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리즈의 경우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4기통 터보, 257마력의 430i Xdrive 와 6기통 터보,382마력의 M440i Xdrive 두가지 트림으로 나옵니다. 각각의 트림은 여러가지 편의 및 안전사양들을 스탠더드로 장착해 Base 모델로 내어놓고 여기에 외장색, 시트, 타이어, 실내 트림을 선택한 후, 4가지 패키지와 개별 프리미엄급 편의 및 안전 사양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430i와 M440i의 가격 차이는 약 13000불(1300만원) 정도 되며 당연히 기본 옵션과 사양, 외관에서의 차이가 있습니다. 

M440i는 M퍼포먼스 트림이라  M스포츠 서스펜션, M디퍼렌셜, M스티어링등 M감성의 장치와 사양들이 기본으로 들어 있으며 무엇보다 430i에서는 반자율 주행 옵션을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옵션빠인 나는 M440i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빨간색 캘리퍼를 너무나 원했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블랙 익스테리어가 들어가는 패키지를 선택해야해서 부득이 포기하였습니다. 미러와 그릴의 세륨 그레이 포인트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 장착되어 나오는 블루 캘리퍼도 나쁘진 않더군요.

 

먼저 제 차의 실내를 보여드리고 나중에 제가 차를 받자마자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제 사는 곳의 BMW 딜러쉽에서는 선물이나 화려한 출고 이런거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차 값도 깎아주지 않고 

그냥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정도 ㅎㅎ  이날 같은 시간에 출고 차가 3대나 있었어요. 

 

 

BMW의 뒷모습은 정말 BMW다워요. 쿠페의 멋은 프레임리스 도어에 있는 것 같아요.  마치 프레임리스 선그라스를 낀 것 같은 느낌.  웬지 이 차에는 어울리는 옷이 있을 듯 해요. 캐주얼 수트같은 것? 

 

 

 BMW의 실내는 정말 독일차스럽죠. 실용적이면서도 만듬새가 좋아요. 처음 보는데도 마치 오래 본듯한 익숙함이랄까. 그러나 오래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마치 독일 고전음악이 들으면 들을 수록 마치 새로운 듯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요.

 

 

제가 고백하지만 G70을 선택하지 않았던 몇가지 이유 중엔 분위기등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어요. 이번에 새롭게 페리되는 G70에도 여전히 분위기등은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차의 분위기등은 색상 수도 많지 않고 밋밋한 수준이지만 절제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Tacora Red 시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선택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우디 S5 도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절제미와 특유의 감성이죠. 발트 드 실바 (Walter De Silva) 의 디자인 감각은 진보적이면서도 심플하여 정말 매력이 있어요. 그러나 현재의 S5는 수년째 그대로입니다. `완벽하니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제가 너무 많이 봐버렸어요. 좀 질렸어요.  그러나 BMW는 많이 봐도 질리지 않는 어떤 요상한 힘이 있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운전하고 싶은 모습.  웬지 내 뜻대로 정확하고 충직하게 움직여 줄것 같은 느낌. 나와 한 몸으로 놀아줄 것 같은. 

 

 

제가 실내 트림을 무조건 카본으로 한 것은 순전히 이 차를 오래 탈 예정이기 때문이예요. 일단 15년이 목표입니다^^

 

 

디지털 클러스터는 제 마음에 너무 듭니다. 이유는 이것일 거에요. 제가 쏘나타 계기판을(클러스터가 아닌 ㅋㅋ)  17년간이나 보아왔기때문에.. 뭔들 새롭지 않겠어요.

 

 

저는 기어봉이 좋습니다. 버튼 식은 아직 익숙치 않아요. 조그다이얼도 너무 편리하고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하만카돈, 서라운드 뷰, 컴포트 엑세스 등 9가지 옵션과 함께 프리미엄 패키지에 들어 있습니다. 

 

 

갈바닉 컨트롤이라고 하죠. 그냥 플라스틱 버튼이 아니니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S5는 플라스틱.  

 

 

요녀석이 정말 재미있고 캘거리에서는 시내주행에서도 빈번히 사용됩니다. 준고속도로 수준의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입니다.

 

 

겨울이 6개월이라 스티어링 열선은 모든 트림 기본 장착입니다.  M 벳지는 이 차가 M 패키지가 아닌 M퍼포먼스임을 알려주고 있지요.

 

 

선루프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옵션입니다. 기본 장착되어 있습니다. 실내등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요. 

 

 

뒷좌석 공조기도 괜찮습니다. 뒷좌석은 생각보다는 넓고 앉을만 했어요. 허리 받침대만 준비하면 그런대로 몇시간은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뒷자리에 사람 태울일은 없지만. 

 

끝으로 흑백사진으로 찍어보았어요. 

 

 

 

 

 

 

 

 

 

이제 제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차를 받던날 그 감동의 깊이와 파장은 인생의 몇 안되는 경험이리만치 크고 놀라웠어요.

