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예측산행은 늘 위험이 따른다."


물론 많은 사고가 미리 피할 수도 있지만 갑자기 찾아와 피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원래 산행이란 모든 어려움을 지고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산에서 맞는 어려움은 

평지에서 보다 훨씬 위험하기 일쑤입니다. 오늘 산행을 통해 산행동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산우는 나의 안전 나의 운명을 잠시 함께 지고 올라가기에 

서로 믿고 의지하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며 중요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서로에게 격려를 해주고 위로를 하며 힘이 되어주는 산행동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월의 카나나스키스 록키는 이미 겨울로 들어갔습니다.  

아침 햇살은 찬란하고 대지는 아직 가을 향을 품은 채 따스한 마음이 일게 했지만 

영도에 가까운 차가운 기온과 함께 볼을 찌르는 듯한 바람은 

오늘 우리들에게 일어날 엄청난 일들에 대한 조용한 복선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 찾아가 오르는 것이지만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때로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 우리는 오늘 이 사실을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산아래 Brian Lake 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 여기까지 함께했던 산행팀은 정상 도전팀과 귀환하는 팀으로 나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과 모험과 도전하는 삶으로 운명이 갈라졌습니다. 


모험과 도전 ..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삶에 대한 단순한 입장의 차이일 뿐입니다. 

무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약간의 위험은 감수하며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모험이요 도전의 연속, 누구라서 삶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살수 있는가.. 

물론 이 위험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릅니다. 


그것을 하고 안하고는 철저히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고 그로 인한 결과 역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요. 





네명의 정상 도전팀이 출발하여 급경사를 간신히 올라서 정상에 도달했을 때, 눈을 뜨기 어려운 차가운 바람이 불어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의 산행 루트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상 능선을 타고 계속 진행하여

원래 출발지를 향해 loop 로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계속하여 전진하였습니다.


절벽 밑에서 약간의 요기를 하여 허기를 때운 다음 하산을 시작하는데 뜻하지 않은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한 동료가 다리에 경직성 통증이 오면서 산행이 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걷다 서고 걷다 서고를 반복하며..


지지부진한 속도로 내려오던 중, 로프를 사용하여 통과해야하는 구간이 나타났습니다. 원래는 이 쪽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루트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부상자로 인해 통과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고 왔던 길을 도로 올라가 alternative route 를 찾았고

절벽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우회통과 하였습니다.



예정보다 당연히 시간이 상당히 많이 초과되었고 이미 초겨울 해는 서산 아래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상 루트에서 약간 벗어나 있던 우리는 부상자가 있다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일단 눈 앞에 보이는 다운 힐이 평지 크릭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쪽을 하산길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엎친데 겹친다는 것.  흔히 악재는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는 것.

다소 급한 경사의 설사면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또 한명의 동료가 심각한 낙상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어깨 쪽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의 팔을 로프로 몸통에 고정시킨 다음 배낭은 나눠서 지었습니다.


날은 더욱 어두워지고 마음은 더욱 급해진 우리는 가급적 빠른 하산을 하기로 하여 고통에 힘들어하는 두 부상자들을

격려하고 독려하며 천신만고 끝에 대개의 경우 평지로 이어지는 자갈 경사면에 도달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두명의 부상자와 함께 어렵사리 내려온 그 경사면은 안전한 평지로 이어지는 그런 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절망으로 인도하려는 듯 깎아지른 듯 끊어진 절벽이었습니다.

이제 날은 거의 어두워져서 전방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산에서의 밤은 일찍 찾아오니까요.


다행히 먼저 발생한 부상자는 하산과 함께 다소 회복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은데다가 두번째 부상자는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 한발욱 뗄때마다 극심한 곹총을 호소하기 시작했죠.


이미 7시간 째 차가운 겨울 산을 해매고 있는 중이라 체력들도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우리들을 안전하 평지로 인도할 정보와 장비는 매우 부실했습니다. 농반 진반으로 얘기를 했지만

구조요청을 하고 헬기를 불러야할 것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도 안되고 가지고 있는 무전기도 무용지물. 구조 요청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먼저 돌아간 침들은 아마도 주차장에서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 우리는 어쨋든 가야했습니다.


여전히 400-500m 정도의 높이를 내려가야하는 우리들은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록키의 겨울 밤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부상자는 심각한 통증으로 점점 걷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미 한 번 절벽을 경험한지라 어둠 속에서 희미한 모습만으로 판단하여 경사면을 무작정 내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또 실패하기라도 하면 이제는 도로 올라갈 체력은 없다고 봐야하고 특히 부상자는 

그것을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배팅.. 우리는 단 한번의 시도로 경사면이 평지에 이르는 길을 찾아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산 한가운데서 장비도 없이 비박을 해야할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

칠흙같이 어두운 산 속에서 우리에게는 그나마 희망이 되어주고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빛'이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언제나 들고 다녔던 자가발전 후래쉬였습니다.  네명 중 내가 유일하게 들고 있던 빛이었습니다.

