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거죠.
 
 
어제는 오래만에 Deer Hunter 영화를 리바이벌 해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반전 휴먼드라마로 명분없는 전쟁과 그 후유증이 남긴 인간성 파괴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영화죠. 비록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으로 그려졌다는 한계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아시아인 비하의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당시 종전후 미국사회에 만연한 상처와 아픔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수작입니다. 
 
무엇보다 클래식 기타 독주곡으로 널리 애청되었던 주제가 카바티나는 그 선율의 애잔함과 서정성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주제보다는 주인공들의 우정에 특별히 주목하였습니다. 일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그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싸우고 있는 베트남 공산정권의 본산인 소베에트 연방 소속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들이었습니다. 
 


  

 
펜실베니아 공업지대는 오늘날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동북부 공장지대를 말합니다. 터프하고 팍팍한 이미지의 불루컬러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옛소련 우크라이나 이민자출신의 후예들이 제각각 가난한 불루컬러의 삶을 살아가면서 쌓아온 우정은 마침내 친구를 위해 사지로 뛰어들도록까지 깊고 절실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흔한 즐거움과 함께 슬픔도 나누며 서로의 삶에 훌륭한 동반자들이 되어주었습니다.  터프한 환경과 팍팍한 삶에서 고단한 삶들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친구들의 이런 우정이야말로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이지요. 
 
아마도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미국 주류 사회에 대해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로서의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하여는 그들끼리 더욱 진득한 우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캐나다의 소수 이민자들인 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제게도 여기 캐나다에서 이와 비슷한 친구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어렸을적 부터 사귀고 알아온 친구들은 아니지만 이민자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들어내기 힘든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동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 정신과 뜻을 바탕으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작지않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명분없이 단지 죽이고 죽이는 살상만이 남은 베트남 전쟁 속에서 평범했던 공장지대 그 친구들이 전쟁이 남긴 광기어린 모습으로 인간성이 철저히 부정되고 파괴되어 간 것을 보며 마치 팍팍한 이민생활에서 생존이 제일의 목표가 된채 살아온 결과 스스로 지닌 참된 인간성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God bless America를 부르며 끝난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건전 홍보영화를 보는 듯해서 유치했지만 남은 친구들이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다시금 살아가게되는 힘은 결국 서로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랑, 우정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디어헌터 그 친구들같은 우정이 있다면 정말 그 어떤 삶도 부럽지 않을텐데요.


북미 사람들 외에는 별관심이 없지만 영화의 첫장면에서 이 친구들이 일을 마치고 바에서 풋볼, 미식축구 경기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 바로 필라델피아 필리즈 경기입니다. 아마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경기인듯 한데 둘이 라이벌이죠. 올해 그 필라델피아 이글즈 팀이 수퍼볼에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영화완 별관계없는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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