정말 오랫동안 고르고 기다려왔기에 더욱 그랬지요. 그래서 차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미리 차 설명서를 다운 받아 공부했어요. 차를 받고 집으로 와서 바로 여러가지 기능들과 옵션들을 시험했죠.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탑앤고, 반자율 주행을 켰어요. 그런데 차선이 하나만 표시되어 있고 70km 속도 표시 위 핸들이 회색이에요. 기능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인텔리전트 안전 옵션 버튼을 눌렀더니 이렇게 뭔가 안되고 있다는 표시가 떴어요. 그래서 제가 뭔가 잘못 설정을 했나 싶어 처음부터 다시 설정을 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똑같은 상황. 

 

 

급기야 뭔가 문제가 있어 운전자 보조기능이 일시적으로 작동안된다는 멧시지가 떴어요. 주행에는 아무문제 없으니 계속 운전해도 된다면서.

 

그래서 그날 바로 딜러쉽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어요. 그리고 신차 설명 담당자에게 직접 운전하며 시험해보라고 했죠.  역시 결과는 똑같았어요. 뭔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월요일 아침 일찍 서비스를 받자고 했어요. 그날이 토요일이었거든요.

 

꿈에도 그리던 신차를 받자마자 반자율주행 기능 고장,(고장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어요)이라니.. 정말 슬펐어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닐거라는 신차 출고 담당자의 말에 위안을 삼고 주말을 힘겹게 보낸 후 아침 7시 서비스센타가 문을

열자 마자 차를 접수 시켰습니다.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담당자가 친절하게도 이메일을 보내놓은 상태라 별 무리 없이 접수가 되었죠. 

 

 

수리하는 동안 기다렸습니다. 대개는 일터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딜러에서 그냥 기다렸어요. 두시간이 지나니 ` 점검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소프트웨어를 모두 점검했고 모든 기능이 정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하며 비록 첫날부터 고장수리라니 기분이 안좋았지만 액땜이라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다시 받

아들고 출근길에 올랐죠. 

 

그러나 웬걸 도로에서 그 기능을 다시 시험해보니 여전히 똑같은 메시지에 똑같은 경고문구. 반자율주행 기능은 거리 조정만 되고 차선 이탈 방지나 차선 유지기능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이메일을 넣었더니 서비스센타에서 답이 오기를 내가 설명서를 충분히 숙지 하지 못해서이니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답이 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해야해서 퇴근후 집으로 돌아오며 가르쳐준대로 해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고 역시나 문제는 매한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새벽 다시 무작정 서비스센타로 찾아갔죠. 센터에 가기전 새벽에 담당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현재 상황과 나의 Blue Heart를 꼭 고쳐달라고. 

 

담당자는 제 편지에 감동했는지 좀더 진지하게 대하며 오늘은 반드시 고쳐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딜러가 페이하는 우버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하루종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이 오기를 내일까지 차를 서비스센터에 둬야겠다고 하며 다시 우버를 보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우버를 타고 출근했고 나는 차를 고치지 못하게 될까봐 온갖 불안한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연락이 오기를 여전히 문제가 해결 안되어 차를 하루 더 센타에 둬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차 서비스로 차를 대여해주겠다는 것이었죠.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갔습니다. 

 

차를 받자 마자 차도 없이 비록 딜러가 돈을 내지만 우버로 출퇴근하고 급기야 대차 서비스를 받을만큼 차수리가 길어진다니.

독일 본사에 연결해서 원격수리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울했죠. 못고치면 새차로 바꿔주나.. 그러면 똑같은 차 받기 까지 나는 차없이 어떻게 하나. 그때까지 대차 서비스해주나.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터질즈음에 센터에서 걸려온 전화. 

"차 고쳤어! 시험운행까지 했고 모든 기능 정상 작동하는 것 확인했어" 

 

그리고 오후에 차를 제 사무실까지 달리버리 해주었습니다.  마침 소프트웨어 테크니션이 휴가 중이었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전달했고 그 친구가 전화로 지시하여 스포트웨어 업데잍 및 리셋을 했더니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차를 받자마자 5일 동안 마음고생을 했지만 호사다마,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런거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는데

BMW 서비스 팀의 헌신적이고 진실한 대응과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배려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도 하나의 상품인데 불량도 날 수 있고 고장이 나기도 하죠. 그러나 그럴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태도로 나오는

지가 중요하다고 볼 때 앞으로 이 차를 소유하는 동안 이 서비스 센터와 관계를 계속 맺어야할 터인데 이번 일을 기회로 

그들이 제 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하니 이 번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여기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제 차를 받은지 20일, 1000km 주행을 막 넘어섰습니다. 모든 기능 정상이며 아직 길들이기 기간이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M감성, 382마력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살짝살짝 느끼며 슬기로운 신차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말 긴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마침내 !!  17년간 애마였던 쏘나타 3.3L V6와 `헤어질 결심` 을 한지 2년 6개월여만에

샤로운 애인, M440i 가 내 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내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고 해야 맞을 듯 합니다.

쏘나타를 넘겨줄 때 그렇게 서운하더니 새차를 만나러 가는 중에 그 서운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새애인 만날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정절이란 없는건가. 사람이 이리 간사할 수가!

계약후 6개월의 기다림끝에 BMW를 처음 만난 순간은  숨이 멎을 듯 그 설레임의 정도가 인생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만큼 특별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마음 같아선 최소 15년 이상은 이 차에 대한 정절을 지킬 것 같은데 말이죠.

