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작성한 글) 
 
연 4일 째 바람불고 비가내리고 있다. 촉촉한 봄비이기는 하나 기온이 낮아 행여 눈으로 바뀔까 노심초사하게하는 비다. 여전히 조용한 길거리를 더욱 텅 비워버릴 만큼 차가운 비다.평소 흐리고 눈이나 비가 오면 외려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는 이상한 사람이라 하지만 내게 있는 골드문트형 유전자 때문일것이다. 에로스적이고 충동적인 감성, 예술가적 방랑으로 옳고 바름에 천착하는 골드문트가 비를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다. 다만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아니거나이다.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기억의 고리로부터 그 때마다 들추임을 당한다. 또 그 때마다 아파 힘들어하면서도 반드시 싫은 것은 아니어서 약간은 자학적 즐거움에 빠져드는 것이다. 비는 사실 생활하는데는 거추장스럽다.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다이언 레인과 리처드 기어. 이 절묘한 조합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촉촉하고 잔잔하면서도 애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감상은 흔한 플롯이어서 진부하지만 슬픔의 미학이라고까지 과장해도 좋을 만큼의 여운을 남기는 그런 영화였다.
Nights in Rodanthe. 2008년 작품.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법하고 또 꿈꾸었을 운명적이며 격정적인 사랑이야기. 생의 한 가운데에 찾아오는 상큼하면서도 주체하기 힘든 뜨거움. 예상치않은 우연으로 찾아와 거부할 수 없는 완전함으로 태어난 후 삶을 압도해버리는 그런 사랑이야기다.
강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 영감을 가진 몽상가, 달달한 과실의 즙과 충실한 대지 위에 서있으나 해보다는 달과 별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이렇게 묘사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상처, 맞닥뜨린 인생의 위기,그리고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맞아떨어질 때 불꽃이 튄다. 그러나 그 사랑을 꽃피워 지속하게하는 요소는 인내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며 참으로 인간적인 품성,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잘나가던 의과의사인 폴(리처드 기어)은 의료사고에 휘말려 사고를 당한 가족을 만나러 해변이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왔다. 폴은 얼마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의료사고후 역시 의사인 아들과는 갈등이 생긴 상태로 상처를 안고 있다. 그가 며칠을 지낸 Inn은 한눈에 봐도 아름답기는 하나 이상한 장소에 서있다.(저런데다 건축허가를 내주나하는 생각. 영화적 장치이겠으나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재미없이 지루하게 생겼으며(왜 이런 사람들은 항상 대머리스타일이냐고!!) 센스 부족하고 도대체 여자의 감수성과 섬세함에는 도저히 호응해줄 것 같지 않은 남편과는 오랜 갈등 끝에 별거한 채 두 아이를 데리고 틴에이저인 딸과는 티격태격 다투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애드리언(다이언 레인) 이 휴가를 떠나는 친구 대신 이 Inn 을 봐주기로 한다.
마침 강력한 허리케인이 예보되어 Inn에는 폴이 유일한 투숙객. Inn은 숙식이 제공되며 예전의 대 저택을 개조한 듯 가정집 분위기다. 이정도면 뭔가 사건이 일어날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 진셈. 그 이후는 그저 그런 스토리로 사랑이 일어나고 완성되는 달달한 멜로의 과정이다. 함께 분위기 가득한 저녁을 먹게되고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느끼고 발견하고.. 다른 아무일 없이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서도 가랑비에 옷젖듯 서서히 싹트는 사랑..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 실감날 뿐 아니라 중년의 멜로물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둘의 연기호흡은 정말 놀라울 정도여서 둘 사이에 왜 실제 스캔들이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리처드 기어만큼 격정의 사랑, 한 순간에 딱 꽂혀서 사랑을 하는 역에 더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싶고 그것을 고급스럽게 받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호응하는 사랑의 역에 다이언레인처럼 더 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동명의 베스트 셀러 원작소설의 탁월한 섬세함때문이기도 하고 연극연출 출신인 조지 울프 감독의 재능있는 연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역을 제대로 해석하고 소화한 두 배우의 명연기에 공을 돌려야 할 것 같다. 뛰어난 명작은 아니라도 비오는 날, 와인 한잔 하며 달달하게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P.S.정말 안읽어도 되는 남은 이야기)
영화속에 나타나는 갈등구조 중 폴과 아들, 애드리언과 딸 사이의 갈등이 나온다. 그것을 풀어가는 미국인 가정의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본 또 하나의 영화, Sunrise in Heaven 에서 역시 완고한 아버지와 딸 및 그 약혼자와의 사이의 갈등이 풀어지는 과정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배울점이 많다.
반면에 요즘 아내와 함께 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 화양연화 속의 검사 아버지와 딸 및 그 연인과의 사이의 갈등구조와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비록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자들과 비교해 너무도 낙후되었다. 아마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지만... 사족이었다.
 
몰입해서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원작 소설가는 멜로물의 천재같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케빈코스트너가 주연했던 Letter in a bottle 의 원작 소설도 이 분이 썼다고.

 

영화 속에 나오는 Inn 이 있는 곳. 뭔가 어색하다. 이런데다 누가 건축허가를 내주냐고 !!
Inn 이 원래 있던 장소다. 이해가 간다.

 

할리우드는 이것을 통째 바닷가로 옮겨 놓았다. 세상에 !!
애드리언과 딸의 갈등은 크지 않으나 인내심있게 미숙함을 존중하며 풀어내는 엄마의 방식은 배울점이다.
이 영화 역시 아무 생각없이 어린 시절 추억하며 보기에 딱 좋은 영화로 예쁜 사랑 이야기 그러나 부모자식간의 문제해결방법은 배울점이 많다
아내가 운동권의 삶과 사랑이라고 날 꼬셔서 보게하는 드라마.. 내가 보는 도중 말이 많아서 타박을 많이 받지만.. 옛생각도 나고, 어린 시절 우리도 생각나고, 괴로운 요즘의 나날들에 대한 근심도 잊고.나같으면 윤지수 데리고 도망갔다 ㅎㅎ 무엇보다 부모자식간 갈등을 풀어가는 구조가 너무나도 낙후되었다. 요즘은 아니겟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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