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바 여행에 대한 나의 소회와 기대, 간단한 여행정보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여행은 3막으로 구성된 연작 드라마와 같다.
떠나기전, 여행을 준비하며 기대와 설레임으로 보내는 것이 제 1막이라고 한다면
실제 여행을 하는 기간을 제 2막 본장이라 할 수 있겠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못다 느낀 감상들을 정리해낼 때 3막 에필로그로 여행은 완성된다.

이 중에서도 제 3막, 즉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을 돌아보고 추억하며 그 때를 되새겨보는 것은 실제 여행에서 놓쳤던 느낌과
의미를 재 발견하게 하며 마치 여전히 여행 중에 있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니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나의 의식과 감성은 아직도 꾸바를 맴돌고 있다.



사진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요소다. 시간과 공간속에 흩어져 버리는 감동과 느낌을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떠난 순간부터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는 쉴새 없이 바뀌는 이미지의 연속이며 그 속에는 무한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사진 자체가 창조적인 이야기꾼인것이다. 사진이 없다면 여행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여행.. 그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설레이는 마법을 지녔다.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 아무리 평범하고 흔한 풍경이라도 여행지에서 만큼은 모두 특별하지 않은가.
그리고 남은 날들 속에 수없이 꺼내보는 추억들 속에서의 진한 커피향같은 여운까지..

이렇게 우리를 매혹하는 여행은 쿠바의 상징, 체 게바라에게도 그러했다.



1959년 체 게바라는 꾸바 혁명을 성공시킨후 피델 까스뜨로에 이어 확실한 2인자로서 그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킬 탄탄대로의 길,
제국주의와 싸워나갈 새로운 나라의 건설이라는 대업을 앞에 놓고 있었다.

혁명 직후부터 당 중앙 지도자, 중앙은행 총재, 상공장관 등을 역임하였고, 꾸바를 대표해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UN 연설을 하는등 그는 새로운 꾸바 건설의 주역으로 우뚝섰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탄탄대로의 삶을 내려 놓고 또다시 험난한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의 반제 민중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여행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니 여행 가운데서 만난 인민들을 사랑하였던 사람이었다.

오늘날 모든 젊은 영혼(나이의 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들, 특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우상인 게바라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과 꿈은

그가 아르헨티나 의과대학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전 남미를 돌아다닌 여행을 하였을 때 형성되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모티브가 될 때 단순한 휴식과 오락을 넘는 인생의 참 의미로 다가온다.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기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은 자본주의의 사치' 라고 일갈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기도 했지만

러나 그의 여행이 결코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한 즐거움의 그것만이 아님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체게바라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 하바나의 이 혁명광장에 구조예술작품으로 남아 있는 그의 얼굴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만 확인이 된다.

그의 인생여행은 볼리비아 숲 속에서 끝이 났지만 그의 꿈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개방으로 가는 쿠바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꾸바 여행을 가기전 수많은 리뷰들을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으니..

그리고 책을 한국에서부터 주문하여 읽어보았다. 꾸바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적성국가인데다 여전히
미수교국이어서? 그렇다면 편협한거다. 적어도 진리의 학문에는 국경과 이념이 없어야 한다.

꾸바의 매력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여행지로서의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꾸바라는 나라가 형성되어온 과정,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의 세계를 다원주의시대라고 한다. 종교와 문화와 표현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복합적이며 상대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힘의 우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의 시대를 넘어 상호 존중과 조화, 연대가

시대의 주요한 패러다임으로 요구되며 또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꾸바는 이와같은 복합문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되어온 매우 모범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들의 인종 구성, 정치역정, 문화적 특성에서 오늘날 세계가 지향해야할 상호 존중과 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는 서구사회와 그 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충돌 속에서 창조적으로 탄생한 일종의 신 문화국가이다.

동서 냉전 시대의 미주 대륙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그것도 자본주의 초강대국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관계로 극심한 경제봉쇄와

국제적 고립 속에서 지난한 시기를 보내면서도 그들은 특유의 낙천성과 유연성을 잃지 않았다.


생필품이 부족하고 지독한 가난에 허덕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 및 교육시스템을 갖추었고 생명 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분야에서도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인민을 향한 연대와 인류 공영에도 이바지하는 등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꾸바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랐다.


꾸바의 문화는 상호 존중에 입각한 인류 보편적인 염원인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담고 있다. 고난을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가운데 오늘날 세계가 열광하는 꾸바 음악이 탄생했다. 이와같은 고난극복의 역사는 음악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이상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비료공급을 중단하자 그들은 대규모 유기농법을 개발했고 지금 꾸바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재료는 유기농법에 의한 것이 되었다.

백신과 의약품 조차도 엠바고에 포함되자 그들은 독자적으로 천연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했고 그것을 또다른 가난한 제 3세계에 공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지구상에서 흑백이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게 공존하며 살아가가는 곳, 꾸바. 다원주의로 정의되는 앞으로의 사회의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꾸바는 새로운 레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인본주의 정치를 위한 대의에서 그랬다할 지라도 사상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인권 탄압 및 나아가 민주주의 말살은 그 어떤 논리로도 용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상은 수많은 할일없는 꾸바인의 무료함에 그 허구성이 녹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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