 

 

첫인상? 아름다웠습니다. Artic Race Blue 의 exterior컬러는 저의 최애 색인 불루의 깊고 그윽하면서 북극해의 햇살아래 반짝이는 짙푸른 감성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BMW하면 불루죠. 그리고 뜨거운 심장,6기통 실키식스 직렬엔진이죠. 그래서 이 차를 보자마자 "My Blue Heart" 나의 푸른 심장으로 이름지었습니다. 나의 푸른 심장은 뜨거운 심장입니다.  382마력 51 토크의 강력한 힘으로 도로를 당당히 질주 할테죠. 그러면서 직렬 6기통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지요. 야성과 함께 감성의 뜨거운 심장이니까요. 남은 인생, 내 삶의 동반자로, 강력함과 함께 부드러움으로, 푸른색의 색온도가 높은 것처럼.  뜨겁게 살아야죠. 

 

 

원래는 빨간색 스포츠 세단을 원했습니다. 눈덮인 록키의 고봉 사이 도로를 빨간 스포츠카로  달리는 꿈, 시리도록 아름다운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따라 태평양 싯푸르 바다를 보며 빨간 스포츠 카로 달리는 꿈. 그러나 BMW에 레드는 웬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무채색은 내 취향이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나의 최애 블루로 별고민없이 정했죠. 

 

그러나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빨간 자동차에 대한 꿈! 그래서 대신 시트를 빨간색으로 하기로 하고 

Tacora Red 가죽으로 선택했습니다. 타코라 레드는 새빨간 색이 아닙니다. Burgundy에 가깝죠. 

약간의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은은한 붉은색이죠.

 

타코라는 칠레의 화산 이름입니다. 그 화산에서 발원된 물로 많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죠. Tacora Wine.   

아마도  BMW의 타코라 레드는 이 타코라 와인의 붉은 색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요.  

타코라 붉은 시트색이 북극해 푸른 외장색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파격과 대 변신의 vertical Kidney Grill. 전면부의 주연으로서 강인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처음본 그때부터 이 디자인의 묘한 매력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밋밋함을 싫어했고 남들과 똑같은 것을 피했으며(약간의 관종끼?) 새로운 것에 늘 강한 호기심을 보였던 터라던 강한 개성의 세로형 키드니 그릴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울리는 형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주변 범퍼와 에어덕트가 훌륭한 조연으로 받쳐주고 가운데로 모아지는 보닛 라인과 날렵한 형상의 헤드 램프는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웅장함과 함께 잘 조화되어 진보적이고 역동적인 조화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임승모 디자이너. 본인의 외모는 섬세한 편인데 선이 굵은 이런 디자인을 해낸 것 은 그가 도톰한 입술을 가진 때문일까요. 역시 조화로운 삶의 한 단면이 아닐런지요. 그의 과감하면서도 결코 밸런스를 잃지 않는 부드러움의 디자인 철학은 차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블랙 익스테리어를 선택하면 세륨그레이 포인트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블루에 블랙익스테리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블랙은 흰색, 빨간색, 혹은 노란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합니다. 블루와 블랙은 같은 어두운 톤이라 무거워보이는게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M440i의 스탠더드인 세륨그레이는 업그레이드된 프리미엄 버전이기에 개인적으로 놓칠 수 없었습니다. 

 

 

BMW 레이저 라이트는 캐나다에서 매우 유용한 옵션입니다. 워낙 넓은 땅이라 조금만 나가면 차량 통행도 드물고 가로등도 없는 길이 무한정 뻗어 있지요. 특히 겨울엔 밤이 길어 이럴 때 레이저 라이트는 진가를 발휘할 겁니다.  

 

 

레이저 라이트가 들어가면 이렇게 푸른 색 부품이 들어가서 헤드램프의 디자인을 훨씬 풍성하게 보이게 합니다. 

 

 

 휠은 19인치 이며 summer performance tire를 주문했다가 3월 중에 차가 나온다고 해서 다시 올시즌 런플랫 타이어로 주문변경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5월이 되어야 봄입니다. 4월까지는 눈도 많이 오고 기온도 낮아서 윈터 타이어가 필수죠. 섬머 타이어는 다음 타이어 바꾸는 주기에 한 번 경험해보려 합니다. 

 

옆모습은 자동차 종류 중 가장 아름답다는 쿠페세단답게 이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시리즈보다 낮은 차체와 운전석에서 시작되는 떨어지는 쿠페라인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가히 예술적입니다. 사진에서 앞바퀴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지만 앞뒤바퀴는 편평비만 다를 뿐 같은 사이즈입니다. BMW 차종 중 가장 긴 도어와 짧은 오버행, 도톰한 펜더 부위는 이 차가 정말 날렵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정통 스포츠 세단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 쿠페는 자유다'  쿠페는 실용성의 덫과 정형화된 세단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자동차 본래의 특성에 최적화된 형태에 멋과 스타일을 입혀서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비록 얽혀있는 관계 속에 살지만 자동차만큼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사고 싶었습니다. 프레임리스가 주는 자유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창문을 내린채 문을 열고 하차하면 프레임없는 텅빈 개방감에서 족쇄가 풀어진 느낌을 받거든요. 

