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가 내 한의원에 처음 찾아온 것은 10여년도 훨씬 전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한 눈에 딱봐도 극빈 저소득자에 캐나다 사회에서 보기 드문 소외계층이었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진동하며 눈은 퀭한 채 헤지고 낡은 외투를 걸친 모습은 홈리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손에는 그동안 캐나다 의료체계에서 받은 온갖 검사자료를 한뭉치 들고 있었는데 내게 그것을 건넬 때 이미 깊은 체념이 담겨 있음을 알아챘다. 캐나다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 숱한 기다림 속에 온갖 검사는 결국 그런데로 해주지만 제대로 된 그 이후가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혼녀로 청소년 당뇨가 있는 아들과 많은 여성병에 시달리는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폭력적 남편은 가족을 팽개쳤고 아무런 도움은 커녕 여전히 가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중에 그레이스는 소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안아프 곳을 찾는 것이 빠른.  나는 그날 작정하고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가 있을리 없고 파트타임 직장에서도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의사들 조차 5분이상 만나주지 않았다 한다.
더군다나 행색도 초라한 늙은 환자의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들어주고 있을 의사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녀 가슴속에 담겨져 있을 그 모든 아픔, 한,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였을지 생각하며 인내심으로 그녀의 개인사와 원망, 아픔들을 오랜시간 세심하게 들어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피해의식에 쩔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적절히 공감하며 동조하고 또 의학적으로 필요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더니 모든 의심과 어색함을 풀고 천진한 미소까지 지으며 자연스럽게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힐링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 환자들의 얘기를 끈기있게 들어주고 공감해준다는 것. 어떤 환자로부터는 부부싸움 한 것을 다 듣고는 나름의 해결방안을 주었는데 그게 주효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레이스의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후 나는 침과 한약치료가 동시에 필요함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오늘은 상담한 것으로만 하고 돈 모아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잠시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당분간 무료로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형편이 나아질 때 까지. 그녀는 고마워 하면서도 다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비를 마련해오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 때 당장 치료가 필요하니 치료를 시작하고 치료비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했다. 그렇게 해서 침과 한약치료를 시작했고 그레이스는 나날이 좋아졌다. 치료비는 결국 반값으로 정했다.
 
"닥터리, 내가 요즘처럼 희망 속에 있었던 적은 없어요. 이제 내 아이들과 함께 더 열심히 살아갈수 있을 것 같아요"
 
그후 그레이스는 사회적 삶에 있어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으나 옛날과는 달리 긍정적인 태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도 성장하여 이런저런 문제들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며칠전, 거의 2 년여만에 그레이스가 찾아왔다.
 
여느때처럼 내 볼에 키스를 해주며 딸이 이런 말을했다고 전한다.
 
" 엄마 이제 엄마를 위해 살아. 닥터리 찾아가서 치료받고 엄마를 위해 돈쓰고 살아"
 
코압 그로서리의 주유소에서 캐시어로 일하는 그레이스. 날마다의 삶이 고되지만 선한 영혼으로 주어진 일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며 늘 아들 딸 걱정 속에 여전히 헌신적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고귀한 삶. 비록 배운 지식은 짧으나 그 어떤 배웠다는 인간들보다 세상에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작지만 큰 존재. 
 
그의 삶은 결코 그레이스하진 않았으나 그녀는 언제나 그레이스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그레이스로부터 인정받는 닥터리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보람을 느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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