하고 또 의학적으로 필요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더니 모든 의심과 어색함을 풀고 천진한 미소까지 지으며 자연스럽게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힐링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 환자들의 얘기를 끈기있게 들어주고 공감해준다는 것. 어떤 환자로부터는 부부싸움 한 것을 다 듣고는 나름의 해결방안을 주었는데 그게 주효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레이스의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후 나는 침과 한약치료가 동시에 필요함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오늘은 상담한 것으로만 하고 돈 모아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잠시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당분간 무료로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형편이 나아질 때 까지. 그녀는 고마워 하면서도 다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비를 마련해오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 때 당장 치료가 필요하니 치료를 시작하고 치료비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했다. 그렇게 해서 침과 한약치료를 시작했고 그레이스는 나날이 좋아졌다. 치료비는 결국 반값으로 정했다.
 
"닥터리, 내가 요즘처럼 희망 속에 있었던 적은 없어요. 이제 내 아이들과 함께 더 열심히 살아갈수 있을 것 같아요"
 
그후 그레이스는 사회적 삶에 있어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으나 옛날과는 달리 긍정적인 태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도 성장하여 이런저런 문제들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며칠전, 거의 2 년여만에 그레이스가 찾아왔다.
 
여느때처럼 내 볼에 키스를 해주며 딸이 이런 말을했다고 전한다.
 
" 엄마 이제 엄마를 위해 살아. 닥터리 찾아가서 치료받고 엄마를 위해 돈쓰고 살아"
 
코압 그로서리의 주유소에서 캐시어로 일하는 그레이스. 날마다의 삶이 고되지만 선한 영혼으로 주어진 일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며 늘 아들 딸 걱정 속에 여전히 헌신적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고귀한 삶. 비록 배운 지식은 짧으나 그 어떤 배웠다는 인간들보다 세상에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작지만 큰 존재. 
 
그의 삶은 결코 그레이스하진 않았으나 그녀는 언제나 그레이스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그레이스로부터 인정받는 닥터리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보람을 느낀날이다.
 
 
 
하수오라는 약재가 있다. 한 때 보약으로 각광을 받았고 열병처럼 유행했다. 모든 신드롬이 그렇듯 지금은 사그러 들었다.
그럴 수 밖에. 대부분 가짜인데다 진짜라 해도 효능도 별로 없는 백하수오이기 때문.

원래 모든 몸에 좋다고 선전하는 약은 거짓이다. 몸에 좋은 것, 이딴거 없다. 몸은 원래가 좋다. 살면서 나빠질 뿐이고
병적으로 나빠진 것은 치료해야하지만 자연적으로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로장생이란 사기 컨셉에 불과한
사막의 신기루이기에 그러하다.

하수오는 흰머리를 검게한다고 하는데 이 약재 생김이 머리 부분이 검기 때문에 그런 효능을 얻었다? 그럴리가.
이 약재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면 한자어보다 쉽다. Black -haired Mr. Ha 인데 그저 머리 부분이 검고 검은 색은 신장의 색이고
그래서 이게 신허에 쓰는 보혈제이며 신장은 머리카락의 건강에 관련있고 머리카락은 혈지여 라고해서 혈액의 부산물이라고
한의학에서 말하는데 뭐 그럴싸하다.

나이 들어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걸 굳이 염색하고 검게 만든들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데 병적으로 흰머리가 많아진 사람이 있고 그게 신허로 인한 것이라면 적하수오가 어느정도는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정도로 쇠약한 그런 환자는 벌써 보기에도 영양이 형편없이 부실해 못먹었거나 방사를 너무 심하게 하였거나
쇠약의 정도가 보통이 아니어야 한다. 요즘같이 영양과잉 시대에 그 정도의 신허환자는 만나기 힘들다.

북한에 가도 평양에서는 볼일이 없을 것 같고 북한의 오지 마을에나 가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요즘처럼
사람들의 신기가 대체로 튼튼한 시대에서는 이 약재를 먹는다고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할 일이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력에도 좋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거 없다. 정력어쩌고 이야기하면 그건 대부분 사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한의학에서 하수오라고 하면 적하수오를 말한다. 백하수오는 사실 한의학에서 별로 쓰이지 않고 별 효능도 없다.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부 하수오로 돈벌려는 사람들 뿐.

적하수오는 보혈제로서 혈허, 신허, 간허로 인한 어지럼증이나 눈이 침침한 증, 경미한 백발증, 혈허로 인한 만성 허리병 등에
효능이 있다. 소위 신허증으로 인한 유정 활정 등.. 그러나 이또한 이런 정도의 신허 환자를 보기란 요즘 시대에 쉽지 않다.

사실 모든 보약이 다그렇다. 보약은 원래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인 그런 약이 아니고 인체의 허증을 치료하는 개념이다.
필요없는데 몸 더 좋아지라고 먹는 약이 보약이 아니다. 그런 한약은 없다. 그런데 세상에 옛날 처럼 치료가 필요할만큼
허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간혹 있다. 그러나 거의 만나기 힘든다.

그럼 적하수오는 쓸데없는 한약재인가? 나는 이약을 만성 콜레스테롤 환자에게 써서 대단한 효과를 본적이 있다.
물론 이 것만 쓴 것은 아니지만. 적하수오는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동맥경화를 완화하고 혈압을 내리는 효능이 좋다.
사실 상당히 좋은 효능이 있다. 고지혈증에 동맥경화 및 고혈압이 있는 친구라면 오래도록 차로 끓여 매일 두번씩 마시면
반드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믿는다.

근데 이것을 생으로 쓰면 독성이 있는바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니 뭔가를 해야하는데 일반인이 하기 어렵고 귀찮다.
그러나 보통 구증 구폭이라고 하는 법제를 한 하수오를 구입하여 사용할 것. 이런 짓을 안한 것이 생하수오인데
따라서 생하수오는 변비에 쓰고 소염작용이 강해 항생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

임상례)

근래 내원한 환자 중에 평생 고지혈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백인이 있다. 가족력이 있으며 식단은 건강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타틴을 거의 평생 복용해왔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고지혈은 꿈쩍도 안하며 계속 증가해왔다.
그로인해 HEART ATTACK 도 한 번 왔었다. 또 하나의 심동맥이 75%까지 막혀있다.

나는 그의 고지혈증을 간병으로 보고 치료했다. 한약도 썼다. 그냥 고지혈증 및 관상동맥 증에 쓰는 처방을 썼다. 3개월 치료했는데
오늘 혈액검사 결과를 가지고 왔다. 혈중 콜레스테롤수치가 반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 25년동안 꿈쩍도 안했던 수치. 그리고 관상동맥도 75% 막힘에서 65%로 떨어졌다.

내가 쓴 한약처방

단삼 24g 천궁 15g 적작약 15g 홍화 12g 강향 12g (여기까지는 천진 의과대학 관상동맥증 한약처방) + 향부자 시호 각 10g + 적하수오 20g 이상 하루양, 끓여서 세번에 나누어 마신다. 3개월 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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