 

 

M440i의 뒷모습은 전형적인 BMW입니다.  3시리즈와 달리 웨이브 진 테일램프는 더 낮아진 차체와 더불어 4시리즈의 개성을 표현하며 잘 달리는 차임을 표현해주고 있네요. 블랙 익스티리어 옵션이 아님에도 디퓨저는 검정색으로 하이그로시같이 되어 

강인한 인상을 주네여. 마음에 듭니다. 

 

 

 

 젊었을 때 카투사로 복무하며 정말 다양한 차종을 몰았는데 그 때 동료 미군으로부터 운전을 많이 배웠습니다. 4륜 지프와 오프로드를 운전하고 닷지 램 4륜으로 경북 시골길을 쏘다니고 시보레 승용차로 고속도로 순찰을 다녔습니다. 그때 운전의 재미를 알았고 사륜의 코너 주행 안정성과 직진 가속력의 묘미를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살면서 이를 제대로 누리고 느끼진 못했어요. 우리 세대는 그랬죠.

 

 

캐나다 M440i는 382마력에 51토크입니다. 제가 다 쓰진 못할 겁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그 힘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차가 거의 막히지 않습니다. 출근 길 20km가 너무 짧아요. 그러나 준고속도로도 있고 코너링 구간도 있고 살짝살짝 M 감성을 느껴볼 수 있기에 출퇴근이 마냥 기다려 지네요.

 

다음 얘기가 궁금할 지 모르겠어요. 2편에서는 실내 이야기와 옵션 및 패키지 이야기를 할게요. 북미는 한국과는 차량 트림과 옵션 선택이 다른 것 같아요. 베이스 모델이 71000불인데 아마도 풀옵으로 가면 10만불이 넘어갈거에요. 제가 선택한 옵션들도 소개하고 지면이 남으면 차를 받고 생긴 정말 가슴아플 뻔 했던, 1주일간 잠못 이루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할게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시대를 떠나 역사와 무관하게 살수 없는 우리들. 오늘을 살아내는 의미를 과거로 부터 찾고 배우는 중에 맞딱뜨리는 현실은 인간의 끔찍함이다. 그러나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희망하기를.
선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명에 맞서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간 철의 여인이다. 최악의 환경과 조건에서 놀라운 투지와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믿을수 없는 적응력으로 살아남았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의 비극적 첫 아들 노아는 지적 수련에 비해 지나치게 폐쇄적이며 일종의 결벽증에 빠졌다고 볼수 있다. 현실과 이상의 철저한 분리 속에서 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삶과의 싸움에서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 강한듯 보였으나 결국 나약한 패배주의에 빠진 것.
결국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버티고 살아가야한다. 그의 권총 자살은 충격이었으나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찾는 존재이다. 
운명에 맞서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요구되는 때가 인생에서는 반드시 찾아 온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면. 혼신의 힘을 쏟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존재의 끔찍한 실상에 대해 새삼 분노하고 절망했다.
과연 인류에 희망이 있으며 미래가 있을까. 생존이란 이름하에 등쳐먹고 차별하며 모략을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한 모습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무엇을 희망할수 있을까. 절망의 나락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희망하지 않을수 없다. 사람에 꿈을 두고 세상의 진보를 믿으며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장미로 살아가야함을 선언하지 않을수 없다.
선자의 아들 모자수, 그 아들 솔로몬이 희망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캘거리는 노을의 도시다. 긴 겨울의 꽃. 날마다 희망을 본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거죠.
 
 
어제는 오래만에 Deer Hunter 영화를 리바이벌 해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반전 휴먼드라마로 명분없는 전쟁과 그 후유증이 남긴 인간성 파괴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영화죠. 비록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으로 그려졌다는 한계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아시아인 비하의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당시 종전후 미국사회에 만연한 상처와 아픔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수작입니다. 
 
무엇보다 클래식 기타 독주곡으로 널리 애청되었던 주제가 카바티나는 그 선율의 애잔함과 서정성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주제보다는 주인공들의 우정에 특별히 주목하였습니다. 일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그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싸우고 있는 베트남 공산정권의 본산인 소베에트 연방 소속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들이었습니다. 
 


  

 
펜실베니아 공업지대는 오늘날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동북부 공장지대를 말합니다. 터프하고 팍팍한 이미지의 불루컬러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옛소련 우크라이나 이민자출신의 후예들이 제각각 가난한 불루컬러의 삶을 살아가면서 쌓아온 우정은 마침내 친구를 위해 사지로 뛰어들도록까지 깊고 절실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흔한 즐거움과 함께 슬픔도 나누며 서로의 삶에 훌륭한 동반자들이 되어주었습니다.  터프한 환경과 팍팍한 삶에서 고단한 삶들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친구들의 이런 우정이야말로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지요. 
 