언젠가 코스트코에서 구입했던 마우스 모양의 작은 후래쉬는 우리 네명의 안전하산을 도운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절망하지 않으며, 한 순간도 유머를 잃지 않은 채

서로를 격려하며 도움주며 서로를 따뜻이 품어준 동료들 마음 속의 희망, 사랑, 우정, 용기, 배려라는 '빛'이었습니다.


되도록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서로를 북돋우었죠.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힘든 내색 않고 짐을 서로 져주며 도왔습니다.

특히 후래쉬를 들고 앞장선 저를 100% 신뢰하며 끊임없이 좋은 말로 격려하며 따라와준 동료들로부터 전해져온 '빛'


특히 우리가 하산을 마무리할 경사면 선책에 주저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 믿음으로 격려해주었던 동료들,

이런 신뢰의 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한발자욱도 내려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산 속에서 조난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대단히 심각합니다. 


나는 눈 앞에 어렴풋이 보이는 계곡경사면을 택하지 않았고 가급적 동쪽으로 치우쳐 하산했습니다. 

매우 가파랐고 눈으로 덮여있는 나무 숲이었지만 그길이 웬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루트외에는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믿음..



천신만고 끝에 드디오 우리는 나무 숲 경사면을 내려서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길입니다. 이게 아니라면 더이상의 실패는 바로 조난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원래 산 속의 계곡이라는것이 처음에 내려갈 수 있는 듯 보여도 대부분은 폭표형식의 절벽으로 이어집니다.

마치 설악산 선녀탕 폭포처럼 말이죠. 앞에서 두 번씩이나 경험했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에게는다른 선택이란 없었죠.  두려워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었어요.  이미 최악의 상황은 각오했기에.

다만 부상자가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마음이 저려왔지만 두부상자는 감사하게도 이 절박한 순간에

거의 초인적이고 놀라운 인내심과 이타심을 발휘해주었어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물론이요 어떤 불평과 원망도 없이 묵묵히 따라와주었다는 것은 앞에서 길을 찾으며 

내려가는 저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안전 하산을 성공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두분께 미리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사방이 완전히 새까만.. 가끔씩 핸들을 돌려 충전을 해주어야했던 내가 들고 있는 작은 후래쉬의 빛만이 깜빡이는

그 어둠 속을 우리는 여전히 앞을 분간하지 못한 채 오직 믿음과 희망만을 붙든 채 서로의 기척을 의지 삼아 

계곡을 한발 한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제발 절벽이 나타나지 말기를..




칠흙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쏟아질듯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의 바다를 본적이 있는지요.

천신만고 악전고투 끝에 계곡의 끝에 다다르자 눈 앞에는 드디어 넓디 넓은 평지가 어슴푸레하게 펼쳐졌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산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안도감과 기쁨 속에서 세상 어느 곳에서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던 그 수많은 별들을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뜨겁게 받아들였습니다.


눈물이 날뻔 했지만 꾹 참으며 사랑하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를 나누고 깊은 포옹으로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던 여정이었기에.. 

비로소 편하게 물도 마셨고 비로소 배가 고파와서 초롤릿도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무사 귀환을 자축했죠.


그러나 아직 완전히 기뻐하기엔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사를 모른 채 초조히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 동료들이 있는 주차장까지 가는 길.

록키의 깊은 산골은 비록 별빛이 쏟아지곤 있다고 해도 1m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깜깜했기에 

평지이긴 했으나 남은 2.5km의 길을 찾아 가는 것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어렴풋한 시야를 뚫고 동료가 가진 지도 덕을 보며 또 한 동료의 뛰어난 감각에 힘입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발 한발 나아간 끝에 우리는 저 멀리서 보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세번 째 '빛'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환호를 내질렀고 또 한 번 부등켜 안고 완전한 무사 귀환을 최종적으로 자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패닉상태에 이르기까지 초조히 기다리던 동료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감격적인 환영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모두가 즐거워했고 감사했죠. 기다린 사람들, 부상당한 사람들, 누구하나 불평 불만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그 순간을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바로 이녀석이 우리를 어둠 속에서 지켜준 그 '빛'이었습니다.  옆으로 보이는 레보ㅓ를 빙빙 돌려

자가충전하며 우리를 산에서 계곡으로, 다시 평지로, 주차장으로 인도해준 소중한 '빛'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첫부상자는 가히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양허벅지의 엄청난 경련과 경직, 극심한 통증을 견뎌내었으며

두번 째 부상자는 어깨가 빠졌는데 부목도 없이 빠진 팔을 몸에 동여매 고정한 채 수시간을 고통을

참아내며 그 험난한 길을 기어코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캘거리 도착하자 마자 바로 풋힐스 응급실로 달려가

빠진 어깨를 다시 집어 넣고 잘 맞추었고 xray 상으로 골절도 없이 잘 처치가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행스럽게도 끝까지 체력적으로 잘 유지가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평심을 잃지 않아

동료들과 무사귀환을 성공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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