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덕후라고도 하데. 그러나 이 두 말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를 두고 혹 매니아라고만 해석하면 매우 천박하다. // 일단 오타쿠 덕후는 혼자노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 쳐박혀있는. 그렇다고 빈둥대기만 하는 룸펜과는 다르다. 오타쿠 덕후는 혼자 놀되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즉 혼자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이라는 뜻. 완성된 개인주의를 말한다.  // 여기서 예술은 문화 및 교양, 스타일과 함께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 덕후가 완성된 개인주의자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개인주의는 혼자 논다. 그러나 고립을 거부한다. 부족주의나 가족주의,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무수한, 지평이 확대된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은 자유롭다. 내가 주인된 만남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만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한다는  얘기. 이 얼마나 통쾌한가.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면 윗사람에게 혼나는 그런 조직에서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비위 맞추지 않는 사람, 한마디로 사회 부적격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왕따 기질이 좀 있는 그런 까칠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다.





개인주의자는 예민하다. 소심하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단단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되 그렇기 때문에 소소한 주변을 물리치고 거대한 인류단위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맞설 수도 있게 된다. // 그러니까 진정한 개인주의는 철학도 만나고 역사도 만나며 종교도 만나고 교양과 문화와 예술을 만나게 된다. 자연과 친구가 된다.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며 곧 자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신중함이 뺏어가고 창의력은 상식이 주저앉히며 예술적 감성은 잘해야한다는 강박증이 스스로 말살시킨다.


그래서 열정과 창의력, 예술적 감성과는 무관한 그런 삶이 안전할지는 모르나 너무 지루하다. 때론 신중함에서 벗어나 도전도 해보고, 상식을 뛰어 넘어 의외의 길로도 가보며, 잘 못해도 좋으니 작품도 만들어 보는거다. 그것이 실수를 만들고 좌절도 겪게 하며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공동체의 선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나의 취향과 사상과 라이프 스타일은 당연히 존중받아야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내가 최고가 되면, 훌륭한 개인주의를 완성하면 누구라도 알아주는가? 개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주변과의 부대낌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흐를 누가 알아주었나. 미친 정신병자였다. 그런데 고흐는 그의 개인주의를 완성했다. 신과 일대일로 만났다. 세상과 늘 마주했고 인류단위로 사고하며 사색하며 그것을 예술로 옮겨 세상을 한마장 진일보시켰다.



나는? 고흐도 아니고 위대한 철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일단 주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발견하며 나를 완성해나가는 순간,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선언하고 인류단위로 생각하며 세상의 진보에 대해 작은 밑돌을 자처할 때 나는 고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누가 알아주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세상의 변화에 자신의 이성과 삶의 한 조각이라도 더해 기여해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하루를 살아도 멋있게 살고픈거다. 스타일을 중시하고 살고싶다. 기능성도 좋지만 디자인은 더욱 중요하다. //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 취향이 꼭 한가지여야할 아무런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이유란 없다. 나는 모든 음식이 맛있고 모든 색깔이 다 이쁘다. 모든 산이 다 좋다. 그래서 나쁜가. // 나는 정답을 찾는 부질없는 허세를 그만두고 깨달음을 향한 길만을 오직 본다. 계속하여 뭔가를 시도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며 배우고 아는 가운데 나는 완성되어져 간다. 그 속에 기쁨이 찾아 온다.


영화를 한편 보아도, 감독의 연출의도를 쫓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토리는 대개 그렇고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로 보면 보았지만 안 본 것이다. 커피를 한잔 마셔도 어디서 만들어진 무슨 커피인지를 알고 마시면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전에는 맥주를 그냥 맥주로만 알았다. 그런데 맥주는 문화더란 얘기. 우리 나라 맥주가(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맛없다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수준이하라는 얘기다. 밋밋한 캘거리만도 못한. 여하튼 그렇다는 얘기.




타자의 시선을 극복하고 때론 무시하고 라이벌 이런 개념을 이겨내고 자기 스타일을 찾아 완성하는 것. 이것이 개인주의이며 이와같은 개인주의를 완성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티스트 되는 것이다. 


아트는 어원이 arm 에서 비롯된다. arm 은 붙어있다. 즉 연결이며 소통인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연결시켜주고 소통시키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저쪽의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이와 그냥 작품 하나로 연결되었다. 비행기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이야기인가.




이제 개인주의는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오히려 함께일 때의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와 넓이와 시간 공간적으로 나는 네트워킹되어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존재였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주어져 나를 완성시킨 것. 


자, 이제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개인주의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스타일리쉬한 나의 삶을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 

알아주고 말고는 그들의 몫.  난 다만 전 인류단위로 사고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신과 일대일로 마주하자. 맞짱뜨자. 

내가 주인임을, 일등임을 선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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