아마도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미국 주류 사회에 대해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로서의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하여는 그들끼리 더욱 진득한 우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캐나다의 소수 이민자들인 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제게도 여기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친구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어렸을적 부터 사귀고 알아온 친구들은 아니지만 이민자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들어내기 힘든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동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 정신과 뜻을 바탕으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작지않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명분없이 단지 죽이고 죽이는 살상만이 남은 베트남 전쟁 속에서 평범했던 공장지대 그 친구들이 전쟁이 남긴 광기어린 모습으로 인간성이 철저히 부정되고 파괴되어 간 것을 보며 마치 팍팍한 이민생활에서 생존이 제일의 목표가 된채 살아온 결과 스스로 지닌 참된 인간성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God bless America를 부르며 끝난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건전 홍보영화를 보는 듯해서 유치했지만 남은 친구들이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다시금 살아가게되는 힘은 결국 서로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랑, 우정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디어헌터 그 친구들같은 우정이 있다면 정말 그 어떤 삶도 부럽지 않을텐데요.


북미 사람들 외에는 별관심이 없지만 영화의 첫장면에서 이 친구들이 일을 마치고 바에서 풋볼, 미식축구 경기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 바로 필라델피아 필리즈 경기입니다. 아마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인듯 한데 둘이 라이벌이죠. 올해 그 필라델피아 이글즈 팀이 수퍼볼에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영화완 별관계없는 얘기지만.. 

영화가 주는 즐거움 중 으뜸은 영화속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지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속의 그들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지만 인간으로서의
동일한 공명 속에서 서로 호응하고 있음에 놀란다.

인간은 누구든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존엄하며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에게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개조하고 단죄할 권리가 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나에게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도 있고
모두에게 있는 존엄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터키 영화 I saw the Sun 이 호소하는 메시지는 이제 어쩌면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클리쉐일지도 모르겟다.
테러와 전쟁으로 인한 비극, 그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 비극적 가족사등은
오히려 영화가 나온 그 때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영화는 거칠고 야성적인 터키어의 발가벗은 듯 강열한 느낌에 힘입어
보는 이의 감성과 이성을 두드려 깨우고 인간 존재의 존엄함을 회복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를 멋지게 표현했다.

영화는 우리에게 그림같이 아름다운 쿠르드 족의 고산 빌리지와 터키 제일의 도시 고도 이스탄불,
지극히 이성적이고 인간적이며 현대적인 노르웨이의 풍경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자기들 뜻과는 상관없이
격랑에 이리저리 내몰리는 쿠르드 가족의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비극적 주제와 맞물려 전개되는 그들 가족에 포함된 성적 소수자의 또다른 비극적 삶을 통해
인류가 이뤄내야할 진보의 강물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한참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 최대 도시 이스탄불... 로마제국, 비잔틴 제국을 거쳐 오스만 터키의 수도였던 인구1500만에 이르는 거대도시..
비록 영화는 필요에 의한 보여줄 것만 보여주었으나 한 눈에 보아도 아름다운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이성적이며 인간적이며 별천지 세계로 살아가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평화롭고 깨끗하며 지성적이나 그들만의 세계.. 언제나 흐려 태양을 그리며 살아야하는 곳.

분명 나은 조건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나 낯선 이방인의 땅.
그러나 그들 쿠르드 족의 하늘 아래 고산 마을은 언제나 해가 있어 아름답고
또한 차별과 다툼없이 그들이 원래 살아온 그대로 살 수 있는 곳이라 익숙한 곳.

"비록 전쟁통의 척박한 땅이지만 늘 불러왔던 노래 그대로 부르며
내땅에서 서로를 품고 사랑하며 살아온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것인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스탄불을 여행한 기분. 안가봐도 될 듯 ㅎㅎ


아마추어의 어원은 '무엇인가를 열성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란 뜻의 라틴어 Amator 에서 비롯되었다. 뭔가를 사랑하는 사람, 헌신적인 친구의 의미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모자라고 경험이 없거나 또는 서툰 사람이 아마추어가 아닌 것이다. 물론 아마추어 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마추어의 분류가 기술적으로 분류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 내말의 요지다.

어떤 일을 사랑하고 그 일로 인한 결과들에 애정을 가진 채 헌신하는 사람이 진정한 아마추어다. 따라서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마추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프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재능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곁에 좋은 친구, 조언자, 협력자가 있어야 한다. ' 내가 나를 믿는 것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사람' 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오늘 이것을 정치에 한하고 싶다.
항간에 문재인 정부를 아마추어라고 한다. 특히 안보 국방 부분에서 그러하다고 했다. 나는 그말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문재인 아마추어 정권 운운은 내게 좋지않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숱한 반노 보수들이 노무현 정부를 아마추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 뭣도 아는 것도 없는 묻지마 보수들, 어중이떠중이 모두 그렇게 비아냥 거렸다. 아마추어 정부라고. 뭐가 아마추어인가. 노무현은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그냥 알아서 하면 될 걸 시시콜콜 모든 것을 공개했고 국민의 참여를 요구했다. 권력기관이나 언론 등에 대통령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숨죽여 잠자던 모든 생쥐같은 언론들이 들고 일어났다. 조중동이야 원래 그렇다치고 온갖 듣보잡들도 활개를 쳤다. 급기야 우군이어야할 한경오도 쌩까기 시작했다. 최장집 손호철이 때만났다. 소위 엘리트들과 그 주변무리들은 좌우를 떠나 아웃사이더 노무현을 처절하게 짓밟았다.

나쁜 대통령,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안한다는 둥.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친재벌이라는 둥. 노무현은 사면초가로 고립되어갔다. 정책의 잘 잘못을 떠나 결국 노무현은 수족잘린 정부가 되고 말았다. 그 아마추어 정권을 지켜내지 못한 결과 나라의 재앙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말았다.

다시 돌아와서, 문재인 정부가 아마추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내치 및 외교적으로 이나라가 망가진 것은 단연코 지난 60년 우파 독재 군부 재벌 및 관료 기레기 언론들에 의한 것들이다. 그들은 프로라서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었나. 맞다. 아마추어 정신이라곤 하나없는 돈밖에 모르고 권력만 탐했던 야비하고 더러운 프로라서 그랬던 것이다.

아마추어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기에 헌신적이며 공익적이고 오직 사랑으로 임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가 아마추어라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아마추어이어야 한다.

그런데 MB가 싸지르고 그네가 벽에 칠한 그 똥, UAE 똥을 치워내는 것보니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리 아마추어도 아니다. 국가간 합의를 파기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그 똑같은 효과를 내는 위안부 합의안 처리하는 것을 보아도 이전의 친일 정부들이 프로답지 않은 프로로 해먹은 것에 비하면 훨씬 프로 같기까지 하다.

나는 수많은 SNS 세력, 눈에 띄진 않지만 SNS 의 많은 논설가들, 예를 들어 내 페친 신명식 귀농인, 배규식 박사같은 분들이야말로 이 정부가 아마추어의 정신을 지닌 진정한 프로가 되어가도록 조언하고 협력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참 지식인, 참 언론, 참동지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런 닳고 닳은 프로 비굴이 정치인들의 허리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수치를 안겨주는 정치인은 그가 프로건 뭐건 이미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나 진배없다.





2년전 알버타 주는 40년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허물고 좌파 NDP (신민주당) 가
선거 혁명을 통해 집권을 하였고 레이첼 노틀리 당수가 역대 두번 째 여성 수상이 되었다.

알버타 정치는 지난 40여년간 보수당 깃발만 꽂으면 개가 나와도 당선되는 그런 곳이었다. 산업 노동자가 없고 거의 자원과 목축 농장 등으로 먹고 사는 곳이니 그러했다. 트뤼도 현 수상 이전의 캐나다를 10년간 장기 집권해온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수상이 알버타 캘거리 출신이었을 정도로 알버타는 보수일색이었다.

알버타 인구의 3분이 1이 사는 캘거리. 주도는 아니지만 오일 컴퍼니 헤드쿼터가 모여있는 이곳에 젊은 인구와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보수적 정치색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알버타 보수일색 정치에 첫번 째 파열음은 무슬림 이민자 출신, 나히드 낸쉬가 캘거리 시장으로 당선 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3선째로 확고한 기반을 쌓은 인도 출신의 이 정치인은 역대 시장들의 보수적 꼰대성향을 뒤엎고 SNS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업고 캘거리를 잘 이끌어 왔다.

알버타는 그동안 캐나다 연방에서 NDP 가 한 번도 정권을 잡지 못했던 유일한 주로 남아 있었던 터라 노틀리 좌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수세력은 알버타 주민의 바닥에 깔린 보수심리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흔들기를 해왔다. 마침 NDP가 정권을 잡을 즈음 시작된 글로벌 오일 가격 하락으로 알버타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보수 세력의 흔들기는 더욱 힘을 얻어가는 형국이다.

사실 알버타주 경제불황은 현 NDP 정권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이유도 현정권의 무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정권, 즉 보수당 정권의 무능과 장기집권의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다.

과거 오일경기가 붐을 이루었던 시절 아시아등으로 원유수출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미국에만 의존했던 것과 엄청난 로열티 수입을 활용하여 알버타 경제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쓰지 않고 방만하게 써버린 결과 미국의 환경론자들이 득세하고 국제 오일 가격이 폭락해버리자 알버타 경제는 순식간에 바닥을 쳤고 이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40년 보수당 1당 장기 집권이 초래한 포퓰리즘 등 정치 비효율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현 알버타 좌파 정부는 보수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올해까지 15불로 인상하는 안을 밀어부쳐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고 주민들의 저항에도 환경보호를 위한 탄소세를 도입하여 정착시켰는데 이는 다음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정치적으로는 자살행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소수와 약자 보호, 지구환경보존이라는 좌파정부로서의 철학을 잃지 않고 소신껏 나아가는 것을 보면 노틀리 수상의 정치인으로서의 일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여년 전 알버타 주민들은 보수당 정권으로부터 1인당 40만원에 달하는 번영 보너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4명이어서 160만원을 수표로 받았다. 당시 알버타 인구가 350만명 정도였으니 무려 1조 4천 5백억이라는 소중한 공적 자금이 주민들에게 1회성 선심으로 흥청망청 써버린 것이다.

이는 명백한 무개념 포퓰리즘 정치였다. 근래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와 비슷한 선심행정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표퓰리스트라고 표명했다. 표풀리즘은 두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대중주의(또는 민중주의) 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추수주의다. 전자는 엘리트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재명 시장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을 때는 이와같은 민주적 대중주의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후자는 정책의 제도적 시스템화에 반하는 것으로 임기응변식 인기 영합주의를 말한다. 시스템화를 벗어난 이와같은 인기영합주의는 매우 나쁜 정치의 한 형태이다.

나는 이재명 시장의 정치철학의 기본은 민중적 대중주의라고 보지만 이번 선심행정은 명백한 인기 영합 대중 추수의적 형태로 아주 나쁜 의미에서의 포퓨리즘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아도는 돈은 당연히 공적 자금으로서 성남시의 미래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정 쓸데가 없으면 중앙정부와 협의하에 이웃의 가난한 지자체에 기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돈을 받으면 우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아무리 미미해도 탄소세등 세금이 오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율배반이다. 환경과 복지는 좋으나 세금인상은 싫어한다는 것. 이게 일반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이와는 달라야 한다. 거꾸로 가야 한다. 정치가 민의를 반영해야하지만 진정한 민주정치란 정치인의 앞서가는 세상에의 비전을 주민들이 말하고 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버타 보수당의 지난 세월 보인 포퓰리즘적인 정치와 미래에 대한 비전없는 정치는 당연히 배격되어야 한다. 반면에 NDP 좌파정부의 소신있는 정책 방향, 때론 주민들의 인기를 잃는 정책이라도 소수와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인류사회 나은 미래를 향한 것이라면 주저없이 시행하는 모습이야말로 참된 사회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캘거리는 올림픽으로 한국과 제법 인연이 있다.
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때 캘거리는 같은 해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했었다.
그리고 이제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데 캘거리 역시 2026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데 비해 경제적 효과는
미미하고 대회 기간 중 불편 사항도 많은 데다가 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 옛날같지 않아서이다.

올림픽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하며 그래야한다고 떠들곤 있지만 대개는 헛소리. 역대 거의 대부분의 올림픽이 국내외적으로 정치에 이용당하고 휘말렸다. 사실 근대 올림픽의 시작부터가 정치적이었다.

지독한 인종주의자 쿠베르탱 영감탱이는 백인들의 우월성과 남성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일환으로 올림픽을 창시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올림픽 창시였다. 그리고 "계집애들이 무슨 올림픽인가.." 라고 말하기까지 한 쿠영감탱이는 여성차별주의자였으며 세상엔 1등 백인 종족과 그외 2등종족이 있을 뿐이라고 외친 인종주의자였다.

그 전통에 따라 올림픽은 인종주의가 끊임없이 표출되어왔다. 심지어 레슬링 퇴출위기는 인종주의의 극명한 본보기다. 남자는 이란이 휩쓸고 여자는 일본이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보적 종목인 양궁에서 오직 한국만을 겨냥하여 룰을 수없이 바꾸는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아도 올림픽은 백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잔치여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를린 올림픽은 인종주의 올림픽의 표본이었다. 아리안 족의 위대함을 알리는 올림픽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제시 오웬스라는 탁월한 인물과 손기정님에 의해 히틀러의 자존심은 팍팍 구겨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여성운동의 약진에 따라 여성 올림피안들도 획기적으로 늘어갔다. 인종 및 성 차별적 성격은 인류진보의 물결을 타고 희석되어갔다.

즉 정치적 인종적 한계를 가졌음에도 올림픽은 지구촌의 잔치로 발전해왔다. 그러한 올림픽 진보의 힘은 올림픽 정신에 있다. 많이 훼손되긴 했으나 여전히 고귀한 정신으로 추앙받는 순수한 아마추어리즘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인류 화합의 잔치라는 점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창 올림픽의 남북 동시 입장과 여자 하키 단일팀은 올림픽 정신에 매우 부합하는 의미를 지닌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상호 긴장을 풀어내는 것에 이보다 더 극적인 이벤트가 어디 있었겠나. 평창올림픽을 이명박정권이 유치할 때 한반도의 통일염원을 담아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표를 받았다. 과거 여당이 단일팀 구성 등에 적극찬성한 것도 바로 이와같은 올림픽 정신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바가 크기 때문이다.

여자 하키 팀의 일부 선수들의 실망이 컸다는 점 이해가 간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여자하키도 평창 올림픽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 구경하게된 것 아닌가. 그동안 여자 아이스하키가 한국 스포츠계에서 무슨 존재감이 있었으며 올림픽 이후 스포츠의 대중적인 지속성 역시 거의 난망하다고볼 때 이정도로 국민적 관심 속에서 뜬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할 것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가 좋은 스포츠임을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니 단일팀은 좋은 결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래 잘했던 종목외 많은 생소한 종목들에 우리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하키와 함께 이런 종목들에 관심을 가지고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예기치 않은 남북 단일팀 결성으로 선수 구성과 출전 시간에 변화가 생겼지만 결국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작은 출발로서의 의미, 즉 대승적으로 해결되었으니 그들이 비록 전패를 하였으나 이미 크게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올림픽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펜스 극우 기독주의자 가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나 아베의 똘만이 짓, 그리고 이 두 극우분자들이 개회식 때 단일팀에 대해 보인 무례함은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올림픽 정신을 말하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한다. 여자아이스하키팀이 올림픽 정신에 맞추어 참가에 큰 의의를 두고 특히 남북이 하나로 뭉쳐 나온다는 것이 주는 상징성을 크게 부각시킨 것처럼.

그러면서도 올림픽이 주는 정치적 도움 역시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 단일팀으로 오랫동안 북핵문제로 전쟁위기 속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딛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이라는 것은 결코 인간을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역사가 증명했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우리사회 난맥상의 원인중 하나이다.

사회주의의 내용은 나쁘지 않으나 그것을 이념화 하니 인간이 오히려 고롭다.

진보는 좋은 것이지만 진보주의는 역시 인간을 피곤하게 한다.
뭐든 주의를 붙이면 일단 그것은 달콤한 거짓말이다. 인간 피곤하게 한다.

진중권이나 강준만 부류가 그러한 사람의 표본이다. 최장집이나 오마이 한겨례가

그런 경향을 경향신문과 함께 쉐어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것은 백성편에 선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대처와 레이건이 눈이 맞아 세상을 말아먹었다.

그런데 신 자유주의는 전후 미국이 세계를 털어 먹다가 일본과 독일에 막히니까 나온

부자들의 경제 타개책이다.(영국이 붙어서 같이 먹었고)

경제전쟁에서 일본과 싸워선 이길 승산이 없으니 (영국은 독일과의 싸움) 신자유주의 들고 나와
미국내 하층민(그것도 백인하층민) 털어먹은 것이 신자유주의다. 레이거노믹스고 대처리즘의 본질이다.
물론 와중에 애꿎은 개발도상국들도 털렸지만 본질은 자국민 말려죽이는 것, 양극화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 좌파들은 신자유주의와의 힘겨운 싸움을 해왔고 일정부분 성공도 거두었다.
2008년에 몰아닥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자멸한 대표적 사례이고 영국의 브렉시트 역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자승자박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표방한 시장원리의 회복은 일정부분 국제경제를 회복시키고 특히 대한민국 같이
뭘 팔아서 먹고 살아야하는 나라에게는 기회가 된 점도 있다.
규제철폐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정부기능 강화 역시 나쁜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다.

무조건 신자유주의라는 잣대로 세상을 경직되게 가치 판단하면 결국 손가락 빨게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게 증명되고 있다.

80년대말에서 90년대말까지 가능했던 반 신자유주의 연대, 그게 2000년에도 여전히 통한다고 보면 시대착오다.

이미 골방에 사라진거. 그런데도 여전히 신자유주의 타령하고 있었다면 일단 거짓말장이고 지식 장사치라고 보아야했다는 말이다.
비근한 예가 한겨례 오마이 최장집 부류들이 입에 거품물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노무현의 FTA를 씹었던게 바로 그거다.

신자유주의 물론 나쁘다. 계약직 정리해고는 잔인하고 규제철폐 무한 경쟁은 위험하고 부자감세는 공정하지 못하다.
문제는 모든 관련된 정책을 무조건 신자유주의로 이름붙여 공격하는 것 역시 비겁하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신자유주의자들과 그 비판자들이 무슨 '주의'를 들고 나오거나 그에 기반하고 있으면
일단 가짜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되지 못한 좌충우돌식(시쳇말로 무뇌아들) 이념장사를 보면 안다.

반공주의에 기반한 빨갱이 종북 타령이나 어버이연합등 반공 우익단체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나 기이한 행동들이
그러한 것처럼.

오늘 뜬금없이 신자유주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아니다.
핵심은 이러하다. 무슨무슨 '주의'를 들고나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하여 어쩌고 저쩌고하는 가짜들을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에서 다 솎아 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가짜라고 보면 된다는 얘기다.


바른당과 국민당이 합당했다. 건전한 보수를 위하여 합당했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가짜들의 생존전략에 불과하다.

그들은 단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중도 타령, 개혁적 보수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라는 이념은 없다.

보수는 단지 지키는 것이기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들은 가짜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과 함께
3대 여성재즈가수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디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이노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다 버전의 오리지날 송이다.





1964년 작곡된 이노래는 니나 시몬느를 위해 정통 재즈로 작곡되었다. 그것이 이듬해 부루스 락으로 리메이크 되었다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산타에스메랄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어 한 때 디스코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녀의 삶과 의식 속에 녹아져 있는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자유를 향한 갈망,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은 채 특유의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해석되어져 나오는 이 원곡으로 들을 때 가슴이 요동친다.

니나는 분노와 좌절이 있거든 세상을 향해 주저없이 외치라고 했다. 골방에 박혀 좁은 세상에 갖힌 채 절망한 영혼들에게 자신을 찾아 사랑하고
드러내어 존엄을 회복하라고 한다. 인류의 대표자가 되라고 한다.

********
보졸레는 저렴하나 매우 신선하고 경쾌한 와인입니다. 꽃과 과일향이 풍부하며
감미롭기까지 하죠. 그렇다고 천박한 단맛은 절대 아니죠. 니나가 사랑한 프랑스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이 노래와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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